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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6. 콜롬보, 박물관이 살아있다. 박비하라마하데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 콜롬보

by 찬드


드라이브 스루 갤러리를 사이에 두고 콜롬보 국립박물관과 공원은 마주보고 있다. 처음 이곳에 온 건 콜롬보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다른 나라에 가면 미술관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R은 박물관을 참 좋아했다. 내게 박물관이란 너무 넓고 깊은 이야기를 극도로 함축한 것이라 겉핥기 하는 느낌이었다. 또 그 나라의 굵직한 사건을 알지 못하면 박물관의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대별로 전시한 무기나 장비는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R을 따라다니면서 나만의 관람 포인트가 생겼다. 첫 번째는 연관성이다. 스리랑카의 역사와 유적은 주변 나라를 통해서 설명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박물관 밖의 지난 경험이 의외로 도움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콜카타의 인디언 뮤지엄에서 본 오래된 지도, 보드가야를 방문하며 읽은 석가모니의 행적에 관한 기사, 여행을 준비하며 본 스리랑카 내전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이 오늘 떠오를 줄,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기억이 퍼즐처럼 조각을 맞추고 희미하게나마 지식으로 자리 잡는다. 보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점은 이렇게 다르다. 나만의 관람 포인트 두 번째는 전시 구성이다. 우리나라 박물관이 철저한 보안과 디지털 전시로 가닥을 잡았다면 이곳의 유물은 관람객과 함께 숨 쉰다. (만져서는 안 되지만) 손을 뻗으면 언제나 만져볼 수 있는 불상이나 부조가 빼곡하게 들어찬 방, 직접 그린 대형 지도 위에 서서히 나이 든 물감의 색감, 종이 죽으로 만들었을 밀랍 인형. 목에 힘 빠진 낡은 선풍기가 두리번거리며 이따금 보내는 약한 바람에 땀이 줄줄 흘렀다. 그래도 너무 세련되지 않은 박물관에서 나는 세련된 여행자 같다고 자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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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국립박물관이 옛것을 모아두었다면 맞은 편에 있는 비하라마하데비 공원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한 달 전에 만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강렬했던 첫인상 그리고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준 사연은 이렇다.

“헬로우,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 일본? 개퓌 알아요? 개퓌?”

난 이미 그가 다가올 때부터 호객꾼이라는 걸 알아챘다. 대답하지 않거나 최대한 간결하게 상대하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호객이 직업이라면 누구를 공략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안다. 그는 호기심 많은 R을 공략했다.

“개퓌, 개퓌? 시나몬”

“아, 계피! 지금 계피라고 한 거야!”

R은 그의 말에 반응하고 말았다. 이야기가 트인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공원 가이드라고 소개하며 그럴듯한 신분증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 그 신분증은 가짜였다. 그는 낡은 조리를 신고 어딘가 모르게 들떠 있어서 공무원이나 유사 기관의 직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백 마디 말보다 쉽게 그의 역할, 앞으로 우리에게 제공할 서비스를 전달했다. 내가 길 위에서 만난 대부분의 가이드는 반드시 많은 돈을 요구했고,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또 웬만큼 영어에 능통하지 않다면 가이드의 설명은 무용지물이다. 같은 영어라도 억양이나 발음이 많이 다르고 생활 용어가 아닌 전문 용어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떼어 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이 알고 있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이들은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고로 호객꾼에게 초반 거절은 저항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일단 가이드를 시작했다.

“이 공원에는 상당히 많은 볼거리가 숨어있어요. 이건 나만 알려줄 수 있어요. 계피, 박쥐, 천 년 넘은 나무 그리고 코끼리...”


코끼리가 공원에 있다고? 우리는 그에게 한 번 더 확실히 반응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작전 변경이다. 그를 가이드로 받아들이고, 공원 이외의 호객에는 절대 응하지 않으며,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한다. 마음을 다잡고 이제 우리 편이 된 그에게 살갑게 굴었다. 공원 한편에는 말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일단 코끼리부터 보러 가자며 우리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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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있었다. 그동안 동물원 펜스 넘어 멀찍이 떨어져 보던 코끼리가 바로 앞에서 풀을 먹는 중이었다. 여행 중에 코끼리를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 행사에 동원된 것이었다. 이렇게 한가로운 코끼리를 가까이 보다니. R은 크고 귀여운 코끼리를 반겼다. 가이드 할아버지는 코끼리 옆에 가서 사진을 찍으라며 부추겼다. 겁이 많은 나는 코끼리에 밟혀 납작해질 것 같아 망설였다.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도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R이 먼저 코끼리 옆으로 다가가 코끼리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나도 생전 처음 코끼리를 만질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코끼리는 정말 크고 단단하고 거칠었다. 악어도 사자도 왜 코끼리에게 덤비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코끼리의 네 다리 중 두 다리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성체가 된 코끼리는 쇠사슬을 어렵지 않게 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묶여 지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참 약한 쇠사슬과 작대기에 구속된다. 그 모습이 안타깝지만 야생에서 살 수 없을 거라면 쇠창살로 만든 갑갑한 우리보다는 이곳이 나았으면. 다행히 이 공원에서 코끼리에게 관심을 두는 건 우리밖에 없었다.

“한국말로 시나몬을 계피라고 하죠. 나는 한국 관광객을 많이 만나봤어요. 이리 와 보세요. 이게 계피에요. 슥슥 문지르면 향기가 나죠.”

그가 말한 나무와 나뭇잎에 코를 대자 익숙한 향기가 향긋하게 코를 찔렀다. 처음 맡아 보는 신선한 계피 향은 박하처럼 시원하고 청량했다. 그는 나무 작대기로 흙을 파 숨은 씨앗이나 열매를 꺼냈다. 그중에는 후추도 있었다. 나는 늘 후추에 관심이 많았다. 인도 남서부 지역이 원산지인 후추는 한때 같은 양의 금만큼 가치 있는 핵심 교역품이었다. 인도 상인들은 후추의 원산지를 숨기기 위해, 고아(Goa)나 케랄라(Kerala) 같은 인도 남부 지역에 도깨비가 산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노예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은 유럽 상류층에서는 노동자의 2~3개월 치 월급을 고작 후추 한 줌 사는 데 쓰기도 했다. 나는 그 뒤로 국밥이나 곰탕에 후추를 톡톡 뿌릴 때마다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고아에 갔을 때, 수로 유람과 자연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어코 후추 열매를 손바닥 위에 올려 살짝 깬 뒤 냄새를 맡고 혀끝을 갔다 댔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후추를 만난 것이다. 우리는 가이드 할아버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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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를 보세요. 봑징. 봑징. 보여요?”

“어디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는 키 큰 나무의 꼭대기를 가리켰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눈썰미 없는 나는 고개를 빼고 열심히 그의 손끝에 맞춰 눈동자를 굴렸다.

“어어어. 박쥐, 박쥐다!”

R이 소리쳤다. 정말로 박쥐가 나무 끝에 매달려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 사는 조그마한 박쥐가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수박처럼 큰 박쥐가 날개를 접고 키 큰 나무 끝에 거꾸로 매달려 잠을 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중에 한 마리가 뒤척이다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개를 펼치자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양팔을 벌린 것 만큼 컸기 때문이다. 섬뜩한 이미지의 박쥐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니. 그저 수풀이 우거진 공원으로 생각했던 이곳이 가이드 할아버지 덕분에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곳으로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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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후추와 박쥐처럼 공원 속에 슬며시 녹아든 사람들이 보였다. 커다란 나무 틈에서 서로에게 기댄 연인, 잔디에 둘러앉은 학생들, 아이들을 유혹하는 아이스크림 아저씨, 한껏 멋을 내고 촬영 중인 신혼부부 등 평화로운 스리랑카가 내 눈앞에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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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가 천 년을 버틴, 이곳에서 고장 오래된 나무예요.”

그는 30분 넘게 공원을 안내하며 자신이 준비한 수많은 레퍼토리 중 하이라이트로 고목을 소개했다.

“흠, 저건 천 년 된 나무는 아닌 것 같은데.”

“응. 생각보다 작고 수형이 특별한 편도 아니야.”

우리가 천 년 묵은 나무를 조금 시시하게 생각했던 건 이미 나무를 질릴 정도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전 세계의 스님들이 모여 불경을 외는 보드가야(Bodhgaya)의 보리수나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를 ‘마하 보디(Maha Bodhi)’라고 하는데 여전히 수백 명의 승려와 불자를 넉넉히 품을 정도로 넓고 컸다. 그리고 이 마하 보디와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보리수나무는 매우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두 나라의 보리수나무에 관한 사연은 아누라다푸라에 방문했을 때 체험하게 되는데, 그때 가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좋겠다.

아무튼 가이드 할아버지가 보여 준 나무는 다른 여행자가 보았더라면 아름답고 신성하게 보일만했다. 그가 준비한 투어는 꼼꼼했다. 아무리 눈 밝은 여행자라도 그의 도움 없이는 알 수 없는 것을 눈앞에서 만지고 냄새 맡게 해주었다. 그리고 크레센도 기호가 붙은 악보처럼 서서히 더 큰 감동으로 이끌었다. 그의 호객을 따라나서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는 기분 좋게 끝났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내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였어요.”

“나는 이곳에서 오래 일했어요. 여긴 내 일터에요. 당신이 만족했다니 나도 기분 좋아요.”

“이렇게 좋은 투어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음, 5달러나 10달러? 보통 그렇게 주더라고요.”

“달러를 가진 게 없어요. 1,000루피 드릴게요.”

그가 말한 5달러는 허무맹랑한 게 아니었다. 여유가 있다면 10달러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스리랑카 서민의 하루 소득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로 적은 돈이 아니다. 오래 여행 중인 내게도 큰 금액이었다. 그에게 1,000루피를 건네고 지갑을 뒤져 자투리로 남은 지폐를 모아 조금 더 지불했다. 코끼리와 사진 찍을 때,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에게도 얼마간의 성의를 전달했기 때문에 두루두루 만족할 만한 날이지 않을까.

“우린 이만 가볼게요.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투어는 최고였어요!”

“나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남은 여행 즐겁게 잘 마쳐요.”



그렇게 덕담을 나누고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다시 콜롬보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공원에 들어섰을 때 나는 가이드 할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눈알을 굴렸다.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서양인 여행자 2명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후추를 비비고 있었다. 그리고 곧 나무 끝에 있는 박쥐를 가리켰다. R과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우리도 박쥐를 찾고 나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오리배가 떠다니는 작은 연못과 분수, 사람들 사이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황금 불상을 구경했다. 불상 맞은 편에 있는 시의회 건물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껏 치장 중이었다. 한가롭게 공원을 둘러보는 데 저 멀리서 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공원 가이드예요. 신분증을 보여 줄게요.”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신분증을 꺼냈다. 비록 그의 신분증은 너무 낡아 코팅이 벗겨졌지만 나는 그의 모습이 퍽 멋졌고 일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을까. 공원 가이드라는 신분증을 만들고 처음 내밀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에게 경쟁자는 없었을까. 팬데믹은 어떻게 버텼을까. 젊었을 때는 어떤 일을 했을까. 여행자들의 열띤 반응에 보람을 느낄까.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했다는 것을 알면 기뻐할까. 내가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그때도 그를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를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가짜 신분증을 내밀며 다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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