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한국에선 마감에 시달렸다. 출국 전날도 밤을 새느라 한두 시간만 눈을 부쳤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있었다. 그래도 네곰보와 콜롬보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동안 여유를 되찾고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생경한 경험으로 여행을 예열했다.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도시 라트나푸라로 첫 로드트립을 떠난다. B가 운전병 경험을 살려 엔진오일과 브레이크오일을 체크했다. 짐을 빼곡하게 싣고 각자 편안 자세로 고쳐 앉았다. 뚝뚝에 시동을 걸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에 합류하려고 기회를 엿보는데 시동이 꺼졌다.
“시동이 안 걸려. 내가 제대로 하는지 봐줘. 이렇게 하면 시동이 걸려야 하잖아. 그런데 안 걸려.”
“그러네, 왜 안 걸리지? 레슨 받을 때랑 똑같이 했는데. 천천히 다시 해 봐.”
출발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골목길을 막고 주저앉은 뚝뚝.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침착하게 시동을 걸었지만 뚝뚝의 엔진은 조용했다. 혹시 골목에서 다른 차가 내려오면 어떡하지. 뚝뚝을 빨리 빼라고 클랙슨을 울리는 장면을 상상하자 손에 땀이 맺히고 두통이 시작됐다. 급해진 마음만큼 엑셀을 억지로 당기며 시동을 걸려고 애썼다. 그러자 엔진은 쉰 기침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 완전히 목청을 잠갔다.
“아무래도 배터리 문제인 것 같아. 며칠 동안 운행을 거의 안 했잖아. 그래서 방전된 거 아닐까. 뽑기 운이 나빴던 거야. 아마 오래되거나 고장 난 배터리인가 봐. 일단 정비소에 들러야겠어.”
이런 유사한 상황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배터리 문제밖에 없었고 B도 운전병 때 겪은 배터리 문제와 똑같다고 거들었다.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는 R은 이런 상황이 생겨도 얼굴을 구기지 않았다. 늘 어떠한 불편도 불평 없이 잘 받아들였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곤경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해서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하지만 R과 B는 상황 반응이 느린 대신 낙천적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나보다 설치지 않고, 내 말에 잘 따라주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뚝뚝을 고치는 것보다 골목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나는 또다시 넉살을 무기로 꺼냈다. 큰길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곧 뚝뚝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키 크고 잘생긴 젊은 운전사와 눈을 마주치자 최대한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문제가 좀 생겼어요. 저 옆에 있는 게 내 뚝뚝인데요. 갑자기 시동이 꺼졌어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그는 길가에 뚝뚝을 세우고 낡은 헝겊을 꺼냈다. 하지만 그도 시동을 걸지 못했다. 베테랑 뚝뚝 운전사도 시동을 걸지 못하는 건 내 운전 미숙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배터리 문제라고 더욱 확신했다.
“배터리 문제죠?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정비소에 가야할텐데. 근처에 정비소가 있어요? 배터리 교체는 얼마나 해요?”
“정비소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오늘 영업을 안 해요. 크리스마스잖아요. 그런데 아직 배터리 문제라고 볼 수는 없어요. 몇 군데 더 살펴볼게요.”
그는 뚝뚝 엉덩이에 있는 엔진룸을 열어 엔진에 기름을 공급하는 연료 호스를 뽑았다가 다시 끼었다. 운전석 아래에 있는 본네트도 열어 배터리 불량이 아닌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손은 기름때로 얼룩졌다. 그는 낡은 헝겊으로 무심하게 손을 슥슥 닦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진 부품도 깨끗하게 닦았다.
“아무래도 못 고치겠어요. 뚝뚝을 뒤에서 밀어보세요. 이게 마지막 방법이에요.”
우리는 뚝뚝을 세게 밀었다. 드르릉, 드르르릉. 시동이 걸리면서 뚝뚝은 손을 떠나 힘차게 달렸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큰길을 두세 번 부드럽고 빠르게 달린 후 내 앞에 뚝뚝을 세웠다. 뚝뚝의 둔탁한 진동이 다시 뛰는 심장 소리처럼 반가웠다.
“아...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당신이 우리를 살렸어요.”
내게는 그가 기적을 행한 예수님이었다. 그냥 가려는 그를 잡고 1,000루피를 내밀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그가 내게 준 마음의 평화는 1,000루피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망설이는 그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어 주고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어떻게 시동을 걸었어요? 뚝뚝을 밀면서 시동 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어를 중립에 넣은 상태에서 뚝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재빨리 1단이나 2단 기어로 변속하면서 엑셀을 당겨요. 그럼 시동이 걸릴 거예요. 아주 간결해야 하고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야 해요.”
출발하기 전부터 진이 빠져버린 로드트립. 나는 라투나푸라에 도착할 때까지 시동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정차할 때도 계속 엑셀을 조금씩 당기며 집중했다. 분명히 엔진에게 안 좋은 행동이었만 중간에 멈출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쩔 수 없었다. 2시간 30분 정도 예상했던 80km의 여정은 3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래도 서둘러 출발한 덕분에 점심 전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뚝뚝이 들어서자 호텔 직원들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제야 나도 긴장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