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를 만난다. 지난 2주 동안 왓츠앱(WhatsApp)으로 연락하며 얻은 그의 인상은 ‘스마트 가이’였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정말 일머리가 뛰어나다니까. 그중에서 이 사람이 최고야.”
나는 뚝뚝 렌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여러 번 그를 칭찬했다. 여러 가지 궁금했던 내 머릿속은 상쾌한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내 질문 속에 숨은 행간을 파악해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답했다. 이중 해석의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았다. 빠르고 간결하고 정확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해야 할 일, 소요 시간과 비용이 금방 정리됐다.
그가 제시한 최종 견적은 37일 동안의 렌트비 481유로(하루에 13유로), 보험료 50유로, 면허 발급 대행 1건당 35유로, 총 566유로였다. 여기에 10퍼센트 할인해서 509유로, 우리 돈으로 약 72만 원이다. 하루에 약 2만 원을 3명이 부담해서 무한한 이동의 자유를 누리고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에 19일 동안 대부분의 일반적인 배낭여행자처럼 여행했기에 뚝뚝 렌트가 주는 장점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에게 한국 면허증과 국제면허증 사본, 증명사진을 보냈다. 출국 하루 전 그는 스리랑카에서 발급한 면허증을 사진으로 보냈다. 스리랑카 국기가 들어간 파란 면허증을 보니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뚝뚝 여행을 실감했다.
‘Tuk Tuk Rental Negombo’, 1등 업체보다 후기는 적지만 훨씬 저렴하고 그의 응대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곳이다. 책상 하나와 작은 쇼파가 전부인 아담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건 그의 왓츠앱 닉네임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늘 그의 사명을 보며 대화했기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보낸 동영상 보고 왔어요?”
“그럼요. 어젯밤에도 두 번이나 봤어요. 중요한 내용을 잘 설명했더라고요.”
“그게 기본이에요. 가장 중요하니까 항상 염두에 두세요.”
며칠 전 스리랑카 면허증과 함께 받은 3개의 동영상은 뚝뚝을 출발하고 멈추고 기어를 조작하고 여러 장치의 쓰임새를 설명하는 일종의 예습 자료였다.
“어디로 먼저 갈 거예요? 일정은 정했어요?”
“스리랑카 전역을 돌 거예요. 북부 지역은 안 가봤거든요.”
“음... 아누라다푸라나 담불라로 먼저 가세요. 중부 산악지대는 커브 길이 많고 가팔라서 운전하기 힘들어요. 남부 해안을 먼저 가는 것도 좋은데 항상 사람과 차가 많은 지역이라 조심해야 해요. 과속과 추월 때문에 정신이 쏙 빠질 거예요. 운전이 익숙해진 다음에 가는 걸 추천해요.”
서류 작성을 마치자 그는 지도까지 그려가며 초보 운전자에게 알맞은 코스를 안내했다. 하지만 내 계획은 그가 만류한 중부 산악지대부터 가는 것이었다. 그의 근심을 사고 싶지 않아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지만 셋째는 모험인 게 자유 여행이고 로드트립아닌가. 부딪히기 전까지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만들면 된다.
“이제 레슨을 시작할게요. 한 명씩. 누가 먼저 할래요?”
B가 먼저 운전대를 잡았다. B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대형 트럭을 몰았다. 수동운전에도 익숙하지 않을까. 하지만 곧 B는 군대에서 운전병으로 겪은 PTSD를 호소할 만큼 그에게 제대로 깨졌다. 침착한 그도 언성을 높였다. 세 바퀴 달린 뚝뚝은 단순하게 생겼고 자전거 핸들을 다루는 것처럼 쉬울 것 같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다. 기어 변속 때마다 나는 날카로운 소음은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시동이 꺼지거나 제때 출발하지 못해 당황하기 시작하면 패닉에 빠지기 일쑤다. 한 타이밍만 늦거나 빨라도 사고다. 안전장치가 없는 뚝뚝의 사고를 상상하면 그야말로 끔찍하다. 잘 웃고 낙천적인 B는 겉으로는 주눅 들지 않았지만 발가벗은 기분일 것이다. 손뼉 치고 격려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B에게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Forgot, basic. 환불해줄테니까 그냥 가세요. 이렇게 하면 다 죽어요. 내가 보내 준 영상 공부한 거 맞아요? 뚝뚝 운전은 어렵진 않지만 방심하면 정말 위험하다고요.”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방이라니. B는 정신이 없어 못 들었겠지만, 그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 속에서 한 마디가 똑똑히 들렸다. “기본을 다 잊었잖아요.” B의 실수는 유턴이나 가속, 기어 변속 같은 기술적인 게 아니었다. 사이드미러를 충분히 살피지 않고 출발했고, 골목길을 지날 때는 경적을 울려 방어운전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마음이 한 뼘으로 쪼그라들었을 B 대신 내가 그의 마음을 풀기 위해 애썼다. 보름 전부터 그와 연락하며 쌓인 유대, 그가 좋아할 화법을 사용했다.
“당신이 얼마나 우리를 배려했는지 잘 알아요. 덕분에 뚝뚝 여행을 결심할 수 있었어요. 비행기 안에서도 영상을 공부했어요. 이 레슨은 정말 중요하네요. 우리는 세 명이고 일정도 넉넉해요. 서두르지 않고 익숙해지면 여행을 시작할게요.”
그의 표정은 분노보다는 겁에 질린 것에 가까웠다. 그의 표정이 조금 풀리자 내가 운전대에 앉았다. 중요한 것은 기본. 잘 달리는 것보다는 내가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실수는 하더라도 운전이 두려워져서는 안돼. 일단 뚝뚝과 친해지는 거야. 절대 쪼그라 들지 않을 거야.
비장하게 임한 레슨은 다행히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됐다. 그도 B도, 모든 것을 지켜 본 R도 지치지 않았을까. R은 레슨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뚝뚝 운전은 R의 자그마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어쩌면 이때 분위기가 무거워서 R은 운전하지 않기로 섣부르게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여행 중 한 번은 R에게 뚝뚝 운전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레슨을 마친 그는 눈치 빠르게 사무실로 사라졌다. 만약 그가 걱정을 담아 배웅한다면 그건 부담이다. 아마 그를 더 걱정시킬 것 같다는 걱정 때문에 반드시 그를 걱정시킬 것 같다. 다행히 그가 사라지자 뚝뚝 운전대를 잡고 배운 것을 상기했다.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와 싸우느라 레슨이 끝난 걸 모르고 있었다.
천천히 출발한 뚝뚝은 기어 변속과 악셀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튀어 나갈 것처럼 움찔거렸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달려오는 차와 뚝뚝, 길 건너는 사람과 경적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그런데 그때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강을 달리던 자전거의 친숙함, 인도와 베트남, 태국에서 씽씽 달렸던 스쿠터의 감각, 내 첫 차인 93년식 수동 세피아의 향수가 묘하게 섞여 야생마 같은 뚝뚝을 다독였다.
적어도 이 교차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우린 아주 복잡하게 뒤섞여 있지만 모두 집중하고 있거든. 차라리 이 속에 있는 게 나아. 두리번거리는 건 혼자가 아니니까. 입고리를 조금만 올리면 티 나지 않을 거야.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말. 그리고 혼란 속에서 선명해진 여러 경험이 금세 지난 한두 시간을 ‘지난 일일 뿐’으로 만들었다. B와 R도 뒤에서 크게 떠들며 거리의 소음을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