마티스와 제니퍼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첫 번째 커플

by 김민지

신기한 집이었다.

4층 정도 되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인데 안에는 방들이 여러 개 있었다.

주방 하나, 욕실 두 개는 공용이고 각각의 방마다 여러 주민들이 함께 산다고 했다.

마티스를 따라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그의 방은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가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연 순간

'마오'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오렌지색 조그마한 고양이와

내 또래 정도 되보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의 여자친구가 나를 반겼다.

어떤 가식도, 거짓도 없는 순수함과 반가움이 느껴지는 그런 호의

만약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남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생판 모르는 여자를 데려와 재워주자고 한다면...?

이해하기에 앞서 화부터 내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니퍼는 마티스가 내게 그러했듯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분주히 방을 정리한 듯했는데

내게 도리어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걱정하며 여러 번 물어 내가 오히려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그들의 방은 큰 원룸이었는데 정리정돈 잘하는 우리 엄마가 본다면 쉴 새 없이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정도로

언뜻 보기에도 산만해 보였으나, 그 방에 들어간 순간부터 든 생각은 오직 'COOL' 이었다.

하얀색 벽지 위로 여러 물감으로 칠한 그림이 칠해져 있어 무엇인지 물었더니 제니퍼가 직접 그린 거라고 했다.

진짜 멋지잖아! 깔끔하고 산뜻했던 첫날의 호스텔보다 그들의 보금자리인 이곳이 훨씬 더 정겹고 멋졌다.

'남들에게 보기 좋게' 꾸며지지 않은, 그들의 삶과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들의 집에 하루라도 머물 수 있다는 것은 고작 평범한 관광객에 불과한 나에게 너무 큰 호사가 아닌가...?

사실 이들의 집에 머문 것을 계기로 나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가급적 호스텔이나 민박 같은 숙박업소보다는 그곳의 현지인 집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든 것도 사실이었다. (각각의 여러 종류의 숙소의 장단점은 나중에 좀 더 상세히 비교해 적어 봐야겠다)


제니퍼와 마티스는 내게 배고프지 않으냐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마음대로 꺼내 먹으라고 하고,

소파가 잠자기에 짧거나 불편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욕실은 어디에 있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일일이 안내해주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외국인인 내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친절할 수가 있는지 내내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집에 이렇게까지 초대하고 환대하는 게 흔하지는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어떤 다른 마인드가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면 내가 정말 지나치게 사람운이 좋은 걸까? 대부분의 여행자들도 경험하는 흔한 일인 걸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들었다.


마티스는 27살, 제니퍼는 21살로 나와 동갑이었는데

둘이 연애한지는 벌써 2년 정도 되었고 이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지는 1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낮에 마티스가 내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티스는 스케이트보드강사 일을, 제니퍼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파는 일을 하는데 둘 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고 했다.

고급스러운 벨기에 초콜릿의 이미지 때문인 지는 몰라도 벨기에 하면 왠지 대부분이 부유할 것만 같았는데 이들도 그렇고 낮에 스케이트파크에서 보았던 이들도 내가 생각했던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뤼셀은 집세가 굉장히 비싼 편인데 이 집은 1년이 지나는 여름에 철거할 예정일 정도로 오래되고 낡았기 때문에 운 좋게도 싸게 구할 수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철거될 예정이라니 너무 아쉽다고 말하니 그들도 유감을 표했다.


벌써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우리들의 대화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마티스는 아까 사온 맥주를 내게 2캔을 주고서도 혼자 6캔을 비웠다.

소파에 뒤로 기대어 누운 채로 마티스의 휴대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몽환적인 노래들을 들으며

처음 마시는 벨기에 맥주를 홀짝이며 저 사랑스러운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들


제니퍼가 내게 물었다.

"너는 남자친구나 만나는 사람 있어?"

내가 아니라고 답하자 그녀가 내게 이야기한다.

"나는 마티스를 만나기 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있는데 굉장히 나쁜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배신과 상처를 되게 크게 받았었어. 그 남자 이후로 정말 모든 남자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픔과 고통이 심했는데 그때 마티스가 내게 천천히 다가와줘서 조금씩 치유가 됐어. 너도 벌써 알았겠지만 그는 정말로 자상하고 좋은 남자거든. 네가 여행을 다닐 날들이 앞으로도 많은데 어딜 가든 항상 남자들을 조심하고 나와 같은 상처를 절대 받지를 않기를 바라."

동갑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의 조언은 내게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유독 제니퍼에 대한 나의 인상은 처음 만난 그날부터 지금까지도 너무나 인상 깊고 한없이 애정이 샘솟는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허물없는 친근한 성격과 신비롭기 까지 한 아름다움, 그리고 중저음의 보이스까지

여자인 내가 봐도 반할 정도인데 마티스는 오죽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연인들을 봤지만 어느 누구도 정말로 부럽다거나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마티스와 제니퍼를 보고 있노라면 진짜 사랑하는 연인이란 이런 모습이구나라는 것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도무지 글로 옮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

단지 그들을 잘 알지 못했던 내가 그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발산되는 듯한 엄청난 시너지를 느꼈다는 것,

서로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2년을 함께하고서도 넘치는 설렘과 행복, 그리고 사랑을 보았다는 것

그 느낌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 뜨겁게 남아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이들과 같은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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