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혼자 길게 ㅡ 여행을 다녀오면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되곤 했다. 그 시간들의 의미는 물론 그 시간들이 무조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어제는 (아마도 처음 와 보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수없이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린 해안가의 모래사장은 내가 알고 있었던 바닷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때까지 나는 모래사장을 잠시 걸으며, 바다를 둘러싼 빌딩들의 불빛들을 바라보면서 블루투스로 최근 즐겨듣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걷기 시작했다. 바람은 기분 좋게 불어오고 있었다. 다음날에 크게 해야 할 일들이 없다는 것이 안심이 되기도 했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신선한 자유로움을 함께 안겨줬다.
물론 광안리 해수욕장을 즐기러 밤에 나와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대부분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나를 전혀 보지 못했다. 나는 마치 투명 인간처럼, 수많은 인파 속에 사라져 밤길을 걸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물고기떼 같았다. 우연히 대로변에 있던 사주·타로라고 크게 적힌 어느 가게에서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지만 그 외에는 나를 알아보거나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타로 남자조차 단 몇 초 만에 나의 형태를 영원히 잊어버렸을 것이다.
익명성(匿名性)은 가장 효과적인 자유의 수단이다. 특히 여행을 떠났을 때 익명성에 기대어 숨어 있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삶에는 반드시 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는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잘 알지 못했다. 끊임없이 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어느 순간 상대가 원하거나 기대하는 나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채 어딘가에 단단히 매인 채 살고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작은 가게에서 바다를 담은 반지를 발견했다.
2. 바다를 담은 반지 - 소유(所有)
그곳은 바다 앞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어쩌면 그저 그런 가게였다. 나 또한 시장을 걷다가 한 번 스쳐갈 뻔했던 것이다.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 있었던 작은 가게, 바다를 담은 반지를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우연처럼 가게에 들어갔고, 많고 많은 바다 소품들 속에 바다를 담은 반지가 숨어 있었다. 내 시선은 반지의 돌에 머물렀다. 예쁜 돌 속에는 산호초가 실린 작은 바다가 담겨 있었다. 내 손에 맞는 것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맞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돌들은 각기 다른 바다를 품고 있었다. 사람마다 바다를 보는 시선이 모두 다르듯이 말이다.
다채로움.
반지, 어떤 손가락에도 맞지 않을 만큼 무척 큰 사이즈였다.
무엇인가를 간직하기에는 나는 너무 옅고 흐리다고 생각되었지만, 뭐 그렇더라도 ㅡ 누구에게든 팔려나가면 그만인 상황의 반지라면 잠시 잠깐 내가 가져도 되겠지.
( 소유한다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소유ㅡ 와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얼핏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갖고 싶다.는 일차적인 감정만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소유(所有)는 늘 어렵다. 소유를 말하자면 ㅡ 나는 여전히 가급적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
이번 여행에서는, 그날의 밤이 가장 좋았던 때로 남는다. 나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길을 걸었다. 낯설었던 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를 때까지 한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문득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용은 없는 허밍(humming) 같은 것이다.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가는 음표의 향연이다.
물론 내 귀에는 더 이상 음악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3. 각별한 선물들,
나는 종종 나 스스로가 공기 속에 흩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형체가 없다.
사실 형체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지 않는다.
사실상 나는 내 주위의 그 누구보다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인 일을 처리하는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변호사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내밀한 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미 길을 잃은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늘)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 대한 아무런 공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설득이 가능할까?
그런 면에서 나는 변호사의 일이 역시 잘 맞는 것 같다.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주인공을 위해 맞서 싸워줄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맡은 현실적인 일이 처리되면서 나 자체는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도(익명성의 관점에서) 좋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음이 담긴 각별한 선물들을 종종 받는다.
부산 출장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내가 주문하지 않은 택배가 내 이름으로 와 있었다. '가죽 제품'이라고 해서 무엇인가 싶었는데 ㅡ 이토록 예쁜 선물이 담겨 있었다.
브런치를 보고 멀리서 찾아왔던 상담 의뢰인
물론 그녀가 기억이 난다.
나의 글을 읽고 찾아오는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녀의 마음을 공감하면서도 또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찾아온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ㅡ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예쁜 나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초록색 ㅡ,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는 것일까.
각별한 시간들이 지난다.
공기 속에 흩어진 나는 여전히 형체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ㅡ 오늘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