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꼬막을 얻었다. 20kg짜리를 7명이서 나눠 가졌으니 한 명당 3kg는 되는 양.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꼬막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요리하기 너무 번거롭거나 너무 비싼 식재료는 사지 않으니, 이 조건 모두에 해당하는 꼬막은 공짜로 생겨야만 먹는 거였다.
물론 몇 년 전에 먹었던 게 맛이 없었다면 받아오지 않았겠지만, 분명 신선한 꼬막을 받았고, 맛있게 먹었고, 아주 탱글탱글 신선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조금 부지런 떨어서 꼬막 좀 먹어 보자~ 하는 생각으로 한 봉지 챙겨 왔다.
그런데 비닐을 열어 보니 상태가 좀 이상했다. 껍데기들이 죄다 깨져 있는 거다. 분명히 아주 싱싱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깨져도 되는 건가?
백반집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꼬막에서도 깨진 껍데기를 본 적이 없었다.
신선도를 떠나서 껍데기가 깨진 거 자체로도 문제인 게, 깨진 곳 사이사이에 뻘이 잔뜩 묻어 있고 조개가 물고 있는 뻘보다도 꺼내기 힘들다는 거였다. 검색을 하다 보니 ‘깨진 꼬막 절대 먹지 마세요’라는 기사글도 많이 나왔다.
악명 높은 옥천허브 터미널에 갇혀서 3박 4일 헤매다가 왔나? 의심이 많은 나는 신선함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이 꼬막들을 불신할 거였다.
그래서 꼬막 하나를 잡고 경첩처럼 생긴 부분을 숟가락으로 따 보았다. 확실히 아직 살아 있는지, 비틀어진 껍데기 사이로 조갯살의 힘이 느껴졌다. 이미 두 개로 분리된 껍데기도 조갯살 때문에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신선한 상태긴 하네.
안심하고 그 꼬막을 내려놨더니, 바닥이 빨간 피로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쉣..ㅠ 꼬막도 피가 나..
꼬막도 피가 난다고…;
이때부터 살짝 멘붕이 왔다.
그래... 암세포도.. 생명이고... 꼬막도... 생물이야...
이건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생물을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하는 과정까지 포함된 거였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몸을 바쳐준 생물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는 최대한 빠르게, 가능하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는 거였다.
서두르자...
빨리 죽이자...
빨리... 죽이자...
껍데기가 이미 깨진 건 어쩔 수 없으니 고무장갑을 끼고 꼬막을 계속 씻었다. 그런데 아무리 씻어 내도 물이 맑아지지 않았다. 역시나 깨진 껍데기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뻘이 문제였다. 하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대여섯 번 씻은 후 흐린 눈을 하고, 해감을 했다.
해감에는 좀 자신이 있었다. 요리용 전자저울이 있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보니 물 1L에 소금 30g 정도 넣으라고 쓰여 있었다. 물 1L도 개량할 수 있는 컵이 있었기에, 정확한 농도의 소금물을 만들 수 있었다.
물 1.5L에 소금을 큰 수저로 한 번.. 두 번... 세... 번.... 을 넣었다.
이게 맞나..?
이게 맞아..?
물 1L에 소금 30g의 소금물이 바닷물 농도와는 맞겠지만, 식재료가 담길 물에는 너무 짠 거였다. 또 의심이 도졌다.
아니야... 해감용으로만 쓰고 다 버릴 물이니까 괜찮을 거야...
소금물에 담긴 꼬막을 냉장고에 넣었다. 주변 정리를 하고 혹시나 싶어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꼬막들은 전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진짜 고집 세 보였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친구 어머니께 sos를 쳤다. 꼬막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전달했더니 명쾌한 답변을 주셨다. “그거 택배로 받았지? 택배 아저씨들이 던져서 어쩔 수 없어.”라고 하셨다. 대충 씻고, 삶은 후 꼬막 살을 물로 씻는 수밖에 없단다. 해감한다고 소금물에 오래 담가두면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시다. 우선 해감한다고 담가뒀던 꼬막들을 구출해 냈다. 물을 끓이고 3kg가 되는 꼬막을 몽땅 집어넣었다. 냄비 안의 물이 넘치진 않았지만 큰 냄비 꼭대기까지 꼬막이 다 찼다.
넘치지 않을 만큼 물을 넣었던 나의 감각에 우쭐해졌다. 내가 양은 잘 맞추지. 그런데 이게 큰 패착이었다.
꼬막을 삶을 때는 한 방향으로 계속 저어야 했다. 요리용 주걱을 찾아 돌리려고 하는데, 세상에... 그 주걱이 꼬막 사이에 꽂히지도 않았다. 꼬막을 조금 파내고 주걱 앞부분을 심어도 주걱만 헛돌 뿐 꼬막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양이 너무 많았다. 부랴부랴 고무장갑을 끼고 냄비에 담긴 꼬막 중 절반을 건져 냈다. 덜어낸 꼬막들이 좀 걱정스러웠다. (한번에 안 죽었다면 미안하다 얘들아..ㅠ)
정작 꼬막을 삶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끝났다 싶었지만, 더 큰 난관이 있었다. 꼬막을 따야 했다. 내가 잘못 삶아서 그런 건지... 꼬막의 60% 정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입을 다문 꼬막들은 뒤통수를 비틀어 살을 꺼내야 했다. 이걸 입 다물고 있는 모든 꼬막마다 해 줘야 하는 거다. 손 힘도 꽤 필요했다. 시간도, 힘도 너무 많이 들었다.
"와, 진짜 미쳤다. 11시까지만 까고 남은 거 그냥 버린다."
꼬막들은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초콜릿 조각처럼 생긴 뻘 조각을 물고 었었다.
약속된 밤 11시는 왔다. 아직 못 깐 꼬막이 세 줌 정도 남아 있었다. 이쯤 되니 꼬막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걱정해야 할 거 같았다. 수영으로 체력이 많이 올라와서 그렇지, 옛날의 비루한 체력이었다면 길고양이나 먹으라며 꼬막을 바깥에 뿌려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물론 이런 비슷한 일도 벌인 적은 없다. 입만 여포)
역시 체력이 성질이다.
공부할 때는 융통성이 끝내 주지만(주로 목표를 줄이는 쪽), 이건 칼 같이 지켰다. 11시가 되자마자 주변을 정리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니 체력은 또 귀신같이 회복되고, 눈앞에 있는 꼬막들이 아까워졌다. 그래서 남은 꼬막도 모두 까서 요리했다.
'이렇게 하면 꼬막이 맛 없어져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봤지만, 찬물에 조갯살을 다 씻어내고 인터넷 레시피로 꼬막 무침을 만들었다.(조금 맛없더라도 불쾌하지 않게 먹는 게 최고)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었건만 조갯살만 모아두니 반찬 통 하나 정도 양이 나왔다.
따뜻한 밥 위에 올려서 무채와 쓱쓱 비벼 먹었더니 진짜 꿀맛이었다. 살이 진짜 쫀득 탱탱하고, 간도 담백했다.
아마 다음에도 꼬막이 생긴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다 잊고 또 받아올 거 같다. 이래서 부모들이 둘째를 낳는다지...
꼬막은 공짜였지만, 비용이 든 게 있다. 고무장갑과 냄비 하나.(냄비가 다 기스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