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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9. 라트나푸라, 보석의 도시

[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라트라푸라

by 찬드

우리가 예약한 숙소(New White House Hotel)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 깊은 곳에 있었다. 여기에 길이 있어? 라는 생각이 드는 길을 몇 번이나 지나자 숙소가 나타났다. 무료 픽업서비스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행히 룸 컨디션은 예상했던 것처럼 아주 좋았다. 지난 여행에서 시내나 관광지 주변에 숙소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면 이번에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조금 멀어도 좋은 숙소를 싸게 예약할 수 있어 돈도 아끼고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뚝뚝은 넓은 지도를 손바닥하게 만드는 요물이었다. 이동의 자유는 여행의 질을 한껏 올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을 나서려는데 호텔 주인이 나타났다. 그는 내향인인 나와 달리 외향인의 최고점에 있는 사람이었다.


“헤이~ 브로. 밖에 있는 뚝뚝 네 거야? 와우, 정말 대단하다. 여기까지 뚝뚝을 타고 오다니. 그런데 너 한국에서 왔지? 내 친구들도 한국에서 일했어. 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많이 들었어. 사진 보여줄까? 이따가 내 친구랑 통화할래?”


그의 수다는 엄청났다. 나와 이야기하는 중간에도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켰다. 내 방에 이불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눈에 불을 켰다. 그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보석 광산 투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너도 알다시피 스리랑카 보석의 90퍼센트는 라트나푸라에서 생산되거든. 내가 보석 광산을 보여줄게. 이건 전통 방식 그대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거야.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거든. 며칠 전에도 독일인 2명이 나녀갔어. 사진 보여줄까? 이것 봐. 엄청나지?”


내가 감탄한 건 보석 광산이 아니라 그의 친화력이었다. 누군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면 게 눈 감추듯 숨어버리는 내향인인 내가 그의 말에는 귀가 쫑긋 섰다. 호기심 덩어리인 R은 이미 보석 광산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았다. 내가 협상 의사를 내비치자 그가 투어 비용을 정리했다.


“오케이. 잘 들어. 여기서부터 광산까지 15km야. 내가 직접 내 뚝뚝을 운전해서 같이 갈 거야? 아니면 네 뚝뚝으로 갈까? 어쨌든 내 가이드비는 1,500루피야. 그리고 광산에 들어가는 체험비가 1명 당 500루피야. 이 돈은 전부 광산 노동자에게 줄 거야. 음, 그리고 계곡에서 수영도 할 수 있고 고무나무 수확 체험도 할 수 있어. 이건 끝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난 길을 모르니까 네가 운전하는 뚝뚝으로 가자. 그리고 광산 노동자에게는 내가 직접 돈을 줄 거야. 알겠지? 우리는 광산에만 관심이 있거든. 수영은 안 할 거야. 그런데 지금은 시내 구경을 하고 올 거야. 지금부터 2시간 뒤에 로비에서 만나서 출발하는 거 어때? 그리고 조금만 깎아줘.”


말을 마치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도 문제없다는 듯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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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광산 투어를 예약해 두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먼저 공영주차장에 뚝뚝을 주차하고 보석 시장으로 갔다. 실로 익숙하고 낯선 장면이 동시에 펼쳐졌다. 종로3가 금은방거리처럼 수십 개의 보석 상점이 나란히 길옆을 차지했다. 온통 보석 가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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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었다. 보석 시장은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노상을 펼친 사람, 종이에 감싼 보석을 보여주는 사람, 어깨동무를 하고 슬쩍 물건을 보여주는 사람 등 보석을 사고 팔려는 온갖 모습의 사람들이 길을 가득 채웠다. 마치 동묘 시장에서 옷을 파는 장면 같기도 했고, 은밀하게 밀수품을 거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확대경인 루페를 한쪽 눈에 낀 사람들이 길거리에 서서 보석을 감별했다. 조간신문이나 잡지를 딱지처럼 접은 종이 속에서 루비와 사파이어가 우르르 쏟아졌다. 수요보다 공급이 월등히 많을 때 일어나는 가치 하락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보석을 볼 줄도 모르고 가공할 줄도 모르는 우리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라트나푸라는 듣던 대로 보석의 도시였다. 하지만 보석 시장을 빠져나오자 여느 평범한 한가한 마을이었다. 닭요리를 파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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