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이 대화를 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명상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이상은 결국 헌신을 통한 자유로움.이다. 하지만 자유를 알기 위해서는 어둠을 거쳐가는 밝은 빛처럼 어쩔 수 없이 ㅡ 수 없는 얽매임, 헌신과 욕망들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소유를 통한 구속을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지만 그만큼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할 때 나는 그 욕망만큼 갇힌 상태가 된다. 예를 들어 너를 묶기 위해서는 나도 묶일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소유이다. 하지만 소유란 실상은 허상과 같은 것으로, 유한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소유할 수는 없으며 완전히 닿을 수 없고 또 함께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소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 세상에서의 소유란 상대의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럴수만 있다면 상대의 마음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결국 누군가에게 붙들리고 싶어 하는 본질이 있다. 누구나 자유를 갈구하지만 자유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마음이란 매우 가변적이어서 붙들리고 싶지만 동시에 붙들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는 스스로 누군가에게 붙들려있는 상태를 못 견디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은 마음 그대로 두는 것이 안전하다.
그대가 정말로 자유를 꿈꾸고 있다면 나는 제언(提言)한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유에 이르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의 마음을 그대로 두듯이, 상대의 마음도 그대로 두도록 하라. 그의 마음이 나아가는 향방을 미리 예측하려고 하지 말아라. 마음이란 늘 예측이 되지 않는다. 열 길 물속은 알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은 어렵지 않다. 다만 사람의 마음은 연약하여 상처를 받기 쉽고 또 그만큼 변화하기도 쉽다. 그에 비하면, 마음과 의지는 조금 다른 형태로 흘러간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마음도 잘 변하지 않는다.
다시 자유의 세계로 돌아와보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소유를 하는 순간, 무한성은 유한함의 색깔을 띠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방편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유로운 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무척 본능적인 것이어서 자유롭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타고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내가 애초부터 소유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면 그는 이미 자유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한편 내가 소유하고 싶지 않더라도 나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유와 소유는 이율배반적인 관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놀라운 일이다. 자유를 소유하다니(소유하려고 하다니!)
여기서 놀라운 일이 있다. 자유로운 영혼들은 기꺼이 타인의 소유물이 되어준다. 자유의 존재는 소유의 욕망을 이해가기 어렵지만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좋아한다면 자유는 기꺼이 묶이는 것도 견딜 수 있다.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는 생각보다 억압의 상태를 못견디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를 억압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결코 그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은 자유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혼자 있지만 완전한 형태의 자유는 그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