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빛이 소멸하듯, 한 줌의 시간도 함께 소멸해 버렸다. 나에게는 그 일상과도 같은 소멸이 왜 이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다.
1. 안부
잘 지내고 있었어?
잘은 모르겠어.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늘 그렇듯이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아.
그렇다면, 너의 실체는?
실체는 고독한 섬에 머물고 있지. 나올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아.
너에게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인가가 필요한가? 아니다. 나는 깨달을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 아마도.
2. 너의 역할
그는 눈을 감고 있지, 그렇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해. 사실상 눈을 감고 있는 거야. 매몰된 상태에 있지.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똑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회피를 하는 것이 본능적이지. 꽤 많은 사람들이 회피를 하고 또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의지를 해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해.
가까운 이들의 이런 모습은 처음에는 실망을 주지만 또 많은 이들이 착각을 하는 것이 있지. 그들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또는 변하기를 바라고 있지. 하지만 매몰된 상태에서는 변할 수 없어. 자신의 과오(過悟)를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고 회피까지 하는데 어떻게 그 상황에서 나아갈 수 있겠어? 더 나아가 ' 나는 이런 사람이니 네가 날 이해해 줘 '라는 폭력적인 이기심까지 있어. 또는 ' 나는 잘 모르겠고, 이 상황은 나에게 괴로워. 네가 날 이해해 줘 ' 일 수도 있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한계가 있어. 너는 거울처럼 타인을 이해하고 있지. 타인의 입장과 마음을 상대방의 눈으로 이해하는 자는 이미 완전체에 가까워. 대부분은 그저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할뿐인거야.
' 그렇다면 나는 계속, 타인을 이해해야만 하는 거야? '
모두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있어. 너는 계속해서 말한다.
완전체에 가까운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품어줘야 하는 거지. 길이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우리의 세계는 테트리스의 퍼즐처럼 불균형적이지만, 바로 그 불균형적인 모습으로 균형을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거야.
'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 싫은데. 만약 그렇게 하더라도 상대가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내가 굳이 왜 그렇게 해야 할까? '
모두에게는, 각자의 소명이, 역할이 있으니까.
너는 나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3. 사랑은 상대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언젠가 할머니는 '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도 사랑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지. 나는 그 말에 지금 역시 동의하지 않아.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나와 맞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상대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따라서 나에게 맞는 사람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일 거라고. 왜냐면 누구를 만나도 단점이라는 것은 존재하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사랑이란 아마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상대의 부족함을 미워하고 쳐내는 것이 아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라고.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부족함을 이해하게 되는 거야. 그것이 설령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 그렇지, 그래서 즐겁든 슬프든 함께 하는 시간들이 필요해. '
상대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나 스스로를 먼저 알아야 할 거야. 내가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겠어.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는데 늘 초조한 상태에 있을 뿐.
정리하자면 이런 거야. 나 스스로를 알고 나의 마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부족함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눈이 맑아야 좋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일방적이지 않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4. 너는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라.
실체는 고독한 섬에 있어?
고독한 섬에 들어갔어. 지금은 깊은 동면 상태에 있지. 이처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잠시 깨어날 뿐, 주로는 잠을 자고 있어.
그래, 무척이나 피곤했을 테니까.
지난 여정은 나에게 꽤 많은 괴로움을 줬던 것이 사실이니까. 나는 동조하듯이 덧붙였다. 꽤 오래 잠을 자도 나쁘지는 않겠지.
하지만 너는, 너의 본질성을 알고 있지? 어디에서 빛나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해서 말이야.
그래, 이제는 알고 있어.
다만 올곧은 선택을 해야만 해. 조금 더 숨을 죽이고, 깨끗한 마음으로.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