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주 변호사 Jul 09. 2024

어느 날 사해행위 취소소장을 받았다면?

정현주 변호사의 고용변호사 시절이야기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굉장히 어려운 소송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기에 결과가 좋을 때 변호사로서는 큰 보람이 느껴지는 소송이기도 하다. 특히 나에게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나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20년 경 처음으로 송무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의욕에 불탔을 시절,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소송이 바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이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채권총론 중 가장 중요한 파트가 '채권자 취소권'이어서 밤을 새우면서 요건을 고민하고 서면을 썼던 기억이 있다. 이론으로만 공부하던 일들이 실제 삶에서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것, 그리고 내가 그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 그때는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당시 의뢰인은 노후 대비로 8억 정도의 부동산을 매수하였는데 그 부동산에는 이미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보통은 잔금을 치르면서 근저당을 말소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또는 잔금 전에 근저당권을 말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매도인이 잔금을 치르기 전, 급전이 필요하다며 의뢰인에게 잔금을 먼저 달라고 사정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법원이나 경찰서 등 큰 문제가 없이 살아오셨던 의뢰인은 매도인이 하도 사정을 하니 딱한 마음에 잔금을 며칠 일찍 치러주셨던 것이다. 매도인은 그 돈을 근저당을 말소하는데 쓰지 않았고 바로 부동산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이 A에게 경락이 결정되었다.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경락을 받은  A는 그 후 B에게 부동산을 되팔았는데, 의뢰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B는 그 일대의 부동산을 모두 사들여 투자를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이유로 최초의 매도인에게 접근하여 자기에게 매도를 하면 자기가 따로 돈을 더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초의 매도인은 그 후 다른 건으로 구속이 되었고 자신은 이미 신용불량자이니 의뢰인에게 잔금도 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계속했다. 



의뢰인은 졸지에 잔금까지 다 치르고도 부동산을 얻지도 못하고 큰 손해만 입게 되었다. 심지어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의뢰인은 매도인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 한 좋은 마음만 내었을 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할 만큼의 잘못도 없었다. 세상의 일이란 것이 이렇다. 내가 좋은 마음을 가져도 이용만 당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이용하면서도 잘만 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뢰인은 사실상 노후 자금을 모두 끌어썼던 것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 자금조차 많지 않았는데,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아주 작은 개인 법률사무소까지 오게 되었다. 서초동의 유명한 변호사들은 선임료가 너무 비쌌다. 그래서 당시 선임료를 작게, 성공보수금은 꽤 크게 선임계약을 하고(물론 내가 선임계약을 했던 것은 아니고 대표 변호사님이 계약을 하셨으며 나는 월급을 받는 고용 변호사였다), 우리는 A와 B를 상대로 채권자 취소소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법률사무소 봄의 대표 변호사로서 많은 언론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나도 고용 변호사 시절이 있었다.



지금 역시 소송은, 송무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변호사가 제일 잘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표 변호사는 경험치가 있기에 쟁점에 대한 파악은 뛰어나지만 최신 판례 및 검토를 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는 많지 않다. 하지만 고용 변호사가 되면 사건에 대한 책임은 덜한 대신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건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당시 나는 송무 변호사로서는 처음으로 맡는 소송이다 보니 오래된 민법 책을 뒤적거리고 최근 판례는 모두 뒤져보면서 서면을 작성하였다. 



사해행위 취소소송은 채무자가 고의로 자신의 부동산을 타인에게 매도하는 등 처분행위를 했을 때, 채권자가 이를 원상으로 회복하거나 또는 그 가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여기서 '사해행위'란 채무자의 무자력 상태를 초래하는 재산상의 법률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채무자가 자신의 적극재산을 감소시키거나 소극재산을 증가시키는 처분행위를 하여 채무자의 재산상태가 채무초과 상태에 이르거나 또는 이미 발생한 채무초과 상태가 심화되어야 한다. 



사해행위 소송은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 만연하다. 단순히 채권자를 피하여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자신의 친구나 배우자에게 매도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혼을 대비하여 재산분할을 하지 않으려고 그전에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으며, 이혼 소송을 일부러 제기하여 배우자에게 재산 명의를 돌려놓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장 쉽게는 '세금 탈루'를 위해 타인의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또는 명의만 빌려 쓰는 경우도 모두 사해행위 취소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는 위의 사례와 달리 수익자(A)나 전득자(B) 입장에서는, 매도인으로부터 시세보다 좀 더 싼 금액으로 부동산을 매수하였을 뿐인데 갑자기 어이없이 소장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를 찾아오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특히나 채권자가 주식회사이거나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공기업인 경우도 많은데 소장만 봐도 이미 무서운 내용이 잔뜩 적혀 있고 변호사도 유명한 로펌으로 보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렵다는 생각어 먼저 들었다고 한다. 또한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갑자기 부동산을 빼앗기거나 매도대금을 빼앗길 수 있고 상대 변호사 비용까지 다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매도인과 어떠한 커넥션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이나 상대방 변호사가 힘이 세고 유명한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미리 기죽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다만 모든 거래는 (아무리 지인 사이의 거래이고 친한 친구 사이의 거래라고 하더라도) 늘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 좋다. 모든 입금 거래는 계좌이체로 하는 것이 필요하며 가급적이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계약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 경업금지소송, 어떻게 방어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