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사파리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 꼭 해야 할 체험을 꼽자면 사라피 드라이브가 첫 번째다. 스리랑카는 야생과 비야생의 경계가 적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늘 다양한 동물이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 국립공원은 감옥처럼 높은 벽과 철조망을 두르지 않는다. 동물이 국립공원 밖으로 드나들 정도로 최대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호한다. 사파리 드라이브는 전용 지프를 타고 서너 시간 동안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동물을 관찰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코끼리, 악어, 표범, 물소, 사슴, 원숭이, 공작 등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파리 전용 지프를 타고 동물 흔적을 쫓아 다니는 것도 흥미롭다.
여행자는 어디에서 사파리 드라이브를 할지 정해야 한다. 나도 한참 고민했다.
먼저 얄라(Yala) 국립공원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얄라는 가장 유명한 곳이다. 규모도 크고 동물도 다양하다. 한마디로 동물 백화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표범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여행자는 표범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을 기대하고 얄라를 찾는다. 얄라의 단점은 너무 많은 여행자 때문에 항상 붐빈다는 것이다. 동물보다 지프를 더 많이 보고 돌아올 수도 있다. 게다가 표범은 늘 나타나지 않는다.
우다왈라웨(Udawalawe) 국립공원은 얄라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좋다. 우다왈라웨에는 얄라만큼 다양한 동물이 있지만 비교적 붐비지 않는다. 하지만 표범이 없다. 대신 코끼리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다. 표범 대신 코끼리에 만족한다면 우다왈라웨만한 곳이 없다.
쿠마나(Kumana) 국립공원은 앞에서 소개한 두 곳과 함께 스리랑카 남부 지역에서 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다.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작지만 실속 있는 곳이다. 원래 얄라에 포함되었던 만큼 표범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멀다는 게 단점이다. 남동부 해안가에 있기 때문에 스리랑카에 처음 온 여행자에게는 먼 길이다. 하지만 일정이 길거나 서핑의 성지라 불리는 도시, 아루감베이에 갈 계획이라면 쿠마나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쿠마나는 아직 덜 알려져서 사파리 비용도 싸고 한적하다.
미네리야(Minneriya) 국립공원은 코끼리로 유명하다. 때를 잘 맞추고 운이 따라주면 수백 마리의 코끼리가 미네리야 호수로 몰려드는 대집결(The Gathering)도 볼 수 있다. 스리랑카 중부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문화 삼각지대에 집중하는 여행자에게는 유일한 선택지다.
윌파투(Wilpattu) 국립공원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표범을 비롯해서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스리랑카 중부나 남부에 집중한다. 나처럼 한 달 이상 일정으로 스리랑카 북부까지 다녀올 게 아니라면 동선이 꼬인다. 왠지 이곳에서는 동물보다 내가 귀할 것 같아서 꼭 가보고 싶었다. 특히 글램핑에서 하루 묵으면서 저녁에는 캠프파이어, 아침에는 사파리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이 끌렸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나는 스리랑카를에 처음 왔을 때 우다왈라웨 국립공원을 선택했다. 엘라에 있는 여행사, 실론 프리미엄 투어(Ceylon Premium Tours)의 사장이자 가이드인 티바(Thiva)의 컨설팅이 주요했다.
“엘라에서 얄라에 들렀다가 미리사로 갈 수 있죠? 사파리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것 보다 한 번에 이동하는 게 좋겠어요.”
“물론이죠. 얄라에 가려면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해요. 사파리는 4시간 정도 걸려요. 저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사파리가 끝나면 미리사의 호텔까지 데려다 줄게요.”
“엄청 일찍 출발하네요. 얄라에 가면 표범을 볼 수 있을까요?”
“얄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일찍 가서 붐비기 전에 사파리를 시작하는 게 좋아요. 표범은 운에 맡긴는 거죠. 얼마 전에는 4시간 동안 코끼리 1마리만 겨우 본 사람도 있어요. 운이 나빴죠. 표범을 포기하면 우다왈라웨도 좋은 대안이에요.”
“흠, 그럼 우다왈라웨로 가요! 몇 시에 픽업할 수 있어요? 나는 미리사에 오후 3시 전에 도착하고 싶거든요.”
“6시 30분에 데리러 갈게요. 우다왈라웨는 얄라보다 작아서 사파리는 3시간밖에 안 걸려요.”
“좋아요. 택시비랑 사파리 비용 알려주세요.”
“3명이라고 했죠? 택시비는 1명에 28달러이고요. 사파리는 1명에 44달러에요. 사파리 비용은 저한테 줄 것 없이 현장에서 직접 내세요.”
“아... 꽤 큰 돈이네요. 택시비 좀 깍아주세요. 택시 말고 봉고차 같은 건 없어요?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도 괜찮아요.”
“그럼 택시비는 25달러로 해줄게요. 더 이상은 안돼요. 220km, 8시간 30분이나 걸리거든요.”
티바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긴 여정을 맡겨도 될 만큼 성실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그의 차에 올라탔다. 깨끗하고 쾌적한 승용차였다. 그는 엘라를 벗어나며 엘라의 주요 명소를 소개했다. 잠깐 멈춰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승차감과 시원한 에어컨에 맡긴 몸을 일으키고 싶지 싶었다. 이때는 버스와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라서 택시를 대절한 여정이 오아시스 같았다. 티바의 운전은 아기를 재우는 요람처럼 편안했다.
우다왈라웨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사파리 가이드를 만났다. 사파리 드라이브는 가이드가 중요하다. 다양한 동물을 많이 보는 건 운도 따라야 하지만 가이드의 능력과 성실함도 한몫했다. 평판 좋은 여행사를 통하면 아무래도 검증된 가이드를 만날 확률이 높다. 우리가 만난 잘생긴 젊은 가이드는 투어 내내 동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처음 보는 동물의 이름과 특징도 알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는 관찰력도 좋았다. 나무 사이에 숨은 새, 코끼리의 흔적, 코만 빼꼼 내밀고 있는 악어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나도 고개를 쭉 빼고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내가 도저히 찾지 못할 때는 내 카메라를 가져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뷰파인더를 확대해 동물을 보여주곤 했다. 그는 코끼리가 의식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가깝게 차를 세웠다. 사진 찍을 시간도 넉넉하게 주었다. 마주치는 다른 가이드와 정보를 교환하고 재빠르게 동물을 쫓았다. 무려 3시간 동안 그는 지치지 않고 운전과 가이드를 완벽하게 해냈다. 나중에 그에게 팁을 주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례였다.
이날 코끼리 떼를 만나거나 악어의 사냥 같은 역동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날개를 펼친 공작만 봐도 탄성을 지를 만큼 야생 동물 경험이 적었다. 코끼리를 만났을 때는 지프에서 뛰어내릴 것처럼 좋아했다. 독수리도 멋있었고 푸른 깃털과 오렌지빛 배가 특징인 새, 킹피셔도 아름다웠다. 도시 속 동물원이 전부였던 내게 사파리 드라이브는 동물원이라는 말이 어폐라는 걸 깨닫게 했다. 동물원에 진짜 동물은 없다. 야생이 거세된 동물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이상하게 이날 이후로 동물이 눈에 잘 띄었다. 콜롬보 시내 한복판에서 코모도 드래곤을 닮은 약 1m 크기의 물왕도마뱀(Varanus salvator)을 마주쳐서 까무러친 적도 있다. 물왕도마뱀은 담불라의 논길에서도 나타났다.
이번에 스리랑카에 다시 와서 뚝뚝 로드트립을 하자 사파리 드라이브와 다를 게 없었다. 길에서 소떼도 여러 번 만났고 공작은 우리나라의 참새처럼 흔했다. 어떤 날은 코끼리가 길 가운데 서서 뚝뚝을 쳐다보기도 했다. 머리가 쭈뼛 서면서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만약 동물원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스리랑카가 하나의 동물원이다. 나는 그중에 인간 동물로서 살며 여행이라는 습성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인간 동족과 다른 동물 사이에서 함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