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로서 존재해야 '전념'이 가능해진다.

사랑을 얻으려면 완전한 전념을 해야 해.

by 정현주 변호사


불현듯 겨울이 끝나자, 겨우내 사라졌던 까마귀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새벽녘부터 나무들 속에 숨어 큰 소리로 목청껏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나뭇잎 사이로 번져갔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나가서 좀 걸어볼까, 아니면 오지 않을 잠을 기다리면서 좀 더 누워 있어볼까.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이 절대 고독의 시간은 언제나 나를 간극으로 밀어 넣는다. 생각해 보니 꽤 오랫동안 시간을 멈추고 글을 쓰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 잠시 그곳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나에게 펼쳐진 이 드넓고 광활하기만 한 이 세계에서, 우물로 돌아가는 길은 잃은지 오래다.


' 그러니까 사랑을 얻으려면 완전한 전념을 해야 한다는 거야. '


그때 너와 나누었던 대화의 한 단락이 떠올랐다. 우리는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주 들어가지 않는 길거리 노포에서 우리는 방금 나온 따뜻한 계란말이를 먹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 위에는 오뚜기 케첩과 허니 머스터드가 뒤섞여 뿌려져 있었다. 너는 노란 계란말이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케첩이 없으면 좀 더 맛있을 텐데. '


고민 끝에 나는 새벽의 길을 좀 걸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자전거를 탈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오니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밤새 숨어있던 새들은 이제 조금씩 나무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고, 하늘은 어스름한 남빛으로 변해있었다. 너무 어둡지 않은 덕분에 하늘 위에는 송충이 같은 구름떼들이 보였다. 나는 바람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었다. 아무도 없는 길은 기묘한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수연이 블루와 함께 걸었던 그 검은 강의 바다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천천히 검은 강의 바다를 가로질러 걷는다. 아득히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하지만 그 강변은, 이미 수연이 혼자서 수천 번은 족히 넘는 시간을 가지며 혼자 걸었던 곳이다.


이를테면 그렇다. 나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어지면 완전한 몰입을 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공부를 할 때도 피아노를 칠 때도 일을 할 때도 안정을 찾고 싶을 때도, 나에게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들에 대한 진지한 전념(commitment)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일들은 나에게만 국한된 일이었고, 사람에 대한 몰입을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 이유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되었다.


' 그러니까 사랑이란 내가 상대에게 진지하게 전념할 수 있다는 것, 또 그렇게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고 생각해. '


나는 너에게 말했다. 하지만 몰입이란 나의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야.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한다며 상대를 두고 자신의 감정에 빠져버리곤 하지. 나를 알아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해. 오히려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상대가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고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바라고, 또는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던진 뒤에 상대를 괴롭게 만들기도 하지. 사실은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말이야. 그렇게 자신을 잃는다는 것이 과연 사랑일까?


어떤 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몰입을 하는 것이 사랑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 되겠지만 꼭 그것이 상대와의 인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몰입하고 전념하는 것은 시험에서의 절대적인 공부량과도 같이 사랑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전념하지도 않고서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만 강요하다가 인연을 떠나보내게 되는 것이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꼭 맞는 인연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 하지만 너의 말을 듣다 보면, 사랑이란 꽤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자기 자신을 알고 상대에게 담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꽤 어려운 일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니까 말이야. '


너는 나의 말을 들으며 되물었다.


' 그래 맞아. 어려운 일이야. '


나는 너의 말에 동조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얻지 못하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사랑을 원하지 않아. 어쩌면 줄곧 그랬는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몰입'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최근까지 나는 온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어. 글을 쓰고 또 어떤 글을 쓸지를 구상하고 앞으로 어떤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날지에 관해 계획을 세우는 일들은 퍽 재미있었어. 그리고 몇몇의 사람들과 조금 친해지게 되었지. 지금까지 어울리지 못했던 세계의 사람들이야. 그래서 운이 좋게도 그들의 세계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좀 있었어.


그건 어떤 느낌이었어? 그들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조금 특별했지. 지금까지의 나로서는 볼 수 없을 사람들의 세계였으니까 말이야. 다만 나는 그림자로 떠돌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동반자'를 찾고 있었어. 인생에서 함께할 수 있는 완전한 나의 편을, 그리고 완전한 자신의 사람을.


'동반자'를 찾고 있었다고?


맞아. 그들은 크든 작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 있었어. 어떤 이들은 무척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도 했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지. 사람은 누구나 혼자로서 완전할 수 없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을, 관계를 원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또 생각했지. 하지만 누군가에게 '전념'하기란 어떤 이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전념' 과 '몰입' 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


글쎄 ㅡ, 나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내 생각에 전념이 어렵다면 아마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어떤 대상, 또는 어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진지한 전념을 하기에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너무 관심이 없기 때문인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전념과 몰입을 할 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해. 그러니까 완전한 나의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해보는 거지.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오롯이 나로서 존재해야 해.


너의 말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해야 '전념'이 가능하다는 거야?


맞아. 나로서 완전히 존재해야 다른 무엇인가에 대한 몰입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 사랑 또한 비슷한 맥락이지. 나를 사랑해야 타인을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너에게 어떠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알아야 나의 동반자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결핍에만 집착해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곤 하지.


응 그래.


우리는 나와서 걷기로 했다. 진짜의 삶과 관련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니까. 한참을 걷다가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익숙한 곳을 향해 떠났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또 내가 작별하고 있는 이 모든 세계에서의 아름다움을 남기며. 나는 그렇게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며 다시금 너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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