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서
프람바난 사원이 존재하는 인도네시아 욕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기차로 약 6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나는 원래 불교 사원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산맥을 거쳐 티벳 라싸를 갔을 때, 포탈라 궁에 들어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고 어떤 뜻인지도 알 수 없는 기괴한 그림들과 불상들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 많은 승려들과 티벳인들의 신념과도 같은 염원이었다.
그렇다 그곳에서는, 바로 그 염원이 있었다.
1. 스무살, 인도 바라나시에서
열정을 두고 떠난 나의 20대 여행길은 무척 고단했다. 마음은 황폐했고 주머니는 늘 가벼웠으며, 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좁디좁은 동굴과 같은 곳에서 뛰쳐나와 다른 동굴을 향해 도망을 가고 있던 중이었다. 나에게 한국은 늘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곳으로, 이유도 모르는 채 이물감을 느끼면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드디어 자유를 얻은 스무 살이 되자 나는 어디든 이곳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고(정확하게 말하자면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는 돈이 생기면 무조건 한국을 떠났다. 어디를 가든 20대의 젊은 여자애가 다니는 길은 늘 일정 정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을 믿고 어떤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할지 아무런 감이 없었기에, 그냥 아무도 믿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부유하는 기분은 썩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이 지나 변호사가 된 이후 어느 날, 엄마가 ' 너는 좋겠다. 안 가본 곳 없이 여기저기 정말 많이 다녀봤잖아. '라고 정말 부러움이 실린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파왔다. ' 엄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지. 특히나 돈이 없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이, 목적이 없이 나그네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지. '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올랐지만 나는 그 말을 삼키고 말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나의 지난 삶을 어떻게 타인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굳이 이해를 시킬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가버린 뒤였으므로. 그것이 가족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늘 당연하다고 나는 여기고 있었다.
나의 삶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첫 번째로 결정되었다. 인도는 나의 첫 번째 여행 장소였다. 대학교 1학년의 겨울,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용감하게 배낭을 메고 30일간의 인도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때 우리는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기차를 타고 아그라를 거쳐 바라나시로 넘어갔다. 바라나시는 잊기 어려운 도시다. 우리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 지저분한 강물을 보았다. 척 보아도 더러워 보이는 갠지스 강은 많은 인도인들의 희망이었다. 까맣고 비쩍 바른 인도인들이 사리를 두르고 강에 빨래를 하는 모습, 둥둥 떠다니는 시체, 그리고 그 물에 들어가 몸에 물을 끼얹는 힌두인들. 끝없이 연기가 피어 오르던 화장터 등,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어지러운 풍경들은 순식간에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꽤 많은 동양인들과 거대한 배낭을 멘 외국인 여행자들도 낯선 이방인들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낡은 조각배를 타고, 꾸깃한 루피를 뱃사공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한국과는 전혀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매캐한 화장터의 연기로 안 그래도 어지러운 풍광들이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런데 지저분한 갠지스 강 위에서 배를 타고 눈앞에 보이던 장면들이 그림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조금씩 숨이 쉬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서서히 내 마음속의 병이 나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드디어 내가 그토록 답답해하던 것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곳(한국)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왔다. 왜냐하면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 지어진 것과 같이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고 졸업을 하여 취직을 한 다음 결혼을 하는 그런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한국은 이곳과 마찬가지로 내가 잠시 머무는 곳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곳을 당연히 고향이라고 여기며 그곳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있다. 그곳에는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삶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머무는 곳은 어쩌면 조금 긴 여행지가 아닐까,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에서 구름처럼 멀어지는 한국의 나의 집을 떠올렸다. 나는 당연히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았다. 떠나오자, 나는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고향을 잃은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