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오히려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해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유한 슬픔이 있다고 생각해. 그 어둠의 감정은 흔히 고통과 고독으로 나오기도 하지. 집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방에 불을 켰을 때, 당연하게도 침대에 누워 혼자서 잠이 들 때, 아무런 약속도 없는 주말을 맞이할 때 나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마음이 시큰거리기도 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찾아오는 이 고독한 시간들은 나의 일상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지.
심지어 생각해 봐, 이런 시간들이 지겹다는 생각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어. 하지만 늘 좋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잖아. 이런 불필요한 만남은 어쩌면 단지 시간을 지우는 피곤한 일들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또 어떠한 감정들은 달리는 열차에 앉아 있는 것처럼 지나가게 되어있어. 나이가 들수록 열정은 사라지고 한곳에 집중하기 어려우며 특별한 것들을 발견하기 어렵지.
자신의 본질성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그곳을 향해 집중하는 것. 나는 한때 그들을 구도자(求道者)라고 불렀어.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이 정말로 살고 싶은 진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그 즈음에 나는 말했어. 나는 나의 본질성을 자각하고 있다고. 그 특별한 일은 작년 말부터 실제로 시작되었던 일이야.
그전까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 나는 왜 다른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할까? 마치 바깥에서 서성이며 따뜻한 안채로 들어가지 못하는 황야의 이리 와도 같다. 나는 이제 무척이나 지쳤다. 떠돌이 같은 외로움도 혼곤한 고독도 나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의 종말을 구하고 싶기도 하다. '
그 정도로 나는 지쳐 있었지. 12월의 말, 나는 친구들과 우연한 기회에 에노시마를 가게 되었어. 지금까지 숱한 여행을 했지만 늘 생각하는 것은 어떤 장소는 특별한 영감을 줘. 계기가 되기도 하지. 나는 그곳 에노시마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그림자 분리 작업이 드디어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드디어 실체의 나는 조금 깨어났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 거야.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내가 무척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어. '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모를 거야. ' 겉으로의 나(그러니까 실제로는 그림자인 셈이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꾸려 하지 않는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두고, 감정적이지 않으며 바라봐 주고 받아주는 느낌까지 있대. 집착을 하거나 구속하지 않아. 어쩌면 이런 태도로 하여금 내가 무척 무던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야. 어쩌면 그런 성격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제로의 나는 감정에 무척 예민하대.
나는 그 말의 뜻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무척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확실하고 명확한 것을 찾아다녔어. 나는 한참을 헤맸지. 꽤 오래 방황했어. 물론 이런 사실을 모두에게 말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나조차도, 내가 왜 떠돌이처럼 헤매고 있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어.
이제는 그 이유를 알아. 어떠한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잠재되어 있는 고유한 슬픔을 적당히 지나치지 못하고 너무 깊게 느껴버리곤 해. 어쩌면 본질적인 곳까지 파고드는 거야. 그 감정의 밀도는 무척이나 농밀해서 그 예민함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강하지. 그래서 그들은 생각보다 무척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그런 이유로 세상을 등져버리기도 해.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쌓는 벽이라는 것이 있어. 견고한 성과 같은.
나는 이제, 오히려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해. 나에게 벽이라는 것이 더이상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함께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또 해가 지는 노을을 보면서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려고 해. 이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서.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진짜의 삶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