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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디어 나를 찾았다.

정현주 변호사

by 정현주 변호사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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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었다. 그때는 여행을 다니면서 보게 되는 도시마다의 예쁜 노트들을 모아서 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내 가방에는 우산이 있었던 적은 없어도 노트와 펜이 없는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움은 사진으로 담기지 않았다.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그리듯 담고 감정으로 승화시켜 글로 남겼다. 모든 아름다움과 낯섬과 고독과 또 깊은 곳에 스며드는 나의 광활하고 낯선 마음들은 모두 혼재되어 그곳에 글이 되어 담겼다. 하지만 나는 그 노트들을 보관하지 않았다. 어디에도 나의 글들은 남아 있지 않다. 나에게 그것들은 감정을 적어 놓는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꼭 남기지 않아도 마음들이 남아 있고 그것은 나에게 스며들어 나의 일부가 되었다.


따뜻한 봄이 온다. 나는 더 이상 노트를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때와 다름없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기억들의 영상들로 되돌아간다. 나는 한때 꽤 풍요롭고 안온했던 곳에 앉아 거리에 스쳐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당장 내가 없으면 안 될 반드시 해야 될 일이 없었고 시간은 무척 느리게 흘러갔다. 말하자면 해는 질 줄 몰랐고 나는 닻을 올리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돛단배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 때때로 그렇게 긴 시간들은 나의 마음에 쉼표가 되어 남았다. 나는 한곳에 정박한 채 잠시 휴가를 떠나온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느끼곤 했었다.


불완전하고 결핍적인 마음으로 타인에게 기대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나는 많은 것들이 흘러가고 남은 검은 강의 바다 위에서, 몇몇의 필연적인 것들과 결별을 하고 또는 작별을 고한 다음 드디어 부서져 있는 나의 마음을 그때와 같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세심하게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빛을 채우고 떠돌지 않으며 필요한 것들을 받아들인다.


나는 드디어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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