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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하면 정말로 후회할까?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길을 걷고 있는데 오래간만에 예전 의뢰인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한 달 전쯤, 조정을 통해 이혼을 하였는데 전 남편이 아직 조정조서에서 합의한 대로 재산분할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 조정조서에 있는 내용은 저희가 바로 집행을 할 수 있어요. '


나는 친절하게 남편의 사업자 계좌를 알고 있으면 통장을 압류하여 추심할 수도 있고, 다른 재산이 있으면 압류하여 경매도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조정실에 앉아 있었던 그의 모습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런데 전 남편이 이혼 이후로 연락하지 않아요? '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변호사님? 의뢰인은 깜짝 놀란 듯이 나에게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혼 이후로 전 남편이 ' 애들이 보고 싶다. ' , ' 이혼을 후회한다. '라는 식으로 계속 연락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그가 조정조서에 적혀있는 내용을 왜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는지 수긍이 갔다. 그는 조정조서의 내용을 이행하면 그것과 동시에 그녀와 더 이상 연락할 만한 것이 사라질까 봐 미루고 있는 것이었다.


연락할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나의 말에, 그녀가 정말 궁금한 듯이 묻는다.


' 그런데 변호사님은 그런 걸 어떻게 아세요? '


나는 물론 그를 조정실에서 처음 본다. 조정이혼은 만약 합의가 되면 그날로 바로 이혼이 된다. 당사자의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판결과 달리 항소도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 길고 긴 - 소위 말하는 질질 끄는 이혼소송과 달리 무척이나 간단하고 쉬운 이혼 방법 중의 하나이다.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할 때 굳은 결심을 가지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나는 변호사지만 가사조정위원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년부터 올해까지 정말로 수많은 이혼 조정을 중재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조정실에서 이혼을 하는 당사자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얼굴을 보면,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다.


이혼 조정실에서 처음 본 그의 얼굴은 분명 후회하는 듯 보였다. 사실 처음에 이혼을 원했던 것은 그였다. 나는 이혼을 먼저 요구하는 남편을 설득하다가 결국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온 그녀를 대리하게 되었다. 나를 찾아온 그녀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혼 사유에 대해 밝혔다.


' 남편이 몇 년 전부터 사업을 하는데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대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며칠 전에는 아예 집을 나갔고요. 저랑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나.. 제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아요. '


그녀는 남편의 외도 사실로 너무 큰 충격을 받고 공황장애가 와서 정신과도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많이 정리되었다.


' 아이들을 데리고 지방으로 떠날 거예요. 거기서 새롭게 일도 하고요. '


객관적으로 그녀는 무척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하얗고 예쁜 얼굴에 몸매도 무척 좋은 미인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대단히 이해가 빨랐다.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와도 말도 잘 통할 것 같았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는 것은 포기했고, 오히려 자기 쪽 과실이 아니니 남편에게 더 많은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혼을 좀 더 유리하게 자신의 쪽으로 끌고 가려고 마음먹었다. 결국 몇 차례의 조율 끝에 이혼은 조정으로 빨리하기로 의견의 합치가 있었고, 막상 재산분할이 정리되자 조정도 금방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혼 조정실에서 본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표정도 어두웠다. 현재 상황에 대하여 충분히 납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상황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일까? 반대로 나의 의뢰인은 조정실에서 나오면서 '가뿐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 정말 지긋지긋했다. 빨리 끝나기만 바랐다. '라고 말했다. 막상 이혼을 하니 그녀에게는 어떤 후회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분명 그가 그녀에게 연락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한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혼 조정실에서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말하며 남편에게 양육비를 조금 더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혼 조정을 하면서 양육비나 재산분할에 대한 다툼이 생기면 양 당사자 중 한쪽만 남기고 다른 쪽은 잠깐 나가있도록 한다.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정위원으로서는 양 당사자와 분리하여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다른 한쪽을 설득하기에도 그 편이 훨씬 낫다.


양육비 문제 때문에 조정이 상당히 길어지게 되었지만 남자는 단 한 번도 여자 쪽을 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남자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양보하면서 조정은 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더 내어주기 싫어했지만 그렇게라도 지금의 상황을 얼른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여자는 자신이 왜 이혼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건지 아직도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하며 계속 눈물을 보였다.


' 그냥 갑자기 이혼을 하자는 거예요. 여자가 생긴 건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생긴 것 같다고 의심을 하긴 했어요. 하지만 알 수가 없죠. 증거가 없으니까. '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경우에는 뚜렷한 이혼 사유가 없으니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너무 많이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이기적이며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녀와 달리 조정실에서 만난 그는 이혼에 대해 전혀 후회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떤 부분이 그를 그렇게까지 마음먹게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는 정말로 오랫동안 이 순간을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사조정위원,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특히나 이혼 조정을 많이 중재하다 보면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불현듯 느끼는 것은 이혼 또한 결혼처럼 그 시기가 정해져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원하는 때에 결혼을 할 수 없듯이, 내가 원하는 때에 이혼을 하기도 어렵다. 인연의 끝. 은 내가 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대방의 변심이나 상황에 따라 정해지기도 한다.


인연의 끝. 은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쪽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면 후회한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전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아진다.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었을 경우에는 특히나 더욱 그렇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현재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선택을 하였든 결국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인생은 바뀌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친구와도 그렇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삶에서 많지 않으며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 결별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많은 것들이 훨씬 더 좋아진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나간다. 나는 이혼을 한 많은 의뢰인들과 종종 연락을 한다.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이혼을 한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들 중에는 새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사는 경우도 있고 또 예전과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 이혼에 대하여 후회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선택의 결과가 아닐 때이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때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수를 한다.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삶에서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평생을 방황하기도 한다.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값진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삶을 그저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유한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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