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인복이 많아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퇴사를 결정하고 뜬금없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고 선포해도
반대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하나 없이 오히려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어서,
그래서 내가 내린 결정이지만 나조차도 두려운 마음이 몰려들 때에도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늘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에 들어오신 날이었다.
엄마랑 같이 집밥을 먹다가 그날도 엄마랑 같이 해밀턴과 탕갈루마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평소에 응원의 말씀을 건네던 아빠와 다르게 그날은 술에 거하게 취하셔서였을까.
내 대학 동기들은 나 빼고 모두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교사로 안정된 삶 꾸리면서, 내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좋은 대학 가서 좋은데 취업해서 커리어 쌓으면서 그렇게 잘들 사는데 나는 대학도 친구들만큼 좋은데도 못 가고 임용고사를 제대로 준비한 적도 없고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갑자기 호주에 가겠다니.
나는 왜 남들처럼 제대로 뭔가를 해내는 게 하나 없느냐고 그렇게 한숨 섞인 소리로 내게 말씀을 하시는데,
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엄마 아빠라서 든든하다 느끼고 있었기에 더욱 깊은 상처가 가슴을 후벼 팠다.
탕갈루마와 해밀턴 사진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눈물이 가득 고이다가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가 않아서 늦은 밤중이지만 혼자 집 앞 놀이터 공터로 나가 아주 오랫동안 목청껏 울었다.
남들이 보는 객관적인 잣대로 보면 내 인생이 그저 아빠가 말한 대로만 평가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선택한 길들을 단 한 가지도 후회한 적 없이 누구보다 진심으로 행복하게 나에게 맞는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만족하며 스스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로 인해 한순간에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취중진담으로 하신 말씀 중에 단 하나도 동의할 수가 없었다. 우리 대학의 우리 과에 진학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즐겁고 빛나는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공립학교의 교사가 된 대신에 집 앞 가까운 곳에 취직하게 된 덕분에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얼마나 즐겁게 함께 일을 할 수 있었고 부모님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는지, 단순히 명문대학 타이틀, 선망받는 직업과 커리어보다 비록 남들과는 다르지만 나는 나에게 중요한 그런 삶의 가치들을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아빠가 꼭 아셨으면 좋겠다는 오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