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라트나푸라
약속한 시간이 되자 호텔 사장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삼파 와요(Sampa Wayo)로 동명의 여행사를 운영했다. 라트나푸라는 보석 시장, 보석 광산뿐 아니라 아담스피크(Adam`s Peak)에 오르는 주요 지점이기 때문에 여행자가 끊기지 않는다. 보석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면 아담스피크는 스리랑카 여행에서 고려해야 할 1순위 명소이다. 삼파 와요도 아담스피크 투어를 권유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출발지인 누와라엘리야에서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한 투어는 단 하루였지만, 이건 이번 여행 중 가장 재미있고 역동적인 경험이었다.
삼파 와요는 운전하는 내내 핸드폰을 만지거나 통화해서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런 중간에도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스리랑카 전통 요리 맛보고 싶지 않아? 네가 원한다면 우리집에 데려갈 수 있어. 우리 엄마는 요리를 엄청 잘하거든. 사진 보여줄게. 이게 우리 엄마가 한 요리야.”
사진 속에는 서양 여행자를 배불리 먹이는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말 많고 호객을 일삼는 그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삼파 와요는 아주 진취적이고 뛰어난 사업가였다. 전형적으로 일을 놀이처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제안에는 부담이 담기지 않았고 거절하기도 편했다. 더운 날에도 가죽 모자를 쓰고 개성 있는 긴 옷을 입고 래퍼처럼 자유롭고 친근한 그의 붙임성이 참 신기했다. 어쨌든 밉지 않은 남자였다.
보석 광산에 도착하자 그는 광산 노동자들에게 우리를 소개했다. 그들의 옷과 몸에는 온통 진흙이 묻어있었다. 삼파 와요는 자연스럽게 웃통을 까고 땅속을 향해 소리쳤다. 곧 광산 체험을 시작한다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20m 정도 되는 땅속에서 흙을 담은 마대 자루가 도르레를 타고 올라왔다. 자루는 무척 무거워 보였다. 나이 든 노동자가 마대 자루의 흙을 물이 고인 곳에 부었다. 그곳에서 물을 증발시키고 흙을 채로 걸러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것 같았다. 그때 삼파 와요가 보석 광산의 작업 과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건 아주 고된 일이에요. 종일 땅속에 있을 때도 있어요. 가끔 사고가 나는 데 매년 죽는 사람이 생겨요. 그래도 이 사람들은 이 일을 멈출 수 없어요. 가난하기 때문이죠. 저기 부엌을 보세요. 벽도 없는 이곳에서 음식을 해 먹어요. 여러분의 투어가 이들에게 큰 보탬이 될 거예요. 그런데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건 열악한 환경이나 사고가 아니에요. 언제 보석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죠. 이들은 평생 운에 의지하며 살아요.”
나는 순간적으로 운에 의지한다는(depend on lucky) 말에 골이 흔들렸다. 운은 내가 월요일마다 5천 원씩 로또를 사는 것처럼 보너스나 사치의 영역이어야 하는데, 삶이 운에 맡겨진다니. 그동안 여러 곳에서 본 불구자나 거지를 여행자란 이유로 애써 외면했는데, 오늘은 너무 깊숙한 곳까지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가 시작됐다. 먼저 한 젊은 노동자가 땅속으로 들어가는 시범을 보였다. 땅 속에 박힌 큰 나무 기둥에 연결된 사다리를 타고 순식간에 땅속으로 사라졌다. 헬멧이나 조끼나 로프 등 안전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곧 삼파 와요가 내려갔다. 겁이 많은 나는 이쯤에서 그만둘까 잠깐 고민했지만 작업을 멈추고 돕고 있는 노동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무 기둥을 끌어안았다. 만약 발이 미끄러지더라도 두 팔로 매달려 있을 만큼 힘껏. 나무는 진흙과 물이 묻어 매우 미끄러웠다. 사다리의 간격도 너무 넓었다. 계단 3개를 한 번에 오르는 넓이였다. 손을 놓치거나 발을 헛디디면 튀어나온 나무에 통통 부딪히며 떨어질 것이다. 최소한 중상이다.
나는 까치발을 하고 발 디딜 곳이 어딘지 서너 번 확인한 다음에 한발씩 내려갔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통 진흙 범벅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삼파 와요처럼 웃옷을 벗는 건데. 마침내 바닥에 이르자 먼저 내려와 있던 삼파 와요가 허리를 부축했다. 땅속에는 노동자 3명이 장비를 내려놓고 반겼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속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곡괭이와 삽으로 흙을 파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곧이어 R과 B도 무사히 도착했다. 삼파 와요는 다시 보석 광산의 노동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가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수다스러워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더 크게 뱉었다. 노동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땅 밑에서 올라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물에 머리를 감고 얼굴을 닦았다. 나는 삼파 와요에게 다가가 돈을 조금 더 주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반겼다. 그는 땅 위에 있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그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이에게 공손하게 돈을 건네며 허리를 숙였다.
삼파 와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갓길을 서둘렀다. 그는 광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무나무 숲에 뚝뚝을 세웠다.
“여기가 고무나무 숲이야. 지금 네가 신고 있는 조리도 이 고무로 만들어. 고무나무에 상처를 내고 시간이 지나면 고무 수액이 흘러. 이걸 아침마다 채취해. 이리 와서 만져봐.”
아침부터 살아남으려 아등바등 애쓴 나에게 고무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고프로는 나를 대신해 광산 체험과 고무나무를 기록했고,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삼파 와요는 기어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 한국에 있는 스리랑카 사람을 격려했다. 삼파 와요는 엄마에게 혼이 났는지 내가 관심을 보여도 저녁밥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녔으나 워낙 외진 곳인 탓에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이미 어둠이 깔리고 비가 내리는 산골 흙길에서 뚝뚝을 타고 나가는 것도 위험해 보였다. 결국 우리는 베란다에서 휴대용 가스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이라도 있어서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