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체는 그 곳, 바다 위에 있다.

by 정현주 변호사


그 날밤, 나는 책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책을 하나 골라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읽기 시작했다. 꿈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주인공이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표현이 너무나도 세밀하여 나도 그와 함께 방파제와 바다에 놓여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해가 완전히 내려앉은 후 모든 것이 거칠게 쓸고 지나간 폐허와 같은 자리,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실낱같은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책을 보고 있으려니 딸아이가 자신도 책을 읽겠다며 한국사 만화를 들고 온다.


내가 말없이 책을 읽는 동안, 딸도 머리를 묶은 채 바로 옆 침대에 앉아 함께 책을 보았다. 나는 딸을 보며, 부쩍 자라는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주근깨가 생긴 발간 볼이 귀여워졌다. 딸은 자라면서 점차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다. 마치 행성 근처를 떠도는 위성처럼. 문득 느낀다. 나의 실체는 이곳에 있다. 딸 바로 옆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몰입이 되는 글을 찾기 어렵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책을 도전하기보다 좋아하는 책들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는 편에 가까운데, 최근 좋아하는 작가를 찾았다. 예전, 유리알 유희를 읽을 때(나는 이미 그 책을 십여 년 전에 사 두고 앞부분만 읽다가 이리저리 던져두고는, 아주 심심해질 때마다 다시 도전을 하곤 했었다.), 어떤 감동이 밀려들어서 몇 장씩 아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오래간만에 다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이다.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가, 그가 만들어 낸 신기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것과 같다. 그 건축물은 본질적인 마음에 가까우므로, 아무래도 어두운 면을 눈에 보이는 곳으로 꺼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글은 슬픔이고 어떤 글은 회색이며 어떤 글은 한없는 어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그 사람의 이국적인 말과 같은 것이다.


나는 선별된 여러 기억들을 모두 실에 엮기로 한다. 나의 글을 줄에 엮인 구슬과 같은 형태로 만드는 데, 물론 이 모든 면에는 나의 마음과 생각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나일까? 나는 본질적인 감정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언젠가 너에게 닿았을지도 모를 거대한 돛단배의 닻을 올리는 것처럼. 이곳은 거대한 바다다.




' 함께 걸어가는 거야. 실체로서, 완전한 존재로서. '


지난 상실의 아픔들은? 너는 묻는다.


그것들은 그대로 ㅡ 폐허가 된 바다 위에 남겨져 있지.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하지 않아? 너는, 내가 아는 너라면 응당 그렇게 하겠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나는 힘주어 말했다. 모든 것을 극복할 필요는 없어. 어려운 것들은 어딘가에 묻고, 또는 그대로 두고 그냥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피가 흐르는 형태는 그 자체로 놔두더라도 언젠가 피가 굳게 될 거야. 또는 굳지 않더라도 사실은 크게 상관은 없어. 살아가는 길목에는 언제나 하얀 눈이 내리지. 어떠한 것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 없어. 자연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우주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하지. 이 찰나의 삶 속에 ㅡ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오로지 진짜의 삶을, 실체로서의 삶을 사는 것뿐이야.


너는 진짜의 삶을 살고 있어?


너는 물었다. 마치 아득한 한 지점을 바라보는 듯이.


응, 지금은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와 관련하여 조금 고민했다. 요즘에는 제대로 되고 명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떠한 글을 쓰더라도 나는 그 실에 엮을 구슬을 세심하게 고르는 작업을 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만다. 호흡을 길게 하자 ㅡ, 나는 너무 급해.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어? 진지하게.


나는 너에게 물었다.


글쎄, 나는 늘 혼자 있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혼자서 ㅡ 혼자 있으면서 ㅡ 무엇인가를 찾은 적이 있어? 이를테면 나 자신의 마음을, 또는 나의 모습을 말이야.

내가 아는 친구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이 혼자로서 완전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는 그야말로 세심하게 자신의 마음을 마주 보았지. 그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번뇌들이 그를 스쳐갔으며, 그의 마음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지. 마치 숲속의 이슬처럼, 그것은 말없이 스며드는 슬픔과도 같은 감정이었어. 그는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 타인이, 자신을 완전히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인간은 결코 혼자로서 완전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너의 말은, 진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거야?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자주 불행을 느끼고 있어.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지점에서 헤매거나 또는 오해를 하기도 하기 때문이야. 나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며, 무엇을 갖추어야 행복한지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란 다른 종착지일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울과도 같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바라봐 줄 수 있다면, 나는 한결 나 스스로에 대해 알기 쉬워질 거야.


나를 알게 되면, 그제야 나를 방어할 수 있지.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점차 보이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내가 나아가는 그 넓은 바다 위에 ㅡ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존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나의 실체는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말이야.


24년의 에노시마, 쇼난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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