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다음으로 향한 곳은 로얄 베이커리(The Royal Bakery)라는 빵집이다. 마침 B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 스리랑카식으로 축하해주려다 키리밧(Kiribath)이라는 음식을 알게 되었다. 키리밧은 생일뿐 아니라 새해나 축제 때도 먹는 음식인데, 우리나라의 떡처럼 간편식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몇 군데 들른 마트나 식당에서 팔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온 로얄 베이커리는 스리랑카에서 빵집 순례를 한다면 빠뜨리지 말아야 할 만큼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는다. 엄청나게 다양한 빵 중에서 키리밧은 찾을 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케잌을 사려고 몰려든 사람들을 통해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빵집에서 나와 갈레 로드(Galle Rd)를 걸었다. 갈레 로드 주변에는 4성급 이상의 호텔, 편집숍,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모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리랑카에 처음 왔을 때 1,000루피 언저리의 저렴한 옷을 잔뜩 산 매장과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수제 천연 직물 브랜드인 베어풋(Barefoot)도 이 길에 있다. 갈레와 콜롬보를 잇는 길이 130km의 갈레로드는 갈레 페이스 그린을 지나 포트 지역에 닿아서야 끝난다.
포트(Fort) 지역은 스리랑카의 여행자거리라고 할만한 곳이다. 방콕의 카오산로드나 호치민의 데탐거리처럼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곳은 아니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여행자 특유의 자유로움과 설렘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구색을 잘 갖춘 게스트하우스 시테레스트 포트(CityRest Fort)는 스리랑카에 처음 뚝 떨어진 젊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시설이 좋은 건 아니지만 다른 호텔에 비해 싸고 콜롬보 기차역에서 가깝다는 건 큰 장점이다. 나도 새벽 기차를 탈 때나 긴 여행을 마치고 콜롬보로 돌아올 때 이곳을 전초 기지로 삼았다.
포트 지역 중심에는 넓은 중정을 두고 여러 레스토랑이 모여 있다. 해산물, 레바논 음식, 인도 음식 등 색다른 요리의 선택 폭이 넓다. 또 압구정 가로수길에서 볼 법한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퍼포먼스도 눈길을 끈다. 야외 테이블만 있던 중정에는 10m 정도 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빛나고 있었다. 중정을 둘러싼 레스토랑도 여느 때보다 더 신경 써서 손님을 자극했다. 며칠 동안 마트에서 사 온 라면과 과일을 먹으며 청승을 떨었더니, 날이 날인만큼 분위기를 내기로 했다. 약간 어둡고 비싸 보이는 펍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자정이 되길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밖으로 나왔다. 포트 지역의 고급 호텔들은 최선을 다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거리에도 산타가 등장했다. 관객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산타는 거리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허리를 숙여 손을 잡고 스텝을 밟았다. 콜롬보의 크리스마스 속에 섞여 며칠 지내는 동안 무해하다는 말을 종종 떠올렸다. 콜롬보에서 맞는 지구촌 축제는 누군가를 외롭게 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화려했다. 왠지 누구에게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을 것 같아서 언젠가의 피난처로 점 찍어두었다.
이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찾아갈 시간이 되었다. 먼저 성 루치아 대성당(Cathedral of St. Lucia)에 들렀다. 성 루치아 대성당은 1902년에 세워진 스리랑카카톡릭 성지 중 한 곳이다. 잠깐 성당을 둘러보며 기도한 후 수많은 스리랑카 사람이 모이는 성 안토니오 성당(St. Anthony's Shrine)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안토니오 성당은 포르투갈 선교사인 프레드릭 샤비에르(Fr. Frederic Xavier)가 세웠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샤비에르의 고향이 포르투갈이 아니라 인도 고아라는 것이다. 샤비에르는 포루투갈의 식민지인 고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세기 초반에 스리랑카로 건너 와 여러 혼란을 겪고 있던 카톨릭의 기틀을 다지는 데 헌신했다. 그때부터 성 안토니이오 성당은 스리랑카 카톨릭을 상징하는 성당 중 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비단 카롤릭 신자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스리랑카 사람들도 이곳을 드나들며 여느 신이나 추구하는 평화와 번성을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 이 성당은 수난을 겪었다. 2019년 4월 21일 부활절, 테러가 발생했다. 네곰보와 콜롬보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테러였다. 8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그중에는 스리랑카 카톨릭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성 안토니오 성당과 네곰보의 성 세바스찬 성당도 포함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오늘 포트 지역에서 트리를 감상하며 지나쳤던 킹스버리 호텔, 샹그릴라 호텔 등도 테러 대상이었다. 심지어 콜롬보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데히왈라의 한 게스트하우스도 표적이 되었다. 콜롬보에서 300km 떨어진 바티칼로아에서도 참사가 일어났다. 현대에 들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스리랑카는 마비되었다. 처음으로 한동안 미사가 중단되었다. 스리랑카는 이 일을 빠르게 극복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총탄 자국을 남겨 테러를 기록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새겨 그들을 추모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성 안토니오 성당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축복을 전하는 곳이지만, 그 모습이 테러의 표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 스리랑카의 종교 비율은 불교 70퍼센트, 힌두교 13퍼센트, 이슬람 10퍼센트 그리고 카톨릭은 7퍼센트 정도다. 수치로만 보면 불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 종교는 비슷해서 별문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스리랑카의 종교 속에는 민족이 있다. 민족 속에는 출신이 있으며 출신 속에는 이 땅에 자리 잡기 위해 겪은 역사가 있다. 어쭙잖게 아는 척할 수 없는 영역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저 여행자로서 겪고 생각한 짧은 단편을 전달할 뿐이다. 스리랑카를 한 바퀴 돌며 네곰보에 남은 테러의 흔적, 북부 타밀족의 도시, 마지막 내전 격전지, 원주민 마을 등을 둘러보았다. 그럴 때마다 겸손한 여행자로서 머무르려 애썼다.
성 안토니오 성당은 단단해 보였다. 뾰족한 탑이나 돔은 없지만 장엄한 파사드와 대칭을 이루는 첨탑이 편안한 안정감을 주었다. 아치형 입구도 단아하고 묵직했다. 성당 주변은 포트 지역이나 갈레 로드와 달리 의외로 조용하고 경건했다.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뜨거운 기운이 주변을 멤도는 것 같았다. 여행과 크리스마스의 들뜨는 기분으로 이곳이 가지는 상징을 의식하였는데, 그럼에도 줄곧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안정제처럼 이방인을 다독였다. 나는 멀리서 성당을 바라보며 슬며시 성호를 그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했다. 경찰과 군인들이 먼저 편안한 미소로 반겼다. 성당 주변에는 총 든 군인들이 경계 중이었지만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난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는 분명 남아 있을텐데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본당 입구에는 50명이 넘는 테러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묵념했다.
기도실 앞에서는 초에 불을 붙인 사람들이 짧게 기도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수의 성상이나 성화 앞에서 기도에 몰입한 신자들이 보였다. 그들의 영혼은 깊은 영적 상태에서 경건하게 묵상 중인 것 같았다. 나는 이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벅차오름을 느꼈다. 유명하고 웅장한 성당의 제대나 십자가 앞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끌림이었다.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밝고 역동적이지만 심플하고 단아한 제대와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가 요란스럽지 않도록 슬쩍 눌러주는 듯했다. 그렇다고 엄숙한 것은 아니어서 뒤꿈치를 들고 걷지 않아도 되었다. 편안한 걸음으로 예를 지켜 담소도 나누며 어느 자리든 마음대로 골라 앉아 머물 수 있었다. 나는 본당 벽을 따라 제대 앞을 지나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다시 제대 앞으로 가 기도했다. 이곳에서 얻은 감동과 성찰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런 좋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았다. 이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달라고도 기도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몇 번 되뇌었다. 긴 여행은 필연적으로 롤러코스터처럼 기뻤다가 지칠 때도 온다. 한순간 마음의 상처도 생긴다. 하지만 너덜너덜해진 마음이라도 챙겨서 집으로 가려면 몸이 성해야 한다. 제발 아무도 다치거나 아프지 않길.
크리스마스이브의 축복이 가득한 이 밤이 지나면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뚝뚝 로드트립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