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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Jul 24. 2024

생생정보마당 생생법률상담소 정현주변호사의 일상

법률사무소 봄 정현주 변호사



오늘 역시, 어제에 이어 누룽지 차를 마셨다. 물론 집에서 끓여먹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사 오는 것이다. 요즘에는 생수보다는 블랙 보리, 옥수수수염차, 누룽지 차와 같은 슴슴한 차가 좋다. 



비가 많이 온다. 어떤 날은 살이 타는 듯이 뜨겁고 강렬한 날이다가 어떤 날은 온 세계가 우는 듯이 비가 쏟아진다.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무실에 있거나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비가 잔뜩 쏟아질 때 차를 타고 카페를 가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만 하던 때는 일상이 단조롭고 크게 할 일이 없었던 날들이 이어지면서 늘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요즘에는 변함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진다. 대표인 나는 다른 변호사님들과는 달리 중요한 재판을 다니고 상담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어제도 오전부터 무척 바쁜 일정이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수임 상담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바로 남양주 지원에서의 조정, 이후 12시에 다시 수임 상담 끝나자마자 늦은 변호사님들과의 법률사무소 봄 회의 후 수원 지방법원으로 달려갔다. 운전을 하는데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수원 광교에 위치한 수원가정법원


수원 지방법원은 법률사무소 봄에서 굉장히 자주 가는 법원 중 하나이지만, 오는 길이 무척 밀릴 때가 많아 곤혹스럽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정은 가급적 내가 참여하고 있는데, 가는 길은 한 시간 남짓이지만 끊임없이 걸려오는 의뢰인들과의 전화들로 정신이 없다. 



오늘도 의뢰인과 만나 함께 익숙한 조정실에 들어간다. 오늘 조정은 잘 안될 것으로 처음부터 예감하였다. 의뢰인은 멀리 용인에서 남양주까지 와서 수임을 해 주신 분으로, 중간중간 조정실 앞에서 상대방을 기다리는 동안 최근에 경기가 무척 좋지 않다는 이야기,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들을 나에게 한다. 나는 의뢰인들과 사건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종종 세상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외지에 둥그런 항아리에 갇힌 타인(他人)이며 향수를 느낄수 없으리만치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효과적으로 나 스스로를 감출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과 지나치게 가까워져 개인적인 상처와 사고를 드러내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변호사란 가장 가까이에서 타인의 상처를 볼 수밖에 없는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적으로 거리가 필요하다. 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 또한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온도, 타인이 울면 함께 울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덤덤하게 옆에 있어줄 정도의 여유.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렇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변호사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비로소 다 말할 수 있기도 하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또 한 사건이 지나가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임을 직감이라도 한 듯.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오늘 판결이 선고된 의뢰인에게 전화를 건다. 판결의 결과와 또 항소 가능성에 대한 길고 긴 대화. 판결이 선고되는 날은 나 또한 긴장이 된다. 늘 결과가 좋길 바라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으니까. 특히나 하기 어려운 전화들은 가급적 뒤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물론 당면한 과제는 풀어야 한다. 







7월 말의 어느 날, 나는 올해만 들어 벌써 5번째 출연인 '생생정보마당' 생생 법률상담소를 출연하기 위해 종로구에 있는 MBN 본사를 찾아갔다. 처음 생생정보마당을 촬영할 당시에는 당연히 나도 바짝 긴장을 했다. 초창기에는 메인 mc분들과도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내 촬영분만 찍고 얼른 방송국에서 나간다. 



충무로 역 바로 앞에 위치한 mbn 본사, 처음에는 택시를 탔었지만 생방송에 늦을 뻔한 기억이 있어 지금은 무조건 대중교통으로 가고 있다.



방송 촬영을 하면서 생방송 촬영 10분 전에 도착하기도 하고, 대본 리딩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생방송 촬영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경험을 겪었다. 그런 시간들이 한차례 지나가자, 이제는 메이크업을 받는 것도 촬영 전에 사연을 보면서 방송을 기다리는 것도 요즘은 그렇게 떨리지 않는다.  



이날은 다행히 크게 늦지 않고 대본 리딩을 마친 후 메이크업을 받고 촬영을 했다. 이번 '생생 법률상담소'는 '동업' 편으로 동업이 깨질 때의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한 영상을 찍었는데 내용이 너무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무사히 스튜디오 촬영이 잘 되어서, 주위에서 목소리도 괜찮도 영상도 잘 나왔다는 칭찬을 들어 다행이었다. 



2024년 7월 23일 mbn 생생정보마당 ' 생생 법률상담소' 동업 편 생방송 촬영 영상


첫 번째 코너였던 '생생 법률상담소' 생방송이 끝난 후 명동역까지 천천히 걸어 맥도날드를 갔다. 늦게 일어난 터라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바람은 크게 불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온 명동거리는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명동에는 예전보다는 많은 가게들이 다시 돌아온 듯 보였지만 여전히 관광객들은 그전보다 많지는 않았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사무실에서 나를 찾는 전화는 계속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생방송 촬영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내내 긴장을 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했다. 어떤 날은 피로감에 아무것도 할 기력이 나지 않는다.  사실은 집에 일찍 들어가 좀 쉬고 싶었는데 이날도 12시 점심시간 즈음 수임 상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얼른 맥모닝을 먹고 명동역에서 남양주로 가는 택시에 탄다. 



그날 저녁, 사무실 근처에서 오래간만에 정행 빌딩 변호사님들과의 저녁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 그야말로 몇 개월 만에 참여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규모 모임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삼겹살에 소맥도 마셔보고 2차로 가서는 와인도 몇 잔 마셨다. 무척 피곤했던 날이었지만 밤이 되니 종일 피곤하던 기운이 좀 가시기도 했다. 모임을 끝내고 이제는 익숙한 길을 따라 흥얼흥얼 집으로 간다.  


다산동 집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공원 길, 사진의 각도가 다른 것을 보니 조금 취했었나 보다.



집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와 그야말로 꼼짝할 수도 없다. 오늘은 오전에 생방송 촬영이 있었음에도 틈틈이 어림잡아 30통의 업무 전화를 한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걸지 못한 전화들이 쌓여 있다. 



잠이 들기 전, 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일이 많으면 반드시 놓치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요즘에는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곱씹어 본다. 그렇지 않더라도 하루를 되돌아보는 습관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봄 사무실에 매여 지내온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에만 매여 살 수 있을까? 조금 일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 쌓여오는 업무량의 증가와 메말라가는 내 마음을 어떤 방법으로 달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생각의 끝은 꼬리를 물고 말려간다. 빙글빙글 돌아가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한다.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 외에 더 큰일들이 밀려온다. 이런 일들은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한 가지에만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넓게 보지 못하고 좁게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적절한 때에, 필요한 정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마시는 와인 몇 잔 외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지금도 역시 '사람' 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 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간들을 위해 지금까지 헤매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소중하다. 삶의 형태만큼이나. 







그렇더라도 지금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다. 꿈꾸듯이 시간을 버리고 떠났던 오래전의 여행길, 얽매이지 않았던 그 시절의 꿈들은 지금은 모두,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점멸하던 불들은 갑자기 한꺼번에 꺼졌고 암흑과 정적만이 남았다. 그 무엇으로 그것들을 되돌릴 수 없다는 듯이. 



나의 몸은 암흑 속에서 미라처럼 바짝 말라간다. 문득 목이 타다. 하지만 정적만이 남은 세계 속에서 생각은 점점 더 명료해진다.  


오랜 풀숲에서, 길을 찾아 무릎이 아프도록 걸어온 느낌이 든다. 지친 나는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해야 할 일에만 힘을 쏟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완전히 잊히고,  


완전히 다른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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