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하푸탈레
다행히 뚝뚝이나 내가 퍼지기 전에 립톤싯 매표소가 보였다. 휴, 살았다.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안도의 숨이 터졌다. 매표소에 다다르자 역시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나는 비교적 잘 닦인 길을 찾지 못해 전쟁 영화에나 나올 법한 폐길을 달려왔다는 걸 알게 됐다.
매표소를 지난 1km 정도 올라가자 드디어 대망의 립톤싯이 나타났다. 가드레일이 없는 작은 산길은 오고 가는 차가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에 가까웠다. 그 속에서 운 좋게 뚝뚝이 쉴만한 장소를 찾아 주차했다.
“여기에요, 여기. 올라 오세요. 일단 차부터 한 잔 마시세요. 곧 날씨가 좋아질 거예요.”
꼭대기에 있는 찻집 직원이 우리를 애타게 불렀다. 몇 해 전 겨울에 비슷한 높이인 한라산 백록담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컵라면을 든 손이 얼마나 떨리던지 젓가락을 쥘 수 없었다. 게다가 뜨거운 물로 만든 차가운 컵라면을 낭만으로 포장해야 했던 애달픈 기억. 오래 달려왔으니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에그롤 3개, 사모사 3개, 다른 것도 3개씩만 주세요. 나머지는 가져가세요.”
한상차림으로 나온 간식 중 먹을 만큼만 남기고 돌려보냈다. 한국에서는 ‘드실만큼만 주문하세요’라면 이곳에서는 ‘일단 한상 차릴테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남기세요. 먹은 만큼만 돈을 받습니다’의 차이다. 하지만 안 좋아하는 음식이나 너무 많은 음식을 쌓아 두고 싶지 않고, 손이 많이 가면 다음 사람에게 좋을 것도 없어서 나는 처음부터 필요한 만큼만 달라고 한다. 물론 일단 음식을 푸짐하게 먼저 보여주는 데는 그만한 문화적 배경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문화를 몰랐을 때 치명적인 실수를 한 적이 있다. 10년 전 미얀마 바간에서 어느 허름한 백반집에 들렀을 때다. 넓은 쟁반을 빼곡하게 채운 20개가 넘는 반찬 그릇, 배고팠던 나는 미얀마판 한정식이라 여기며 그릇을 싹 비우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소곤거림은 잘 먹는 외국인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곳은 반찬 2~3개를 골라 먹는 시스템이었다. 지질했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밥값을 조금만 깍아 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과 차가 나오자 손도 씻지 않고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갔다. 차에는 설탕을 듬뿍 넣었다. 보통 아침을 거르고 7시 전에 출발해서 다음 도시에 도착하면 허기가 밀려온다. 더군다나 길을 헤맸고 안개가 드리우고 습한 바람이 불자 체온도 오르락내리락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데웠다. 여기까지 온 다른 여행자도 나와 다를 게 없었다. 따뜻한 숙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람막이를 챙겨 입고 이곳까지 흘러왔다. 립톤싯 인증 사진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립톤싯의 유일한 찻집에서 차 한 잔 마시는 짧은 순간이 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드넓은 차밭이 잠깐 드러났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아, 바로 이 풍경이 진정한 립톤싯이었다.
찻집을 나와 립톤 경의 동상 앞으로 갔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자신감 넘치는 사업가의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했다. 그의 손가락 끝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할한 차밭을 가리키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차례대로 동상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립톤싯(Lipton's Seat)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업가이자 차의 왕이라고 불리는 남자, 토마스 립톤(Thomas Lipton)의 이름을 딴 전망대이다. 립톤이 이곳에 앉아 차밭을 내려다보며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립톤이 앉은 자리’라는 뜻으로 립톤싯이라고 부른다. 립톤은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지만 청년이 된 후 식료품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870년대에 립톤을 설립했고, 1890년대에 스리랑카에서 세계적인 차 기업이 되는 기틀을 다졌다. 그는 차밭을 직접 구매, 관리, 유통하며 찻잎 가격을 뚝 떨어트렸다. 덕분에 저렴하고 맛있는 홍차는 세계로 퍼졌다. 영국에서는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렸다. 립톤은 우리나라에도 아이스 홍차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내가 어릴 때는 식당에 가도, 친구 집에 가도 끈적끈적한 립톤 아이스 홍차 플라스틱병이 있었다. 얼음을 동동 띄운 달콤한 아이스 홍차는 누구나 좋아했다. 요즘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제로 칼로리 홍차가 편의점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지만, 맛만큼은 100년 세월을 겪은 립톤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것 같다.
립톤싯에서 한 시간 남짓 머무르고 다시 뚝뚝에 시동을 걸었다. 올 때와 달리 외롭지 않은 드라이브였다. 수많은 차와 뚝뚝이 꽁무니를 맞대고 산을 내려갔다. 차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보였다. 도로에서 벗어나 차밭 사이에 뚝뚝을 세웠다. 19세기 말 립톤 경이 보았던 풍경에서 달라진 건 별로 없을 터였다. 크리스마스를 즐겼던 도시의 화려한 모습은 벌써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차밭 사이로 트레킹 중인 여행자가 나타났다. 우비를 입고 등산 스틱을 짚은 그들은 아직 한참 남은 립톤싯을 향해 묵묵히 걸었다. 그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길 위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에 감동하게 되겠지.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데, 여행은 간혹 방향보다 속도에 좌우된다. 여행자에게 사방은 공평하게 낯설고,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까.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도, 같은 곳을 거듭 찾아가는 것도 어쩌면 방향이 아니라 그 장소의 비밀을 풀지 못한 여행의 속도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