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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힘들게 일을 해요!

워킹맘 변호사의 일상

by 정현주 변호사


법률사무소 봄을 열고 개업변호사가 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넘었는데, 사실 내가 개업을 하기로 최초로 마음먹은 것은 아직 유치원생인 딸아이 때문이었다. 사실 나 혼자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하든 어떠하리. 나는 우스운 말이지만 닭갈비집을 연다고 하더라도 망하지는 않을 나름의 자신감(?)은 있었다.


오히려 닭갈비집을 연다면 북적북적한 서울을 떠나 호젓한 춘천의 소양강을 바라보는 곳에 서울보다는 훨씬 저렴한 집을 구해 여유롭게 일하면 된다. 그리고 비수기가 찾아오면 가게문을 닫고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책을 읽으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된다. '적자만 안 생기면 되겠지.'라는 것이 나의 사업모토니까,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돈을 벌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되면 당연히 몸을 혹사하게 된다. 어떤 목적이 생기면 그만큼 잃는 것이 생긴다. 또한 인생의 중간지대는 없어서, 내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순간 무조건적으로 잃는 것이 생기게 된다. 가장 좋은 선택은 내가 무엇을 잃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선택은 정말 어렵다.


나는 딸을 위해 개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나, 봄 사무실의 자리를 잡기 위하여 그야말로 '헌신'을 하는 중이다. 심지어 같이 일하는 변호사님 중 한 분은 '변호사님이 일하는 것을 보고 개업을 좀 더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변호사님은 하루 종일 전화를 하고, 너무 자기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라고 말할 정도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늦기도 하지만 당연히 유치원을 다니는 딸의 숙제를 봐주거나 놀아줄 만한 여유는 전혀 없다.


특히나 변호사란 직업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고 일종의 해결책(solution)을 제시해줘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소모가 많다. 나는 농담으로 의뢰인은 신경 써줘야 할 여자친구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100건의 사건이 있다면 100명의 여자친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어떤 목적을 세우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굉장히 많은 집중을 하는 편이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열정적으로 개업변호사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딸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으나 지금은 일이 우선인 것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일이 너무 바쁘고 지치는 나머지 집에서의 나는 일을 하지 않는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잠들어 있다. 흡사 70~80년대의 아버지상을 보는 것처럼.




또한 유치원에는 신경 써야 할 것이 왜 이리 많은가! 같은 동성 친구들 엄마들과 단톡방에도 참여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상담도 가야 하고 스승의 날 선물도 사야 한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유치원에 방문하여 상담을 하는 날이었다. 그것도 어렵게 잡은 오전 일정이었다.


" 바쁘시죠~~ "


유치원이 하도 얼굴을 비추지 않으니 담임선생님과 원장선생님할 것 없이 '바쁘시죠~'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재빠르게 시간을 체크해 본다. 그런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좀 마음이 아프다.


" **이는 늘 엄마가 힘들게 일을 해요. 주말에도 일을 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엄마는 tv에도 나왔어요. 나도 엄마처럼 tv 나오고 싶어요.라는 말도 해요. 정말 기특하게도 늘 종일반에 있는데 다른 선생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싫은 내색을 전혀 안 해요. 이맘때 애들은 종일반에 있으면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는 정말 씩씩하게 잘 있어요. "


딸이 '힘들게 일을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걸까? 아니면 내가 워낙에 힘든 얼굴을 하고 나도 모르게 힘든 내색을 해서 그런 걸까. 그 말은 뭔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전업주부 엄마를 만나 집에서 요리도 해주고, 같이 놀이터를 가주고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딸한테는 가장 행복한 일일 텐데. 나도 함께 전시를 보러 가고 뮤지컬을 보러 간다면 딸과 좀 더 친해질 텐데.


물론 사람은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다. 나는 '일을 하는 엄마'를 선택한 것이다. 대신에 딸이 컸을 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자고 다짐했다. '일을 하는 엄마'를 택한 나머지 내가 잃어가는 것도 분명히 있겠지만 분명히 나는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또 내가 해야만 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의 길은 왜 정답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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