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장소에서의 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인지, 합의 과정에서 변호사와 함께 가면 마치 전문 싸움꾼을 데리고 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합의의 과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나는 법률사무소 봄을 만들기 전부터 변호사로서 합의의 진행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합의는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설득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사자들은 필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논점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가 많고, 논점을 회피하거나 감정적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따라서 변호사를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 채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만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의 내용에 대한 검토도 무척 중요한데, 이후 그 과정의 철저한 법적 검토를 통해 의뢰인에게 불이익한 면은 없는지 검증하고 구두로만 오고 갔던 내용에 대하여 서면으로 완전하게 합의안을 작성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변호사로서 합의의 과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일까?
상대방이 변호사가 있어 이미 충분히 합의의 내용이 오고 간 상태에서, 합의금을 지급함과 동시에 합의서에 서명을 하는 마지막 과정을 반드시 만나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건이 있었다. 우리의 의뢰인은 사실 상대방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워 양쪽 변호사들이 모두 대면하여 만남을 가지기로 하고 우리는 선릉역의 모 법무법인 상담실에서 만났다.
이미 합의가 다 된 사안이었지만 굉장히 오랫동안 감정적인 다툼이 오고 갔던 사안이라 변호사들은 최대한 감정적인 분위기로 흐르지 않게끔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합의금과 합의서의 서명까지 오고 간 이후 갑자기 상대방은 태도를 돌변하여 의뢰인에게 악의 섞인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인가 억울했던 것이다. 그리고 감정은 쏟아내는 순간, 더 깊어지고 커져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시간은 꽤 지속되었고 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밖에서 기다리던 상대방의 가족까지 상담실로 들어와 의뢰인에게 감정적인 말을 쏟아내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심지어 그는 의뢰인의 옆에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변호사님은 먼저 가세요. '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고 끼어들었고, 의뢰인을 붙들고 뒷문으로 함께 내려갔다. 이미 패닉이 된 의뢰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 일단, 근처에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잔하신 다음, 저분들이 가시는 것이 확인이 되고 나서 귀가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역할은 끝이 났다.
어떤 경우에는, 합의를 하러 간 자리에서 변호사가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겠다거나, 또는 왜 변호사까지 데려와서 문제를 크게 만드냐는 식으로 감정적인 말들을 하는 상대방을 만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최대한 ' 저희는 분쟁을 만들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소송만 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합의의 과정을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나왔습니다. '라는 말을 하여 상대방의 기분을 가라앉히고 설득을 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물론 쉽지 않지만 최대한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무척 어렵고, 나의 의견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보고 양보를 잘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의뢰인의 제안은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흥분시켜 계속 본인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를 본인의 유리한 대로 끌고 가려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변호사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쟁점을 기억하고 그 부분에 대하여 흔들림 없이 최대한 명확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협의의 과정이 잘되지 않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다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잘되지 않는 상대와의 협상 과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협의를 위해 외부 출장을 다녀왔다.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진이 모두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오늘의 이 과정이 전체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길에는 최 변호사님과 법률사무소 봄의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 보는 대화를 나누며, 현재의 봄 사무실의 방향에 대한 변호사님들의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은 정말로 힘이 다 빠져버린 날이었다. 사무실에 복귀하여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보니 이미 해는 넘어가고 회식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