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 끼면 정말 빠르고, 사람들은 다정하다
중급반 수업에서는 스노클뿐 아니라 오리발도 필요하다.
친구 J가 알려줘서 오리발이 발목에 무리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발목이 아직 안 좋으니 롱핀은 진짜 안 될 것 같아서… 숏핀을 새로 구매했다. 오리발을 안 끼고 며칠 버티며 발목이 회복되길 바랬지만, 오래전 다친 발목은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았다.
남대문 시장까지 직접 가서 신어 보고 산 롱핀은 개시도 못 해 보고 다시 장롱으로 들어갔다. 웃긴다. 롱핀을 무려 2년 전에 준비해 뒀다니... 몸치에게도 꿈과 희망은 있었구나.. 당근 마켓에 팔까 잠시 고민했지만 발목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숏핀은 실리콘 재질이라 말랑말랑해서 누르면 누르는 대로 밀리고, 보통 오리발에 비해 매우 짧다. 오리발이 아니라 개구리 발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거 같은 느낌. 그래서 사실 숏핀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었다. 오리발이 필요한 수업에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 예의상 가져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오리발을 끼고 발차기를 하니 앞으로 쭉쭉 나갔다. 내 속도에 좀 놀랄 정도. 속도가 좀 붙으니 수영하는 게 되게 재밌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수영하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수영장에는 뚱뚱한 사람, 무릎 수술하신 할머니, 장애인도 오는데, 수영장을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자세와 물결이 잘 맞으면, 물이 내 몸을 부드럽게 지나가 기분도 좋아진다.
오리발은 스노클과 달리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저 발에 신고 평소처럼 수영하면 된다. 오리발을 끼면 물의 저항을 많이 받아 발목이 펴지고 올바른 자세에 가까워져 자세 교정을 위해서도 많이 쓴다고 한다.
말랑한 숏핀을 꼈는데도, 조금 돌다 보니 다친 쪽 발등 부분이 아파졌다. 수업 중간에 뺄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무리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마지막쯤에는 벗었다. 이것도 점차 나아지겠지. 오리발을 끼고 무리했던 친구 J가 발등 통증으로 가끔씩 고생하는 걸 보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턴은 아직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친구 J가 수영 연습하면서, 자꾸 나한테 턴을 해 보라고 시켰다. 지금 배운 것도 못하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왜 자꾸 하라는 건지 싶어서 거절했는데, 중급반 수업 내용 중 하나라는 거다..!
목요일에 매번 다이빙을 했어서 '목요일=다이빙 수업날'로 알고 있었는데, 턴을 배우기도 한다고 한다. 강사가 첫날 말했다는데 나는 못 들었다. 자꾸 뒤처지다 보니 수업 내용의 반만 듣는다.
그래서 부랴부랴 바로 턴을 시도했다. 예전에 친구를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다. 머리부터 잠수해서 한 바퀴 돈 후 벽을 발로 차서 앞으로 나아간다. 딱 봐도 코에 물이 왕창 들어갈 수 있겠거니 싶어 숨을 아주 크게 들이마신 후 돌았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시도했기 때문일까. 숨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입수를 해 버렸다. 입수하자 코에 물이 쭈욱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는 바닥에 가깝게 들어가고 하체가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기 때문에, 코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해도 수면 밖으로 나올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으악!!"
수영장 벽에 기대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코에 물이 들어가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내 두개골 안에 뇌가 어느 정도로 분포되어 있는지 구석구석 고통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머리를 막 때렸다. 옆에 누가 있고 없고, 쪽팔리고도 없었다.
고통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고 누가 그랬었나?
맞는 말이더라.
고통이 쉽게 가시지도 않아 한참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고개를 드니, 옆에 있던 어떤 분이 슬그머니 다가와 숨을 아주 세게 내 쉬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코에 물이 들어가서 정말 힘들다고. 말해 주었다.
초급반과 달리 중급반은 새로 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은 꽤 꾸준히 출석하는 편이다. 중급반에서 특출 나게 처진다 싶은 사람이 나뿐이라서 그런가, 사람들이 좀 안쓰럽게 보고 보호해주려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맘을 쓰는 건 당연히 내 친구 J다. J는 내가 뭔가를 못할 때마다 학부모처럼 본인이 더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볼품없게 못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지, 안타깝고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고. 아주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데도, 꾸준히 잔잔바리로 다쳐온 터라 걱정이 되나 보다.
아직까지 낫지 않은 부상만 나열하자면,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발목을 삐었고, 골반 스트레칭을 하다가 엉덩이 근육이 골반 뼈를 반대로 타고 넘어가 듯한 이후 큰 통증이 있었고, 요가매트 위에 앉으려다가 손가락을 삐끗했다.
강사도 종종 힘드냐고 물어 봐 주고(다른 회원들한테는 피드백을 해주는데, 나한테는 응원을 주로 해 주는 거 같다), 수영장 바깥으로 못 나올 때 방법을 알려 주던 아저씨도 있었고, 오리발을 끼고 평영 발차기를 하던 나를 보고 자유형 발차기로 해야 한다고 아주 다정하게 알려주던 여자도 있었다.(오리발로 평영하면 정말 느리다. 오리든 개구리든 평영은 못할 거 같다)
내가 초급반에서 에이스 취급을 받고 있었을 때, 평영 발차기를 잘 못하는 분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오지랖처럼 보일 수 있을 거 같아서 용기 내지 못했는데, 조언받는 입장이 되어 보니 고마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