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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

나는 의미 없는 결혼생활에 무척 지쳤다.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의미 없는 결혼생활에 무척 지쳤다. 서로 사랑하지 않은지 오래이고 배려하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아직 어린 아이가 걱정되지만 아이 때문에 나의 남은 삶을 불행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남편이 처음부터 내 말을 안 들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연애결혼을 했다. 그것도 어떤 조건이나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감정에 의한 연애를 했다. 결혼적령기의 남녀가 만나 그렇게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쉬울까? 아마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나는 결혼을 무척 하고 싶은 상황이었지만, 그렇더라도 날 순수하게 사랑해 주는 남편의 모습에 이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남편은 그야말로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당시에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였기에, 결혼을 추진하고 강행한 것은 남편 쪽이었다. 아마 그가 그렇게 추진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성향이나 여건상 결혼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남편은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를 선택해 주고 사랑해 줬으며 식물이 잘 자랄 때 필요한 것처럼 물과 공기와 적절한 햇빛을 제공해 주었다.


남편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던 나에게 본인 나름대로는 신실한 사랑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남편이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아마도 연애 때부터 알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우리는 성향이 너무 많이 달랐다. 강대강 또는 약대약 같은 관계라고나 할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한쪽이 강하게 나오면 약하게 받아주고, 또는 상대가 너무 약하면 강하게 끌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너무 강하거나 또는 서로 너무 받는 것만 바랐다.


또한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남편의 태도에 나는 힘들었다. 남편은 늘 불안해했다. 내가 너무 바쁜 나머지 가정의 대소사를 잊거나 놓칠 때마다 남편은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일 때문에 힘들다.'라는 말을 하면, 지지 않고 '본인이 얼마나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한테 전하려고 했다. 남편은 '나도 이렇게 일하고 있어. 너만 일하는 것이 아니야. 나도 많이 힘들어.'라는 메시지를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나에게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나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힘들다.'라는 나의 표현은 '그래, 이제 집에 왔으니 푹 쉬자.'라는 위로를 바랐던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어쩌면 '왜 나만 늘 상대에게 맞춰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히 나의 이해와 애정 또는 배려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애정을 갈구한다는 면에서 보자면 물론 남편의 방식이 잘못되었다(한편으로 나는 그런 것을 남편에게 많이 기대하지 않았았다). 그런 식으로는 나의 이해나 사랑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일한 휴식처나 다름없는 집에서 나는 쉬기 어려웠다.


이내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남편에게 '알았어. 우리 각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나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둬).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쉬고 싶은 곳에서 끝없는 잔소리와 내가 해야 할 의무나 역할을 강요받는 것이 고역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점차 많은 것을 체념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있는 것보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졌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매끄럽게 대화가 오고 갔던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사장의 애환은 사장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가,


바로 근처에서 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면 이 사람이 얼마나 바쁘고 정신적으로 지치며, 한편으로는 삶을 갈아 넣으면서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한 동안은 정말로 아무런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한 톨의 여유시간도 없는 날들이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나의 일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왜 저렇게 지나치게 일을 하고 있지? 나와 아이는 전혀 보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가족과 너무 멀리, 동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 필요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삶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내가 늘 살아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무척 사랑하더라도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십 년 가까이 함께 있으면서도 완전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와 관련하여 진지한 고찰을 하진 못했다. 그렇기에는 나의 삶에 좀 더 집중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ㅡ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ㅡ 결혼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과거로 회귀하여 내가 왜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선택하였는지에 대한 순수한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 나는 그때도 내 삶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결혼을 택하였는가? '

'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안전한, 사람을 고른 것이었을까? '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남편을 그때도, 지금도 역시 좋아하는지 여부였다.


최근에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결혼을 결정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부'이다. 다른 것은 없다. 상황과 조건은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게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긴 세월을 통해서라도 그것이 어떤 계기든 내가 상대방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무척 각별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면 분명, 삶의 갖가지 어려움을 겪더라도 그 결혼 생활을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못했던 나는 그만큼 방종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오로지 나뿐만 아니라 나의 남편에게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봄날이지만 무척이나 추웠던 어느 날 자정, 산책길에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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