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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1. 인간 동물이 되어 쇠똥처럼 굴러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by 찬드

마침내 야생과 비야생의 경계가 사라지고 드디어 인간 동물이 되었다.

나는 세 바퀴 달린 뚝뚝을 타고 쇠똥구리가 힘껏 굴린 똥처럼 데굴데굴 흘러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움푹 패인 길을 달릴 때면 뚝뚝의 엔진은 앙칼지게 울었고 나도 벅차올랐다. 모든 길은 방향이지만 경계이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고작 지도에 얇은 선 하나 그리고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함부로 아는 것처럼 말했던가. 스리랑카의 길도 경계였지만 그곳에 서면 안쪽과 바깥쪽이 두루 보이는 둑방 같았다. 한 번쯤 자신의 경계에 서서 내 장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싶지 않은가? 나는 이 여행이 내게 남긴 메시지를 알아차리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이봐, 너는 마침내 자연이 되었어.”


스리랑카에서 입던 사롱(전통 남자 옷-치마처럼 입는다)을 정리하는 데 이런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았다. 스리랑카 여행이 유행하기 전에 얼른 책을 써서 선수쳐야지,라고 마음먹었지만 몇 달 째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색감과 패턴이 끝내주는 사롱에는 아직도 스리랑카 세탁소 특유의 기분 좋은 약품 냄새가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문득 어쩌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못 쓴 이유는 이거였어. 아직 스리랑카 여행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는 스리랑카에 대해서만 급하게 말하려고 했지, 스리랑카를 여행한 나에 대해서 살피지 않았어. 스리랑카만큼 나도 중요하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여행하고 싶어 미치도록 부추길만한 글재주는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조금 덜 재밌더라도 압축된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 분명히 어떤 여행자는 나만큼 희열을 느낄 거야.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월 사이에 57일 동안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그중에서 37일 동안 뚝뚝을 렌트해서 직접 운전했다. 3,375km, 약 30개 도시를 거쳤다. 스리랑카 지도를 펼쳤을 때 동맥처럼 굵은 선으로 표시된 주요 도로는 거의 다 달렸다.


하루에 다섯 시간 운전대를 잡으며 내 눈은 얼마나 많은 날것에 머물렀겠는가. 얼마나 다양한 스리랑카 사람들의 삶을 엿보았겠는가. 얼마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당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깊은 상념에 사로잡혔겠는가.


“맞아. 난 처음으로 내가 대자연(Mother Nature)이라는 걸 느꼈어. 나는 지저귀고 노래하는 곤충이자 짐승과 다를 게 없었어. 뚝뚝이 덜컹거릴 때마다 내 속도 울렁거렸어. 실컷 울고 노래했어. 어떤 날은 도마뱀이었다가 코끼리도 되었어. 독수리처럼 날았고 악어처럼 노려봤지. 나는 매일 하찮고 매일 위대했어.”


지금부터 스리랑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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