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 콜롬보
갈레 페이스 호텔
스리랑카 여행의 끝과 시작은 콜롬보다. 모든 여행자는 콜롬보로 모인다. 대형 쇼핑몰과 수많은 호텔, 최신식 빌딩이 이루는 마천루, 넓고 반듯한 도로와 신호등, 미식 레스토랑과 클럽의 뜨거운 분위기, 역사와 상징성을 갖춘 다양한 종교의 사원, 빌딩 사이를 걷는 직장인들의 빠른 발걸음, 평화로운 공원에 모인 인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들, 한껏 멋을 낸 여행자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콜롬보뿐이다. 캔디, 갈레, 엘라처럼 유명한 관광지도 우리가 볼 때는 소도시나 시골에 가깝다. 콜롬보는 경제, 상업 수도이자 스리랑카의 역사, 문화, 종교, 예술이 섞인 용광로로서 언제나 뜨겁고 열정적이다. 이 도시에서 스리랑카 사람들과 외국인 모두에게 의미 있고 상징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갈레 페이스다.
갈레 페이스(Galle Face)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붙은 이름으로 남부 주요 항구 도시인 갈레(Galle)로 향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콜롬보와 갈레가 오래 전부터 스리랑카의 척추이자 동맥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갈레 페이스는 주로 해변 공원인 갈레 페이스 그린(Galle Face Green)을 가리킨다. 공원 바로 옆에는 1864년에 설립되어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 된 갈레 페이스 호텔과 스리랑카 최고의 대형 쇼핑몰인 원 갈레 페이스 몰이 모여 갈레 페이스 권역을 이룬다.
R은 스리랑카의 차 문화인 하이티(High tea)를 즐기기 위해 갈레 페이스 호텔을 꼽았다. 하이티는 애프터눈티(Afternoon tea)와 함께 영국에서 유래했다. 애프터눈티가 영국 상류층 차 문화라면 하이티는 서민과 노동자에게 친숙하고 스리랑카식으로 재해석된 차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차 문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영제국 때 식민지인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우수한 품질의 차 덕분이다. 그러니 스리랑카가 실론(Ceylon)으로 불리던 식민지 시절 설립된 5성급 호텔에서 즐기는 하이티는 긴 세월이 담긴 전통과 정통을 모두 경험하는 것이다.
“5성급 호텔에서 잠은 못 자더라도 차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남인도 여행 끝에 스리랑카로 온 11월 어느날 오후 3시. 남루한 행색이 드러나지 않게 말끔한 옷을 입고 호텔로 갔다. 마침 그날은 하이티 뷔페였다. 예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4,000루피가 조금 넘었으니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다.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 R은 본격적으로 스리랑카 음식을 탐구했다. 하이티 뷔페는 담소를 나누며 차와 디저트를 간단하게 즐기는 애프터눈티와 완전히 달랐다. 구운 고기, 튀김 요리, 샐러드, 야채, 케잌과 크루와상, 스콘, 타르트, 롤 그리고 스리랑카 전통 디저트를 마음껏 먹었다. 게다가 수십 가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스리랑카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차 생산지가 아닌가. 차 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스리랑카의 명성과 5성급 호텔의 품격에 맞는 차를 선별해 준비했을 거라고 믿고 천천히 여러 잔 음미했다. 곧 사람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생일 파티를 하는 대가족도 보였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됐다. 캐주얼 정장을 입은 가수는 정말 감미로운 목소리로 팝송을 불렀다. 하이티 레스토랑은 호텔 정원과 연결되는 지붕 있는 야외석이라 바다가 보였다. 넘실대는 인도양을 앞에 두고 따뜻한 차와 달콤한 음식을 오물거렸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차의 힘, 망중한에 즐기는 차 한잔의 황홀한 여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만의 여유인지, 큰돈 들이지 않고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한 달 동안 남인도를 여행하며 조금씩 갉아 먹힌 체력과 결핍을 조금씩 채우고 있을 때 소란이 일었다. 갑자기 산타 복장을 입은 직원 수십 명이 거대한 나무통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신명 나게 노래하고 춤추며 여러 재료와 술을 쏟아 넣었다. 큰 통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재료가 동원됐다. 가슴 높이 정도로 긴 나무 주걱 예닐곱 개가 바쁘게 재료를 섞었다. 다시 술을 콸콸 쏟아부었다. 사람들의 목청과 몸짓은 더 커졌다. 달려가 그들 속에 섞여 사진을 찍고 함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축제였다. 아마 크리스마스 때 마실 술을 담그는 것 같았다.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는데 너무 빨리 예열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스리랑카의 국교는 인구의 70퍼센트 정도가 따르는 불교다. 그런데 11월부터 크리스마스 파티라니, 날씨만큼 참 뜨겁게 보내는 이들의 크리스마스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 달 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두고 뚝뚝과 함께 콜롬보에 돌아왔다.
R이 하이티를 꼽았다면 내가 갈레 페이스 호텔에 간 이유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때문이다. 나는 고3 때 붉은 표지의 두꺼운 책, 체 게바라 평전을 끼고 살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쿠바로 가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개국 공신에 해당하는 고위직과 안정된 생활을 마다하고 볼리비아 혁명을 이끌다 죽는다. 고집을 신념으로 증명하는 체 게바라는 어린 내게 영웅이었다. 당시에는 체 게바라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요즘은 그의 초상이 들어간 티셔츠나 기념품을 흔하게 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상품이 아닌 흔적을 만나고 싶었다. 갈레 페이스 호텔은 세계적인 정치가, 예술가, 연예인이 다녀간 곳이다.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닐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 인도 최초의 여성 수상인 인디라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로저 무어와 영화계의 명장 스티븐 스필버그, 영국의 공상 과학 소설가 아서 C. 클라크 등 백 명이 넘는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이곳에 묵었다. 체 게바라도 그중 한 명이다.
체의 흔적을 찾아서 다음 날 또 갈레 페이스 호텔로 향했다. 호텔 1층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벽면을 장식한 유명 인사의 사진 중 체 게베라 사진 옆에 섰다. 여행 중에 모처럼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제 여기서 묵는 것 말고 호텔 놀이는 다 했다. 카페 밖으로 나와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는 데 한 직원이 아주 은밀하게 다른 곳으로 이끈다. 본능적으로 그의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다. 그가 데려간 곳은 이 호텔을 방문한 유명 인사를 기록한 작은 박물관이었다. 호텔의 역사와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직원은 팁 이상의 보상을 요구하듯 특별 대우라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이곳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더군다나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고급 호텔 직원이 갖추어야 할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직업 윤리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을 임의로 장사하려고 하다니, 괘씸했다. 그의 은근한 부담을 모른 척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에는 뚝뚝 3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운전사가 리듬감을 살려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헤이, 친구. 호텔은 어땠어? 다들 이 호텔에 찾아온다고. 어디까지 갈 거야?”
“아, 난 픽피(Pick me)로 뚝뚝을 잡으려던 참이었어. 요금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 그런데 얼마야?”
“2,000루피. 콜롬보 시내는 복잡하고 늘 차가 많이 막혀.”
“오우, 너무 비싼데. 올 때는 500루피였어. 그런데 픽미랑 왜 차이가 많이 나는 거야?”
“픽미는 대기업이야. 그들은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1,500루피로 해줄게. 어때?”
아무리 플랫폼 서비스가 그를 위협한다고 하지만 적정 가격의 3배를 부르는 그는 여행자를 위협했다. 그를 위해 조금 더 지불하려고 말을 이어갔지만, 터무니없는 돈을 줄 만큼 어리숙하진 않았다. 그는 돌아서는 나를 잡지 않았다. 전형적인 한탕주의 사기꾼이었다. 호텔 앞에서 돈 많고 셈이 느리고 약해 보이는 여행자를 골라 태울 것이다. 이런 경우 적정 요금의 세네 배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투어나 쇼핑을 권유하며 새로운 기회를 노린다. 일단 한 번 속인 먹잇감을 또 속이는 건 이들에게 아주 쉽다. 하루에 한 명만 제대로 잡으면 종일 성실하게 일한 다른 뚝뚝 운전사보다 많이 버니까 이러는 것이다. 문득 스리랑카가 인도의 순한 맛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약간 매콤하지만 인도에서도 잘 굴러다니는 내게 통할 건 아니었다.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물가를 배워야 한다. 그중에서도 탈 것, 교통 요금이 제일 중요하다. 밥값이나 물건값은 안 먹고 안 사면 그만이다. 작은 팁이라면, 장사하는 걸 5분만 관찰하면 바가지 쓸 일은 없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주인도 속이려다 만다. 하지만 뭔가를 타는 건 다르다. 참고할 만한 게 없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운전대를 쥐고 있는 운전사가 주도권도 같이 쥔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여유다. 하루 이틀 여행할 게 아니라면 몇 대를 놓치더라도 적정 요금을 알아내야 한다. 주변에 차가 없고 픽미로 배차가 되지 않더라도 잠깐만 기다리면 반드시 선량한 운전사를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든 대부분은 성실한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행자는 때로 넘어지더라도 먼지를 털고 다시 일어설 뿐 여행을 깍아 내릴 필요는 없다. 그건 먼지를 호주머니에 잔뜩 넣고 걷는 것과 같다.
갈레 페이스 그린
뚝뚝 운전사를 뒤로 하고 갈레 페이스 그린으로 갔다. 이곳은 콜롬보 시민의 놀이터이자 공원이며 대규모 콘서트나 행사장으로도 쓰인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소풍 온 아이들, 데이트 중인 커플, 친구들과 어울리는 개구진 학생들이 넓은 잔디밭을 가득 채웠다. 외국인 여행자들도 여행 템포를 늦추고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해변을 따라 줄지은 작은 매점에 사람이 몰렸다. 물 한 병과 간식을 골랐다. 과일이나 채소를 양념에 절인 장아찌 같은 간식이 수십 가지였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반찬 가게 같은 모습이었다. 낯선 음식을 반기는 R이 고른 이름 모를 간식은 짜고 맵고 물컹해서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것도 이질적이지 않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힘을 잃고 인도양의 온순한 바람이 뺨과 뺨 사이를 어루만졌다. 바다는 잔잔했다. 수평선에 걸친 태양은 마지막 힘을 다해 발갛게 타올랐다. 구름이 몰려와 붉은 일몰을 줄다리기했다.
어둠이 재빠르게 속도를 높일 때쯤, 빨간 제복을 입은 군인 3명이 국기 게양대 앞에 나타났다. 대형 국기는 인도양에서 헤엄치는 돌고래처럼 힘차게 펄럭였다. 싱할라족을 상징하는 황금색 사자가 큰 칼을 들고 주권과 독립을 용맹하게 부르짖는 것처럼 보였다. 황금 사자 주변에 그려진 보리수 잎은 국교인 불교를 상징하고, 국기 한편을 차지한 연두색은 무슬림을 주황색은 타밀족을 상징한다. 이처럼 스리랑카 국기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는 데 걸린 애끓는 시간과 노력, 희생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돛대처럼 굵고 높은 국기 게양대 끝에서 스리랑카 국기가 팽팽하게 펼쳐졌다. 마치 스리랑카라는 큰 배를 타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군인들은 아주 늠름하고 절도 있게 국기를 조금씩 내렸다. 그 모습을 칼 든 사자상과 스리랑카 사람들이 경건하게 지켜보았다.
원 갈레 페이스 몰
갈레 페이스 그린에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원 갈레 페이스 몰(One galle face mall)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이곳에서 종종 시간을 떼웠다. 원 갈레 페이스 몰은 겉으로 짐작한 것보다 훨씬 큰 쇼핑센터였다. 식품 매장과 극장, 여러 가지 의류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식당과 로컬 식당이 입점해 있었다. 백화점처럼 깔끔하고 간결하지만 아웃렛처럼 부드럽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쇼핑몰에도 나이가 있다면 수능을 마친 수험생처럼 역동적이고 순수한 곳이었다. 손님 대부분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청년과 나들이 나온 가족인 것 같았다. 한 가지 불편한 게 있다면 철저한 보안시스템을 통과하는 입장 과정이다. 한 명씩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짐을 엑스레이 검사에 맡긴 뒤에 입장할 수 있는데 늘 사람이 붐볐다. 평일에는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맥도날드에서 먹는 햄버거 맛은 기가 막혔다. 창가 자리에서는 갈레 페이스 그린과 호텔,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나는 한동안 먹지 못한 진한 고기 국물이 먹고 싶어서 일본 라멘집 앞을 기웃거렸다. R은 서점에 들러 스리랑카 요리책을 샀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도시의 자아를 충전했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원 갈레 페이스 몰 앞에서 깜짝 놀랐다. 입장 대기 줄이 도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손님을 내리고 태우는 뚝뚝과 차가 복잡하게 얽혔다. 줄이 줄어드는 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줄을 선 이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우리는 30분 만에 쇼핑몰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느낄 수 있는 대형 트리가 보였다. 4층에서도 올려다 볼 정도니 20m는 넘을 것 같았다. 이 트리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인증 명소였다. 1층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캐롤을 부르는 라이브 공연이 열렸다. 연주와 노래 모두 수준급이었다. 그들의 음악이 넓은 쇼핑몰을 메아리쳤다. 그때 문득 영화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가 떠올랐다. 한물간 70대 가수 빌리 맥이 끈적하게 부르는 ‘Christmas is all around(크리스마스는 어디에나)’와 풋풋한 아이들인 샘과 조안나가 합작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크리스마스에 바라는 건 당신뿐).’ 이 노래들은 사랑은 도처에 널려있다(Love actually is all around)는 영화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B는 출국 전부터 스리랑카의 크리스마스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주로 유럽을 여행한 그에게 30도를 웃도는 스리랑카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유럽과 비교하면 밋밋한 불교국의 크리스마스에 실망하지는 않을까. 내 걱정과 달리 B의 관심은 호기심에서 멈추었다. 함부로 기대로 확장시키지 않았다. 그저 축제를 즐기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 기우는 과연 B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나는 B가 스리랑카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 기대를 걱정한 것이다. 강박은 이 지역을 오래 여행하며 애증에 빠진 내가 가진 후유증이다. 적어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여행자의 초심으로 도처에 널린 사랑을 주워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