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생각보다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형사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폭행죄이다. 형법상 폭행이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형법 제260조 제1항)로, 판례는 폭행의 의미에 대하여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육체적 ·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유형력의 행사라고 정의를 하여 반드시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6도 9302 판결).
이처럼 폭행에 대한 범위가 넓다 보니, 실무적으로는 아주 작은 접촉에도 폭행죄가 인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거나 또는 상대방에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았으나 바로 가까운 곳에서 삿대질을 하는 경우에도 폭행죄는 인정이 될 수 있다. 또는 상대방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 같아 당황하여 이를 뿌리치는 정도라도 폭행은 인정이 될 수 있다.
판례는 심지어 폭언을 수차 반복하는 경우에도 폭행을 인정한 바 있고(대법원 1956. 12. 21. 4289형상 297), 피해자에게 근접하여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도 폭행을 인정한 바 있었다(대법원 1990. 2. 13. 89도 1406 판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 이 정도도 폭행이 인정이 된다고? '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폭행은 쉽게 인정이 되어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나는 작년부터 남양주 지원 국선변호인으로 위촉되어 주로 형사 공판 사건을 맡아 국선변호인으로서 일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폭행죄로 벌금을 선고(약식기소) 받았으나 이 부분에 대한 무죄를 다투고 싶어서 정식재판을 청구한 의뢰인을 대리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폭행의 발단은 '자전거' 때문이었다. 피해자와 의뢰인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이었는데, 어느 날 그녀의 현관문 앞에 피해자의 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흥분을 하여 순간적으로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밀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녀 또한 피의자로부터 밀침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피해자가 자신의 핸드폰을 카페라를 이용하여 동영상을 촬영하였고 자신이 밀쳐진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그녀는 자신만 상대를 때린 것이 아니라 맞기도 하였지만 단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시간도 지나 cctv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동의 없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을 폭행죄로 고소하여 자신만 일방적으로 맞은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한 쪽이 폭행죄로 다른 쪽을 고소한 경우에는 주로 나도 폭행을 당했다면서 함께 맞고소를 생각하게 되는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처벌을 받을 뿐이지 내가 폭행한 부분에 대하여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경찰 조사를 통해 ' 동영상도 있어 증거도 충분하여 폭행이 된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 억울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
사건 기록을 모두 살펴본 뒤 최초의 상담에서부터 나는 합의를 제안했다.
'선생님, 억울하신 부분은 알겠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선생님을 고소하였고 지금 어찌 되었든 증거까지 있는데,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어 보여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합의를 하시는 건 어떠세요? '
' 아니 나도 맞았는데 고소까지 당해서 억울해 죽겠는데 내가 돈까지 줘야 한다고요? '
물론 그녀는 나의 말에 바로 수긍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로서 감정을 배제하고 가장 실리적인 이야기들을 해야 했다.
'선생님, 억울한 마음은 저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이 상대방을 폭행죄로 같이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증거가 없어요. 고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고, 증거가 없으면 일단 죄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증거가 있어 고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의 폭행죄 부분은 없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상대방이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폭행죄로 선생님을 고소하였다는 것은 이미 비용을 지출했다는 이야기예요. 당연히 이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을 할 거예요. 추후에 선생님께서 폭행죄로 얼마가 되든 벌금형이 확정이 되면 범죄의 혐의가 인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손해배상청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요. '
그녀는 나의 말에 집중을 했다.
' 지금 합의를 하면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공소기각 판결을 받게 되어 선생님께서는 전과가 생기지 않고 또 상대방이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지 못하는데, 감정 때문에 계속 이대로 가신다면, 결국 폭행죄는 인정이 되어 전과도 생기고 추후에 또 손해배상 소송이 들어올 가능성이 무척 높은데, 그렇게 되면 선생님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다투셔야 해요. 혼자서 대응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럼 여러 가지로 너무 손해가 되지 않으시겠어요? '
나는 말했다. 감정적인 부분은 알겠다. 하지만 현재 닥친 이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조건 실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상대는 이쯤에서는 어차피 보상을 받는 것이 목적이고 보상을 받기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소장만 변호사에게 맡기더라도 무조건 또 비용이 지출되므로 우리가 합의금을 주면서 처벌불원서를 써달라고 하면 무조건 응할 것이다.
이렇게 30분 정도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결국 그녀는 합의를 진행하는 것에 동의를 하였고, 합의금은 어느 정도가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벌금 액수에 따라 손해배상청구를 했을 때 인정되는 금액에서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합의금을 제시한다. 이 정도를 제시해야 상대방이 합의에 응하기 때문이다(상대방도 물론 여러 방면으로 손해배상액이 얼마가 나오며, 이 합의금을 지급받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친다).
나의 예상대로 상대방은 바로 합의를 하는 것에 동의를 하여 그다음 날 합의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처벌불원서를 작성하여 주었다. 이에 나는 합의 및 처벌불원서를 첨부하여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달라는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여 첫 번째 공판 기일에 즉일재판으로(재판을 함과 동시에 선고를 함께 하는 것) 공소기각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소송이 사실 감정싸움으로 시작되지만, 변호사는 이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이익되는 방향에 대해 냉정하게 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지나가고,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간 이후 손해가 된 잔해들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호사는 늘 냉정하게 판단을 하여 의뢰인에게 가장 이익되는 방향으로 말해 줄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왜 공감을 해주지 않느냐며 서운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냉정하게 판단하여 시기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낫다. 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