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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일기_새로운 강사님, 제발 저리 가주세요..

내성적인 서비스직 강사님과 중급반에 남고 싶은 나

by 잼써


해가 바뀌면서 강사도 바뀌었다. 작년 12월에 중급반으로 올라오면서 새로운 강사를 만났는데, 한 달만에 또 다른 강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중급반에도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왔다. 매달 새로운 사람들이 생기는데, 어떻게 수영장은 사람으로 넘치지 않는 걸까 정말 미스터리다.


중급반에 올라온 직후에는 혼자 어드벤처 찍느라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날 있었던 일도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는데(친구: "이런 일이 있었잖아..!", 나: "그래? 몰랐어."), 이제 슬슬 중급반 사람들 얼굴이 낯익어진다.



중급반 탐색 중


준비 운동을 리드하던 강사가 중급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올해부터 우리를 가르쳐줄 강사가 이 분이구나.


기초반 강사가 휴가로 자리를 비웠을 때 한 번 봤던 분이었다. 수업을 딱 한 번 했고, 대체였기 때문에 이 분의 강습 스타일까지는 몰랐다.


우리도 강사를 잘 모르지만, 강사도 우리를 잘 모르니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몇 가지 동작을 알려주고 수영을 시키면서 사람들을 살펴봤다. 동작도 잡아주고, 설명도 하기는 했지만 주로 사람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


“회원님은 중급반 온 지 얼마나 되셨어요?”


역시나 꽤 뒤처져 있는 나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저번 달에 왔어요.”

“그러면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되셨나요?”

“어… 자주 쉬어서… 잘 모르겠는데…”

“대략적으로…”

“그런 거 같아요.(사실 잘 모름)”


대답하고 나중에 생각해 봤는데, 그 정도 된 거 같다.(11개월..?)


또 불안감이 엄습했다.

강등의 불안...




가고 싶지 않아 기초반


새로 등록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지 못하고(혹은 다른 수영장에서의 시스템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잘못된 반으로 오면, 강사의 권한으로 반을 조정하기도 한다.


월수금반은 '기초/초급/중급/상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목반은 '기초/ - /중급/상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월수금반이었다면 '초급반'에 갓 올라갈 실력 정도 되었을 텐데, 화목반이기 때문에 중급반에 있는 거다.


그래서 혹시 강사가 나를 강등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들긴 했다. 그런데 이런 질문까지 받다니 비상이었다. 가능하면 강사의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수업을 며칠 하다가 강등되지는 않을 테니, 첫날을 버티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강사가 또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니! 저기 딴 사람 봐주라고요. 저 사람 수영하잖아요!’


“기초반이랑 중급반이랑 사람들 실력이 차이가 좀 나나요?”


함정이다. 함정의 질문!!


“어… 잘 모르겠어요.”


대충 말하고 후다닥 내 수영하러 가려는데, 강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오오~ 자신감…”


'읭? 이게 무슨 말이야. 자신감이라니?'하고 돌아봤다. 내 표정이 썩었던 것일까?


“아… 농담한 거예요.”


강사의 반응에서 서비스업을 하는 내향인의 노고 같은 게 느껴졌다.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당황스러움. 극 내향인인 나도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설명을 좀 더 했다.


“아니요. 아니요. 자신감 전혀 아닌데… 제가 말을 잘못 이해했나 봐요. 자신감 완전 없고, 적응하느라 힘들어하고 있어요…”


"아아 시간이 좀 걸려요.."(이런 뉘앙스로 얘기했던 거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난다)


기초반 사람들의 실력과 중급반 사람들의 실력을 가늠해 보면서, 나를 내려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 간을 보는 걸까?

아 몰라. 난 그냥 여기 있을 거라고요 선생님!


나의 눈에 띄는 실력과 뒤쳐짐을 숨길 순 없었지만, 그래도 간신히 하루는 버텼다.





깊은 물에서 올라오기가 힘들었다


그다음 수업에서는 다이빙도 했다. 다이빙은 깊은 곳에서 하기 때문에 먼저 반대편 쪽으로 수영해 가야 했다.


보통 수영장을 빠져나올 때, 제자리에서 약간 도움닫기를 한 후 그 반동으로 올라왔다. 이게 너무 자연스러웠어서, 이 과정에 '도움닫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것 같다.


반대편 쪽에 도착한 후 수영장 바깥으로 나오려는데 도움닫기를 하지 않으니 몸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당황스러워 다이빙 대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잡고 몸을 끌어올려 보았다.(<- 절대 이래선 안돼) 택도 없었다. 몇 번 실패를 하자 나한테 스노클을 알려줬던 아저씨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 그렇게 올라오면 안 되는데!!"


수영장 나오기.png


사람들이 다 날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더 안 올라와지는 것 같았다. 물 밖에 있던 강사도 내가 헤매를 걸 보고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물안으로 들어왔다.


스노클 아저씨가 뒤로 앉듯이 올라와야 한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 그래서 뒤로 돌아 올라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와서 다이빙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나 스스로 짐짝 같이 느껴졌다.


중급반 사람들에게 볼거리 좀 그만 제공하고 싶다...ㅠ




다이빙 수업


작년 12월에 다이빙 수업을 했을 때, 수경이 자꾸 벗겨져서 엄청 고생했었다. 이번에는 수경도 잘 조여진 상태고, 다이빙 직전에 안경 부분을 눌렀더니 수경이 벗겨지지는 않았다.


한 달만에 다시 한 것치고는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뛰는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물에 부딪힌 후 물안으로 순간 이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로 이번 수업의 마지막 다이빙을 하려고 레인에 섰는데, 강사가 물었다.


"물이 아직 무서우세요?"

"네..?"


'갑자기 이건 왜 물어볼까?'


아, 물론 무섭다.

그런데 나는 무서워하는 게 너무 많다. 평소에도 늘 약간 긴장해 있는 타입이고, 몸치라 모든 게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내가 무서워하는 다른 것들에 비하면... 글쎄, 이제 그렇게까지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물을 많이 무서워했는데, 영법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니 오히려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뭔가...

약간...


이 상황에서 내가 아니라고 하면, 뭔가 '아니에요 괜찮아요..^_^(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랍니다)' 이런 느낌이거나, '아닌데요?(사실은 덜덜 떨고 있음)' 뭐 이런 정도의 느낌 아니었을까?


게다가 강사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물어 봐 준 것 같은데, 어떤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강사가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했다.


“괜찮아요~ 지금은 그럴 수 있어요. 잘하고 있으니까~”

"네…"


어쨌든 이 정도면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친절하신 강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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