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가야할 길,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벌써 연말이 다가왔다. 이제는 완연하게 찬 바람이 불고, 거리에 사람들은 두툼한 코트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걷는다. 법률사무소 봄을 만들고 개업을 한 지도 벌써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이른 아침,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 커피가 떨어져 오래간만에 믹스 커피에 물을 가득 붓고 책상에 앉으니 2년 전 이맘때쯤 법률사무소 봄을 만들던 처음의 그때의 내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개업을 준비하며 당시 마케팅 업체를 찾아보다가 선릉에 있는 포스코빌딩의 테라로사 커피에서 allen을 만났다. 그 후 allen을 만나 함께했던 몇 달간은 상당히 신기하고 즐거운 기억이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측면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 나는 매일 같이 남양주를 드나들면서 봄 사무실의 인테리어 공사가 잘 되는지,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늘 고민했다. 당시에는 일을 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어(또 주위에 대부분의 동기들에게 내가 개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길동에 있는 테라로사에서 주로 서면을 썼다. 그리고 가정용 복합기로 출력을 하고 정성스럽게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서면을 쓰고 나오는 길에 하얀 눈이 펑펑 내려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 눈을 천천히 헤치고 눈사람이 되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시절에는 종종 서면을 쓰고 거의 매일 피아노를 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의뢰인과의 연락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하고도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집 앞에 투썸플레이스 커피숍이 있었는데, 인테리어 공사로 사무실이 없었기에 투썸플레이스에서 수임을 상당히 많이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기이한 일이다. 아무리 변호사라지만 나를 믿고 투썸플레이스까지 와준 의뢰인들도 신기하지만 당연스럽게 또 거기서 수임료를 건네받다니..). 원래 약정서를 작성하면 복사를 하여 사본을 드려야 하는데, 투썸플레이스에서 수임을 하다 보니 늘 약정서를 두 부씩 출력하여 도장과 함께 가지고 다녔다. 수임을 원하는 의뢰인들에게 '지금 사무실이 없어서 내가 찾아가겠다.'라고 말하여 인천이나 부천까지 가서 수임을 한 적도 있었다.


추웠던 22년의 1월경 법률사무소 봄을 오픈한 이후에는,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기분이었다. 개업 변호사가 되면 누구나 '과연 내가 이 사무실의 월차임을 매달 내면서 또 직원 월급을 내면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개업을 하면 당연히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개업 변호사들은 처음에 ' 무조건 성공해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나에게 남는 수입이 없더라도 사무실이 제대로 잘 굴러가기만 바라게 된다.


남양주 법률사무소 봄


첫해의 법률사무소 봄은 남양주 지원도 개원하지 않아 정말로 조용했다(법률사무소 봄은 1월에 문을 열었지만 남양주 지원은 3월이 돼서야 개원하였다). 지금처럼 가게가 많지도 않았고 대부분이 공사를 하고 있는 데다가 법률사무소 봄이 있는 건물 자체에도 공실이 대부분이라 무척 썰렁했다. 하지만 나는 즐거웠다. 유독 흰 눈이 많이 내리고, 내가 만든 사무실에서 서면을 쓰고 간혹 상담 전화가 걸려와 상담 예약을 잡고 늦은 오후까지 사무실에 있는 날들이 즐거웠다. 무엇인가 새롭고, 신기한 일을 처음 했을 때 오는 진지한 고민과 걱정, 또 책임감과 같은 기분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곤 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이었다. 당연히 사건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했다.


운이 좋아서인지 다행히 법률사무소 봄은 적자가 났던 적이 없다. 휴정기가 끝나고 2월이 되자 3월에 재판을 다니면서 서면을 쓸 생각에 아득해진 나는 처음으로 실무수습변호사님을 모셨다. 그 이후로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다. 사건이 쌓이고 자연스럽게 직원들과 변호사의 수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나는 계속 바빴다.

지금은 다시 연말이 되었다. 한때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 마음속에 담겨 있는 그때의 나를 종종 꺼내어 추억한다. 왼편에 있는 것이 과거의 나다. 언제나 열심히 추진하고 노력하고 앞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나는 오른편을 바라본다.


나에게는 오래간만에 휴식이 찾아왔다. 의미 있는 쉼표와 같은 시간들이다. 개업을 한 뒤,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많은 사람들과 수 많은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변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한 동안 바쁨에 빠져 있었다. 오른 편의 나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고 이제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쌓이면서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아침의 일이다. 블로그와 연결되어 있는 톡톡 상담 창에 이름도 성별도 모르는 누군가가 상담 글을 올려놓았다. 눈을 떠서 확인하니, 그 글은 상담 요청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보고 ' 변호사님! 작가가 되세요. '라고 한다.



그 글을 보자마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글을 써 왔다. 어떤 때는 일기를, 또 수필이나 여행 기록, 길지 않은 소설들을 말이다. 글의 단락들은 대부분 정돈이 되어있지 않은 형태로 오로지 감정의 표현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내 글에 대한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글은 당연히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주저하는 편이다. 하지만 글 속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어깨를 기대어 위로를 받는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든다. 이제 나는 감정의 표현을 단순히 배출하는 용도보다는 좀 더 많은 것들을 나누려는 시도에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삶에서 받았던 많은 영감들에 대하여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남겨 보려고 한다. 그런 시도들을 통하여 분명히 나와 비슷하게 방황했던 씨앗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른편에 있는 나이며,

아마도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나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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