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로 지낸 상태가 길어서 마음의 준비는 된 지 오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떠날 날이 결정되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졌다.
첫 직장이 된 곳에서 영어로 간단히 면접을 보기는 했어도 한국에서 보는 영어면접이랑 영어권 국가인 호주에서 보는 영어 면접은 아무래도 차이가 클게 아닌가.
6일에 도서관에 가서 영어 면접에 관련한 책을 빌려 급한 대로 쫓기듯이 준비하기는 했지만 어떤 질문들이 나올지 몰라서 막막하기만 했다. 대략적인 기본적인 내용들을 준비해서 노트에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해서 틈틈이 연습하는 게 제한적인 시간 내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같은 날 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1년 동안 꼬박 남아있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는 데에 썼고 또 호주 워홀을 준비하면서 비자, 신체검사 비용, 백수로 지내면서 쓴 생활비, 노트북과 고프로 등 필요 물품 구매에도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에 통장에 남아있는 돈은 400만 원가량이 전부였다. 워홀 초기 자본금으로는 부족한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넉넉하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운전면허 시험은 필기시험이랑 기능시험은 둘 다 한 번에 붙었는데 도로주행은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일주일만이라도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탕갈루마 면접 날이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지는 바람에 다시 볼 여유가 없어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여행을 다닐 때에도 제약이 많을 것 같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유효기간도 지나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초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도 만났다. 대학 동기가 헤어지면서 건넨 달 램프를 선물 받고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그 사람들 많은 강남역 한복판 버스 정류장에서 미친 듯이 오열했다. 고작 몇 년 동안 잠깐 못 보는 건데 그냥 나도 주체할 수가 없이 눈물이 터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같은 반, 한동네 살고 지금까지도 툭하면 아무 때나 편하게 만나 맥주 한 캔씩 마시던 이성친구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평소 같으면 오글거리게 왜 이러냐고 웃으며 장난쳤을 텐데 이때는 나도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엄마 아빠 동생이랑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직장인이 된 후로도 쭉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서 평소에도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많았지만 이 당시에는 아빠랑 그때 이후로 떠나기 전까지 사이가 삐그덕 대서 마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빠도 걱정이 앞서서 그러시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도 딸인지라 더 속상한 일이 많았다. 떠나고 나서 잘 지내는 걸 아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도 아니게 될 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