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의 비행이 지루할 틈도 없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다다랐다. 공교롭게도 이 도시는 8년 전 가족들과 처음 유럽여행에 왔을 때 도착한 곳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작은 키가 캐비닛에 닿지 않아 도움을 받아 내 묵직한 배낭을 끌어내려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옮겼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라 무작정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전광판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알 수 없는 독일어를 가만히 들여보고 있으니 그제야 내가 정말 유럽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중앙역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는데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봐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것과 달리 움츠러드는 마음에 그냥 공항철도를 탔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했던 호스텔에 도착하니 오후 6시 반 정도가 되었는데 바깥은 훤한 대낮처럼 밝았다. 떠나기 전날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들뜨는 마음에 잠을 5시간밖에 못 잤고 비행기에서도 1시간밖에 안 잤다. 더구나 한국과 8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한국이었다면 이미 새벽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으므로 내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신기하게 몸도 정신도 너무나 맑았다. 이대로 잠이 들기는 아쉽다는 생각에 얼른 짐만 풀고서는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를 가야 할지를 몰라 일단은 큰 대로를 따라 걸었다. 화요일 저녁 7시밖에 안되었는데도 모든 상점 문이 닫혀 있었고 거리에 사람들도 드문드문 있어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놀랐다. 아무리 8년 전이라지만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어 낯설지 않을 것 같았으나 모든 거리와 광장의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 닿았는데 알고 보니 그날 이 도시에서는 Ironman이라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독일 전통 집들 앞 광장에는 맥주와 음식을 파는 수많은 천막들과 인파로 가득 차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흥에 나 역시 덩달아 흥분되었다. 유명하다고 하여 기대했던 이곳의 특산물인 사과주는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과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꽤나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나와 같은 아시아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면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거닐다가 어느 순간 시계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서 환한데 시간은 벌써 4시간이나 지나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는 게 정말 이상했지만 다음날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이렇게나 알차게 돌아다닌 것에 대해 첫날부터 큰 만족감이 들었다.
내일은 어디에 갈지 정하려다가 그냥 되는대로 정하는 게 낫겠다 싶어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시작부터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다는 생각에 다분히 기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