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on Road

그때 그 생각 - 8

18/09/02

by 김민지

이제부터 한동안은 자유의 몸이니 늘어지게 늦잠 자야지 하고 일부러 늦게 잠드는데도 어김없이 출근 기상시간에 딱 맞추어 눈이 떠진다. 일을 하는 일 년 반 동안 딱히 아픈 적 없다가 마지막 날이었던 금요일에 송별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갑작스럽게 감기몸살이 덮쳐왔다. 계속 인수인계와 새 학기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다가 비로소 긴장감이 풀어지니 아프기도 할 여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떠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울음이 쉴 새 없이 터지고는 했었는데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때부터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터라 그런지 막상 내가 떠나는 날에는 의외로 덤덤했다. 매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어 너무 친숙했던 그곳이 마지막 날에는 되려 낯설고 새로운 곳처럼 느껴져 이상했다. “선생님 이제 진짜 여기 안 와요?”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도 ‘내가 정말 떠나는구나’라는 걸 나 스스로도 계속 상기시키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임용은 어차피 생각이 없었고 얼른 교육 쪽 분야로 취직을 바로 하고 싶어 구직활동을 시작했는데 운 좋게 며칠 안되어 어느 날 전화를 받게 되었다. 잔뜩 긴장한 채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곳에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가던 어린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채용 전화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그곳이 내 첫 직장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끊임없이 실수를 연발하고 참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열심히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큰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잘 몰라서 나도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아무리 다른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신다고 해도 정말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뭐든지 내가 스스로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게 미흡하게만 보이는 때들이 서러울 때도 있었다. 마음 깊숙이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는데도 결국 떠나고 마는 아이들이 아쉬워 슬플 때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다고 해도 그런 노력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결과와 달리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저런 마음들과 별개로 나는 이 일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나를 잘 따라주는 예쁜 아이들과 옆에서 늘 힘이 되어주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사실 대부분은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가 있었다. 순수함이 온전히 남아있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에게까지 그런 순수하고 밝은 마음이 물드는 것 같아 하루에도 수차례나 행복한 마음이 들고는 했다. 내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때로는 학부모님들께도 전해져 진정한 의미로 교감이나 소통이 이루어질 때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보람되었다. 막내로 들어와 실수 투성이었던 내게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곤 했던 선생님들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배우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를 활짝 반겨주며 친구처럼 대해주고 조언해주던 유쾌한 원어민 선생님들 덕분에 처음 해보는 모든 일들이 힘들기보다는 재밌다고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도 예쁘고 선생님들도 좋으시고 집도 가깝고 일도 적응이 되어 점점 수월하니 이곳에서 적어도 3년 정도는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3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더 이상 그동안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모든 것들이 점점 불행한 마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는 수준이 되었다.


페파를 만난 이후로 내 삶의 모든 것의 가치는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가에 따라 기준이 정해졌는데 여러 번 고민을 거듭했지만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나 분명하게도 ’No’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이곳에서의 3년조차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지금 내 나이가 26이니 3년을 채워 일한다고 하면 28살일 텐데 그때가 되면 더욱더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주저되지 않을까. 아직도 한청 젊을 때다. 그때가 되어 이곳을 떠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후회를 하느니 막막하더라도 지금 떠나는 게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결심이 확고해졌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되자 시원섭섭한 마음과 후련한 마음,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떠올라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지만 더도 덜도 말고 딱 지금까지의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했다. 무엇을 하든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되 후회 없도록이라는 내 신조에 맞게 이 경험 또한 앞으로의 삶의 귀중한 바탕이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 스스로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기쁘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삶의 여유와 행복을 찾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련다. 아니, 사실 그리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후회 없이 남은 소중한 시간들을 즐기리라고 마음먹었다. 앞으로도 민지스럽게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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