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티벳으로
나는 호주에서 대략 일 년 정도를 살았다. 그중 절반 정도는 케언즈에 있으면서 카페 알바를 했고 돈을 모아 수개월을 여행을 했는데, 케언즈에서 바로 서부로 버스를 타고 건너가(이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브룸, 카나본, 퍼스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호주는 매우 넓고 광활한 곳이다. 중간 지대는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이고 모든 길은 기차로 이어져있다. 하지만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48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할 만큼 이동이 어렵고 힘들었다.
케언즈에서 떠나기로 했을 때, 지*와 나는 이름이 없는 작은 소도시에서 하루를 꼬박 새우며 서부로 갈 버스를 기다렸다. 이미 시드니에서의 기억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멜버른, 브리즈번 등 유명한 관광지가 몰려 있는 동부의 도시로 내려갈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턱대고 케언즈로 떠났듯이 이번에도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서부로 한 번 가보자고 용기 있게 나는 말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동안, 우리는 다시 피로감에 휩싸여 끝없이 잠을 잤다. 배가 고프면 휴게소에서 산 바게트와 오렌지를 먹었다. 버스는 끝도 없이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고, 4시간에 한 번씩 쉬어 갔다. 계속 같은 풍경이 이어졌고 한 방향으로 달릴수록 시차가 생겼기 때문에 나는 정확한 시간을 인지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차를 타고 잠이 드는 것은 멀미의 일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케언즈에서 서부로 떠나는 나는, 적어도 시드니에서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나로 변화해있었다. 그러니 그 사막에서의 시간들은 지금 역시도 변화한 내 마음 어딘가에 남겨져 있는 셈이다.
나는 때때로 어떤 사건과 시간을 거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내심 그 변화를 기다리기도 한다. 언젠가 보았던 뭉크의 푸른 밤이라는 그림에서, 한 남자는 중절모를 쓰고 달빛이 비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모습이 무척이나 고독해 보인다. 혼자 있는 그는 꽤 여러 날을 밤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나에게는 그런 푸른 밤들이 마음속에 남겨져 있다. 주로 한국에서의 이물감과 고독함, 그리고 타인과 완전히 섞여들어가 어렵다는 이방인적인 마음에서. 하지만 나는 그곳, 호주에서 최초로 나의 실재함을 찾고 있었다.
호주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였다.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는 호주를 여행하며 꽤 오랫동안 혼자 있기도 했다. 특히 서부 호주의 깎아지른듯한 아름다운 모습, 고즈넉한 타즈매니아, 에어즈락으로 가는 동안 보았던 사막의 밤들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그 다음 해였다. 나는 이미 여행자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본 오사카를 거쳐 친구들과 다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본격적인 내 방랑의 시작이었다.
3. 네팔 카트만두에서 티벳 라싸까지
내가 두 번째로 인도를 간 이유는 첫 번째 인도에서 가지 못했던 도시를 가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새로운 곳을 향해가는 것보다는 익숙한 곳이 좀 더 친숙하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여행지였던 인도를 다시 가보기로 하고 지*를 포함한 고등학교 친구들 3명에게 연락을 했다.
나에게 첫 번째 여행지였던 델리는 무엇인가 새롭고 신비로웠지만, 두 번째 델리는 큰 감흥이 없었다. 우리는 쉼라를 거쳐 다즐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다람살라에 잠시 머물렀다. 다즐링과 다람살라는 늘 안개가 뿌옇게 주위를 감싸고 있다. 매우 조용하고 한적하다. 그곳들은, 아직까지도 언젠가 무조건 떠나야 한다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특별한 장소였다. 내 마음속을 소리 없이 밝혀주는 비밀의 공간처럼.
몹시도 추웠던 2월, 네팔에서 우리 4명은 갈라졌고 지*와 나는 히말라야산맥을 거슬러 티벳으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두 명의 친구들이 그 춥고도 어려운(어쩌면 죽을 수도 있을) 거친 일정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와 지*는 이미 지난 일 년간 호주에서 헤쳐온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낼 나도 모를 깡이 생겨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카트만두에서 봉고차를 타고 하루에 8시간씩 히말라야를 넘던 그 기억은 아직도 멍멍할 정도로 괴로웠다. 비현실적인 만년설과 에메랄드빛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호수와 인간의 키보다 훨씬 높이 쌓여 있던 하얀 눈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발 6,000미터 이상의 고원은 도저히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심각한 고산병을 느끼게 했고, 간신히 바람만 막아주는 이름 모를 여관에서 침낭 안에 들어가 덜덜 떨면서 잠이 들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괴롭기만 했다.
하지만 일주일의 고생 끝에 들어간 티벳 라싸는 충분히 가치로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곳이었다. 지금 역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여행이란, 그렇게 무지함으로 전혀 모르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