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그래서 사무실 내 방에도 어젯밤부터 히터를 틀기 시작했다. 타고나기를 원래부터 운동은 못하지만 산책은 늘 좋아하는 편이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된다. 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걷다가 근처의 카페에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거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또 산책길에 나서서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본다. 변호사도 많은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호사는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법의 테두리에서의 해결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마음을 정리하거나 또는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상담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때로 완전히 미궁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의뢰인을 볼 때도 있다.
때때로 의뢰인들은 내가 이런 고통에 빠져있는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또 그 일 때문에 괴롭다는 말을 나에게 한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처음에는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건네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 일단 한 번 시작된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시간이 멈춰버리기도 한다.
변호사의 일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가까이에서 마주 본다.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그중에서는 공감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변호사와 의뢰인으로 만난 이상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 기록
오늘은 무척 지친 하루다. 나도 내가 지쳐있다는 것을 잘 모르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깨달을 때가 있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인 겨울을 미리 예고라도 하듯이 갑자기 급속도로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잠이 들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 스스로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오래도록 마음을 열지 않은 채 타인의 의지가 되어 지내왔고 언젠가부터 내 마음을 돌보지 않은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덫을 놓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속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시가 붙어 있어 나는 피를 흘리며 눈을 뜬다. 깨어난 곳은 축축한 우물 바닥이다. 역시 이 시간은 꿈을 꾸거나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의 실체를 알게 한다. 허상과도 같은 구름이 걷히고 알맹이만 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새벽은 늘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이나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 보이게 한다. 이 시간은 사실은 내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으며 현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가는 길 바로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때는 그런 사실 자체가 괴로움을 안겨주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초(自招) 한 것이다. 누군가가 그 감정의 실체를 묻는다. 외로운 것인가?
고통은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눈을 감고 나를 둘러싼 이 마음의 고통이 어디에서 온 건지 생각해 본다.
상실감이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상실해 온 것이다. 그중에서는 믿었던 것에 대한 상실도 있고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한 상실도 있다. 어느덧 그 사실은 뼈처럼 굳어 처음과 중간 지점을 잘 구분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제는 피아(彼我)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스스로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시간들이 지나간다. 밤은 아직 지나지 않았고 익숙한 새벽의 냄새가 난다. 이 시간만이 지니고 있는 축축한 어둠의 냄새가 있다.
나는 나가기를 포기하고 우물에 몸을 웅크린다. 주위는 조용하지 않다. 무엇인가로 둘러싸인 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선들과 소리가 뒤섞여 우물의 벽을 크게 울리게 한다.
어차피 나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소망한다.
이 세계가 얼른 닫히기를.
그것 외에는 내가 바랄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시간은 나를 비웃듯이 새벽에 멈춰 있다. 어떻게 시간이 멈추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시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좀 더 잦아들길 기다린다.
내가 여기에서 완전히 떠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올 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리자.
이윽고 나는 새벽이 지나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