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주 변호사 Mar 16. 2024

최근에는 아지랑이처럼,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법률사무소 봄은 이제 만으로 2년이 갓 넘었다. 하지만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직원들이, 또 변호사님들이 거쳐 갔다. 이곳으로 오기 전 늘 잠시 머물다가 떠나기를 반복했던 나로서는 봄 사무실을 만들어 어디에도 떠나지 못하고 묶여있는 것이 이상할 만큼 시간이 기묘하게 흘러간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처럼. 


다행히도 봄 사무실은 이미 거쳐간 직원들과 변호사님들이 ' 바쁘긴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좋은 곳이다. '라는 평을 해줘서, 공고를 올리지 않아도 바로바로 사람들이 채워졌다. 이를테면, A 변호사님은 처음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봄 사무실에서 실무수습을 하다가 변호사 시험에 떨어져 부득이하게 퇴사를 하였는데, 그다음 해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다시 봄 사무실에 오셨다. 다행히 이번에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을 하여 줄곧 함께 일을 하고 계신다. 


또 B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함께 일을 하다가 시험에 떨어져 퇴사를 하셨지만, 다시 봄 사무실에 오고 싶어 하신다. 나로서는 당연히, '봄'에 어떤 의미로든 애정을 가지고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고마운 마음만 든다. 특히나 요즘처럼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시달리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 변호사님, 요즘이 저에게는 봄 사무실을 시작하고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 


벌써 만 1년을 함께한 봄 사무실의 변호사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문득 나는 말했다. 


" 아 ㅡ, 안 그래도 변호사님 볼 때마다 최근에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


" 제가 조금 다른가요? " 


많은 사람들이 내가 늘 똑같다고 말하기에 내가 다르게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최근의 나는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외부 활동과 일은 문제없이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 네, 물론 2년 전 처음 보았을 때나 지금이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똑같지만, 요즘 변호사님 눈 속에 생동력이 조금 사라진 느낌이 들어요. 아주 약간.. " 


나를 보고 멋쩍게 웃는 그의 얼굴과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가까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영혼을 본다고 하더니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눈을 감으면 과거로 회귀할 때가 많다. 어느 정도의 과거냐면 사법시험을 합격하기 전의 완전한 과거, 나의 미래나 형태가 온전히 갖춰지지 않았을 때의 과거다. 


나는 주위의 다른 연수생 동기에 비해 공부를 아주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마지막 3시를 볼 때에는 공부를 오래 한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괴로움 때문에 힘들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자괴감, 시험이 떨어진다면(물론 시험에 떨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막막함, 그리고 긴 시간 동안의 외로움, 외로움. 이런 감정들이 나를 짓눌렀고, 늘 그런 감정들을 이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고시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를 묻느냐면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꼽는다. 고시 공부는 혼자서 견고한 성을 쌓는 과정이다. 성을 쌓는 그 과정은 그 사람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준다. 아무리 똑똑하고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벌거벗은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면, 충분히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쌓을 수 없는 성이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요구하기에 많은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최근 아지랑이처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겉으로는 많은 것이 달라 보이지만 사실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한때는 나를 둘러싼 기대와 믿음과 같은 감정들이 무겁다고 느껴졌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쉴 곳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등의 은은한 불빛처럼 많은 것들에 지쳐갈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어쩌면 2년 동안 지나치게 달려와서였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다른 목표나 의지가 필요한 순간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 어쩌면 갈무리가 충분할 정도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들이 지나면, 나는 그때와 같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그래서 그때와 같이 방황의 때. 가 다시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