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여행자의 옷을 입고 배낭을 맨 지 만 10년이 되었다.
황금연휴를 맞아 처음 해외로 간 대만 여행이 엑셀로 만든 일정대로 딱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이란. 세상 밖은 놀라움 투성이었다. 용산사 옆 노점에 앉아 족발에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구두 대신 큰 배낭을 사야겠다고. 불결하고 허름한 노점은 엑셀에 없는 일탈이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가 목젖을 청량하게 간질일 때 나는 비로소 자유여행, 배낭여행의 매력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얼마 못 가 직장을 그만두고 태국 방콕으로, 그다음엔 인도 콜카타로 갔다. 나는 인도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운명처럼 여겼다. 마침내 인도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먼 친척처럼, 오랜만에 만난 동창처럼 알듯 말듯 불편하고 조금 친근했다. 인도는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않았지만 밀어내지도 않았다. 이제 인도의 수많은 도시를 두세 번 정도 다녀보니 롤러코스터 같은 흥정과 뻔한 사기 수법은 스트레스나 위협이 아니라 으레 겪는 작은 귀찮음이 되었다. 팬데믹이 끝나고 R과 함께 북인도와 남인도를 한 차례씩 다녀온 후 스리랑카로 향했다. 며칠 후 한국에서 온 B도 합류했다. 그때까지 나에게 스리랑카는 커다란 인도 대륙 아래에 있는 한 방울짜리 작은 섬이었다.
“이제 인도 이야기는 그만 해요.”
R은 스리랑카의 모든 것을 인도와 비교하는 내게 따끔하게 말했다.
“인도의 순한 맛이라더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친절하고 정확하잖아. 인도의 매운맛이 100이라면 여긴 5도 안 돼. 길거리 분위기도 인도랑 완전히 다른데? 치안도 훨씬 좋아. 힌두교나 불교 사원 규모나 양식도 달라. 인도 커리랑 스리랑카 커리는 전혀 다른 음식인 것 같아. 술이 비싼 건 똑같네.”
나는 스리랑카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인도 타령만 했다. 나는 미지의 세계, 배낭여행자의 호기심에 불을 댕기는 인도를 잘 안다는 자만심과 인도 만렙 여행자라는 알량한 생각을 훈장처럼 여기며 이 작은 나라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R의 일침 이후로 인도를 지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스리랑카는 나를 빠르게 흡수했다. 나는 스리랑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스리랑카 여행은 순조롭고 재미있게 흘렀다. 기차와 버스, 택시와 뚝뚝을 타고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콜롬보, 캔디, 누와라엘리야, 엘라, 미리사, 갈레, 우다왈라웨 국립공원 등을 여행했다. 19일간의 여행을 마친 후 발리에서 며칠 쉬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다시 짐을 꾸리는 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나와 R 그리고 B, 우리 셋은 인터넷으로 대행업체를 통해 스리랑카 면허를 신청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37일 동안의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이 참신하고 모험적인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말로 나마 스리랑카 콘텐츠를 함께 만들자는 데 동의했지만,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일로서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돌이켜보면 스리랑카 전역을 다니며 여행을 즐겁게 한 것만으로도 참 잘했다. 표면적인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스리랑카 여행은 각자 가진 효모를 통해 숙성과 발효를 거쳐 삶의 양분이 될 것이다.
나는 스리랑카에서 내가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느꼈고, 존재는 곧 관계라는 것을 배웠다.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