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다이조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보다는 불행을 택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폭력성을 보이는 남편과 함께 사는 부인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헤어지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와 함께 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법률사무소 봄을 연 뒤, 나는 변호사로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불행을 깨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를 찾아와 문제의 해결을 찾을 정도라면 그래도 그들의 인생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틀을 깨는 것을 주저할 때,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을 고민하는 많은 의뢰인들은 현재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더라도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주저한다. 또한 그 주저함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은 나에게 ' 아이가 걸려서 당장 이혼을 하지는 못하겠어요. '라고 하거나, ' 남편이 최근에 변한다고 각서까지 썼는데 물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달라진다면 한 번쯤은 봐줄 생각이 있어요. '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이혼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의 문제도 상대방 배우자의 탓도 아닌, 자신이 아직 이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이런 선택을 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순서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사실 어떤 결정을 내리고, 비로소 그 이유를 찾는다. 늘 마음의 선택이 우선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물을 때, 그에 합당한 이유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변호사를 찾아와 상담을 할 정도라면 이미 내부의 문제가 심각하게 고장 난 상태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와 '이혼에 대한 고민'이나 '부부관계에 대한 상담'을 청하는 분들은 상당히 여러 차례 방문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결국 이혼을 택하기도 하고, 또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늦은 밤, 법률사무소 봄에서는 나 혼자 앉아 글을 쓰고있다.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 보면 여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객(客)처럼 찾아왔다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또 소리 없이 빠져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라는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상담을 위하여' 쉽게 찾아와 이야기를 하고 또 울기도 한다. 그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단지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종종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삶의 한 부분과 닮아있기도 하고, 또 내가 조언을 해주기도 하나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 물론 나도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주저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껏 혼자 있는다.
그래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역시 사람들은 자신을 봐주는 누군가가 언제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찾을 때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 같다. 자존감을 얻고 좀 더 나다워지는 삶을 산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