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하푸탈레
사실 라트나푸라는 고산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하푸탈레, 엘라, 누와라엘리야와 함께 묶기에는 공통점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라트나푸라를 남쪽 해안가로 분류하거나, 네곰보, 콜롬보와 함께 수도권으로 넣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일으킬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동선상 자연스러운 걸 우선해서 중부, 고산지대에 슬쩍 끼워 넣었다. 라트나푸라는 콜롬보에서 하푸탈레로 갈 때 딱 쉬어가기 좋은 중간에 위치했기 때문에 큰 이질감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라트나푸라 일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중부 고산지대 여행을 시작한다. 해발 140m 정도인 라트나푸라를 떠나 해발 1500m에 이르는 하푸탈레로 가는 여정은 단 몇 시간만에 계절이 바뀐다. 뜨거운 서남아시아의 햇볕 대신 짙은 안개와 턱이 덜덜 떨리는 추위가 찾아온다.
립톤싯(Lipton`s seat)은 하푸탈레에서 약 16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고도는 1970m로 한라산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하푸탈레에 묵으면서 뚝뚝을 대절해서 립톤싯에 간다. 버스는 가파르고 길이 좁은 립톤싯까지 접근하기 어렵고, 택시는 비싸다. 차밭을 구경하며 트레킹 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 트레킹 경험이 많지 않다면 주의해야 하고 더 좋은 방법은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이다.
뚝뚝으로 이동의 자유를 얻은 우리는 욕심을 내기로 했다. 하푸탈레를 건너뛰고 립톤싯으로 바로 가는 것이다. 거리는 100km, 수백 개의 꼬부랑 경사 길을 올라야 한다. 언제 말썽을 부릴지 모르는 엔진과 시동, 아직 완벽하지 않은 운전 실력이 다소 걱정이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또 크리스마스 아침 예수처럼 나타났던 뚝뚝 운전사가 하사한 기술, ‘밀면서 시동 걸기’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였다.
아침 일찍 짐을 싸고 뚝뚝에 시동을 걸었다. 정기적인 운행이 배터리를 충전하고 방전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여유를 갖자 로드트립의 장점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버스나 기차를 탔다면 그저 한낮 풍경으로 여기고 관심을 주지 않았을 작은 존재들이 성큼 다가왔다. 도로 중간에 누워 자는 개, 전봇대에 걸린 플래카드도 구경거리였다. 특히 길거리에 문득 나타나는 오두막 가게도 새롭게 보였다. 기껏해야 음료수나 삶은 옥수수를 파는 게 전부지만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로드트립에서는 휴게소가 될 것이다.
고산지대를 향하는 꾸준한 오르막길을 뚝뚝은 순탄하게 달렸다. 근육질 뚝뚝은 사람 3명과 짐을 잔뜩 싣고도 가파른 길을 거침없이 올랐다. 꼬부랑 커브도 편안했다. 매번 속도를 줄여야 했기에 추월하며 위협하는 차가 없었다. 나는 기어 변속과 회전각을 완벽하게 익히며 뚝뚝 운전에 익숙해졌다. R과 B도 승차감이 형편없고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도 없는 뚝뚝에서 별다른 불편 없이 잘 적응했다.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뚝뚝도 이제 새로운 여행자와 긴 여행에 적응한 것인지 시동이 꺼지지 않고 오랜 시간 잘 달렸다.
하지만 오늘의 사건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세심하고 친절한 한국 내비게이션과 다르게 구글 내비게이션은 종종 한 템포 느리거나 애매하게 안내했다. 나중에는 구글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이때는 길을 잘못 들 수밖에 없었다. 립톤싯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시작된 틀린 길 찾기 드라이브는 시간이 갈수록 엉뚱해졌다. 관광객이 바글바글거려야 할 차밭 사이로 내가 탄 뚝뚝 한 대만 영화처럼 달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명장면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온통 자갈, 돌멩이 투성이인 길에서 엉덩이는 통통 튀어 올랐고 허리로 충격이 그대로 전달됐다. 핸들을 잡은 손목과 팔꿈치도 지릿거렸다. 뚝뚝도 울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반동을 줄이기 위해 바퀴에 달린 서스펜션은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결국 쉴 새 없는 마찰에 지쳤는지 끼익 끼익 쇳소리를 냈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고 계속 가기엔 불안했다. 만약 여기서 뚝뚝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정비사를 불러올 수는 있겠지만 하룻밤쯤 불시착을 각오해야 했다. 만약 뚝뚝 여행이 편하기만 했다면 감히 로드트립이라고 부르지 않고 렌트 여행이라고 했을진데, 길 위의 자유와 함께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두루 겪었기에 로드트립은 완성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