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권 성립요건에 관하여
종종 길을 걷다 보면 낡고 허름한 건물 위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글씨를 적어둔 팻말이 보이거나 또는 누군가가 들어갈 수 없도록 건물의 문을 칭칭 감아 닫아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건물과 관련한 대금을 받지 못하여 그 대금을 받을 때까지 그 건물을 소유주에게 반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과 관련하여 채권이 생긴 경우 무조건 행사할 수 있는 것인가? '유치권'이란 어느 경우에 행사할 수 있을까? 또한 이처럼 대금을 받지 못하여 유치권을 행사하는 경우, 건물에 관련된 차임은 소유주에게 반환해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유치의 의미란 목적물의 점유를 계속하면서 인도를 거절하는 것을 뜻한다. 유치권은 민법 제320조에서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민법 제320조(유치권의 내용) ①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는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는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
② 전항의 규정은 그 점유가 불법행위로 인한 경우에 적용하지 아니한다.
좀 더 자세하게 유치권의 성립 요건을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유치권은 '타인의 소유인 물건 또는 유가증권' 에만 행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수급인의 재료와 노력으로 건축되었고 독립한 건물에 해당되는 기성부분은 수급인의 소유라 할 것이므로 수급인은 공사대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이에 대하여 유치권을 가질 수 없다(대법원 1993. 3. 26. 91다 14116 판결).'
2. 목적물을 적법하게 점유해야 하고 점유는 계속되어야 한다.
유치권자의 점유는 불법행위로 인해 취득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만약 처음에는 적법한 점유였으나 어느 단계에서부터 불법한 점유가 되는 경우에도 유치권은 바로 소멸한다. 따라서 ' 건물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된 후에도 계속 건물을 점유하면서 그 건물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하였더라도 그 필요비상환청구권에 관하여는 유치권은 성립하지 않는다(대법원 1967. 1. 24. 66다 2144 판결). '
3. 채권은 유치권의 목적물과 견련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그 물건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 · 물건에 관해 발생한 비용상환청구권 · 수급인의 공사대금 채권 등에 관하여는 견련관계를 인정하고,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청구권 · 권리금반환청구권 · 매도인의 매매대금채권 · 부속물매수청구권에 대하여는 견련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4. 유치권 배제 특약이 없어야 한다.
유치권은 임의규정으로 당사자가 계약을 하면서 처음부터 배제하기로 특약을 할 수 있다. 특약은 '유치권'을 명시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원상 회복 특약'과 같이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대결 2011. 5. 13. 2010마 1544 등). 따라서 유치권이 성립하려면 이러한 배제 특약이 없어야 한다.
유치권에는 유치물의 과실을 수취하여 다른 채권보다 먼저 그 채권의 변제에 충당할 수 있는 과실수취권(민법 제323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적법한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을 때에도 소유주에게 차임을 지급해야 할까?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민법 제324조에 의하면, 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하고, 소유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보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용하거나 대여 또는 담보 제공을 할 수 없으며, 소유자는 유치권자가 위 의무를 위반한 때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인바, 공사대금채권에 기하여 유치권을 행사하는 자가 스스로 유치물인 주택에 거주하여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치물인 주택의 보존에 도움이 되는 행위로서 유치물의 보존에 필요한 사용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유치권자가 유치물의 보존에 필요한 사용을 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차임에 상당한 이득을 소유자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5다 59963 판결 등).
이상과 같이 만약 공사대금 등을 받지 못하여 적법하게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지라도 당연히 이와 관련된 차임은 소유주에게 청구당할 수 있고 이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봄에서는 현재 다양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을 오시는 분들은 피해를 입은 의뢰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여 소송을 고려하고 있으나 상대방이 돈이 없을까 염려하거나,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아 돈을 빌려줬으나 이를 받지 못하는 경우 등 어쩔 수 없이 소송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오늘도 임대인에게 속아 공사를 진행하였다가 공사가 중단된 바람에 손해를 입은 의뢰인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문의를 주셨다. 나는 사안을 검토한 후 공사대금 및 손해배상채권으로 유치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건물에 대한 차임은 계속 발생할 것이므로 우선은 손해의 발생을 최소로 하기 위해 목적물을 반환하고 그 이후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은 후 함께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고민만 깊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