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누와라엘리야
티팩토리 투어를 마친 후 램보다 폭포(Ramboda Falls)를 찾아갔다. 위키디피아에 의하면 램보다 폭포는 높이 109m로 스리랑카에서 열한 번째로 높다. 산악 지역인 누와라엘리야 근방에는 이런 폭포가 워낙 많아서 택시 운전사는 여러 곳을 추천했다. 티팩토리를 오가는 중에도 맞은편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보였다. 때로는 폭포가 일으킨 물보라가 차에 튈 정도로 가깝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램보다 폭포 입구에서 입장료 200루피를 냈다. 멀찍이 떨어져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할 줄 알았는데 폭포 탐방은 등산에 가까웠다. 나무가 우거진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숨이 턱 막혔다.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미끄러웠다. 예상치 못한 등산은 꽤 힘들고 지루했다. 25분쯤 지나자 폭포 전망대가 나타났다.
폭포의 굉음이 들렸다. 나도 폭포처럼 땀을 흘렸다. 폭포 아래로 내려갔다. 폭포의 수량이 엄청났다. 매 순간 집 한 채가 떨어지는 듯 땅이 울리고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그래도 스리랑카의 자연이 참 좋았다. 1900m 넘는 고지대를 며칠 동안 쏘다녀도 매번 다른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수수하게 가꾼 자연 명소도 마음에 들었다. 연필로 얇은 선 하나만 슬쩍 그은 듯한 경계는 여행자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만 다가오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덕분에 마음이라도 얼마든지 담을 넘을 수 있었다.
“또 어디 가고 싶어요? 다른 폭포가 있는데 보여줄까요?”
“아니요. 덕분에 실컷 잘 놀았어요. 이제 그만 돌아갈래요.”
“음, 그럼 바로 옆에 전망대가 있어요. 거기까지만 가 봐요. 유명한 곳이라서 관광객이 늘 많은 곳이에요.”
반나절 만에 투어를 끝내려는 내게 택시 운전사는 가이드를 자청했다. 역시 현지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전망대에서는 누와라엘리야 시내와 시내를 둘러싼 차밭, 그 차밭을 가로지르는 폭포를 볼 수 있었다. 구름에 가려 드문드문 부분적으로 나타난 풍경이지만 누와라엘리야의 모습을 이미지로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내로 돌아올 때도 창밖 풍경은 흥미로웠다. 눈치 빠른 택시 운전사는 속도를 줄이거나 차를 멈추고 사진 찍을 시간을 주었다.
“정말 이대로 끝내도 되겠어요? 점심도 안 먹었잖아요. 식당이나 다른 티팩토리에 갈래요?”
“괜찮아요. 티팩토리에서 간식 먹어서 배고프지 않아요. 시내로 돌아가주세요. 아, 혹시 숙소 대신 그랜드 호텔에 내려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그러면 호텔로 갈게요.”
그랜드 호텔(The grand hotel)은 호텔 예약사이트에서는 4성급으로 표기되지만, 실제로는 5성급 이상의 평가를 받는 곳이다. 영국 총독이었던 애드워드 반스는 누와라엘리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1828년에 대저택을 지었다. 그 후 1891년에 호텔로 개조하였는데, 바로 그랜드 호텔이다. 그랜드 호텔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지만 당시 영국의 건축 기법과 장식,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누와라엘리야가 ‘작은 영국’이라고 불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 호텔의 고풍스러움과 전통적인 티룸은 세계를 유혹했다. 영국의 왕세자 조지 5세와 조지 6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인 작가 도리스 레싱과 러디야드 키플링,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그레고리 펙,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 등 유명 인사가 이곳에 묵거나 머물렀다.
러디야드 키플링은 모글리를 주인공으로 한 정글북을 쓰기 전에 인도와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대작의 배경이 인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러디야드 키플링은 인도와 스리랑카를 가리지 않고 영감을 받았을 것 같다. 인도와 스리랑카의 정글에는 아직도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날카롭지 않고, 두 나라는 여전히 자연과 동물에 대한 공존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디야드 키플링이 태어난 곳은 인도 뭄바이다.
화려하지만 절제된 정원을 지나 도어맨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짙은 갈색 가구가 풍기는 클랙식한 분위기와 우아한 인테리에는 100년 묵은 품격이 쌓인 것만 같았다. 호텔 밖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특별한 분위기가 로비를 가득 채웠다. 시간 위로 붕 뜬 것 같은 세월의 감각은 다른 곳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로비를 지나 기념실로 갔다. 그곳에는 이 호텔을 방문한 유명 인사의 초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역사책이나 TV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티팩토리를 둘러 보고 하이티를 즐기며 더 이롭게 살 힘을 얻지 않았을까. 나도 작은 정원 옆에 마련된 티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3층 티어드 트레이에는 샌드위치, 스콘, 페이스트리, 케이크 등 다양한 간식이 가득했다.
하이티를 마시고 숙소(Thilina Hotel)로 돌아온 밤. 호텔 직원이 끓여 준 시나몬 티에 설탕을 듬뿍 넣었다. 이 차가 하이티보다 더 맛있다면 내 입맛은 그저 그렇다는 뜻일까. 그래도 나는 티팟(Tea pot)을 몇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 틸리나 호텔은 시간이 지나서도 계속 기억에 남았다. 깨끗하고 넓은 테라스, 살가운 직원들이 차려준 아침도 풍족하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종일 구름에 갇힌 이 도시에서 틸리나 호텔은 바스락거리는 햇볕처럼 따뜻한 곳이었다. 그래서 매일 밤, 쌀쌀하지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어두운 밤거리만 남은 누와라엘리야를 한참 바라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누와라엘리야의 지난 여행 이야기이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나는 뚝뚝을 자랑스럽게 몰고 그랜드 호텔로 향했다. 이 역사적인 호텔에 뚝뚝을 타고 다시 돌아오다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재미있었다. 나를 본 주차관리인은 고급 외제차 사이로 뚝뚝을 유도했다. 나는 아주 부드럽게 당당하게 뚝뚝을 세우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키를 뽑아 손가락에 걸고 빙글 돌리며 짧게 허세를 부렸다.
크리스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호텔 분위기는 한 달 전과 사뭇 달랐다. 트리 장식과 캐롤, 피아노 연주가 더해진 로비는 정말로 ‘작은 영국’을 연상케 했다. 피아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스리랑카에서 세 번째 하이티. 오늘은 샴페인을 추가했다. 홍차의 정점과 와인의 정점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3단 티어드 트레이와 홍차, 샴페인으로 가득 찬 테이블을 보니 바깥에서 기다리는 뚝뚝이 낯설었다. 홍차를 마시고 다음 차를 골랐다. 트레이에 담긴 간식을 모두 먹는 동안 서너 잔의 차를 더 마셨다.
지난 여행과 이번 여행을 통틀어 스리랑카에서 보낸 시간이 한 달에 가까워졌다. 이제 영국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호텔이나 하이티 말고 되도록이면 스리랑카 문화를 쫓아 볼 생각이다. 이만큼 머물렀으면 한 철만 보내려는 관광객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 시선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 남은 한 달 여행을 잘 조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