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스리랑카] 뚝뚝 타고 스리랑카 일주, 3,375km 아루감베이
파도 소리가 새벽 잠을 깨웠다. 밖으로 나가자 밤하늘과 밤바다가 고요하게 마주 보며 서로를 비추었다. 하늘이 바람으로 나지막하게 말을 걸면 바다가 파도로 속닥였다. 새벽 파도는 맑고 낮은 소리를 내며 생기를 전했다. 정신을 차리고 짐을 쌌다. 1층으로 내려가 직원을 깨웠다. 장작을 집어삼키던 화덕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 먹은 피자가 떠올랐다. 화덕의 열기가 살아서 펄펄 뛰는 싱싱하고 맛있는 피자였다. 아직 잠이 덜 깬 직원이 주차장 문을 열었다. 포투빌을 향해 길을 나섰다.
아루감베이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포투빌은 아루감베이의 관문 역할을 한다. 둘 다 작은 마을이지만 포투빌이 훨씬 더 크고 교통도 좋다. 아루감베이는 서핑, 관광, 호텔에 집중해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면 포투빌은 경제, 상업, 종교 시설이 몰려 있는 현지인 생활권이다. 그래도 포투빌에 한가지 볼거리가 있다면 포투빌 석호(Pottuvil Lagoon) 사파리다. 아루감베이에도 아루감 석호(Arugam Lagoon)가 있지만 동식물의 밀도가 낮아 사파리보다는 휴식이나 산책에 적당하다. 포투빌 석호는 맹그로브 숲 사이로 풍부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어 카약이나 보트를 타고 사파리에 나서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일출, 일몰 때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까지 운치를 더한다.
포투빌 석호 주변은 주택가였다. 벽돌을 쌓거나 바나나 나뭇잎을 엮어 만든 힘없는 벽이 집과 길을 구분했다. 흙길에는 구덩이가 패이고 물이 고여있었다. 뚝뚝은 물 구덩이를 피해 덜컹거리며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뾰족한 지붕을 덮은 1층 집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바닥이나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저 집에 살게 되었을까. 누울 자리 하나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마을, 부모가 사는 집, 함께하는 가족,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종교. 이렇게 중요한 것 중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들처럼 살았을 것이고, 누군가 나로 태어났다면 나처럼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모두 다른 제 삶을 산다. 그 삶을 하나씩 살펴보면 겉 환경이 닮았다는 이유로 한 데 묶어 한두 마디로 뭉뚱그릴 수 없다. 나는 가끔 서울에서도 골목길을 걸을 때면 집집마다 들어앉은 삶의 펄떡거림을 느낀다. 아루감베이 온 뒤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연민과 경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담을 넘었다.
포투빌 석호 앞에는 작은 가게 하나가 불을 켜고 있었고 세네 명이 모여 있었다. 어제 사파리를 예약할 때 만난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 시간 맞춰 왔네요.”
“그럼요. 그런데 오늘 날씨도 좋진 않네요. 구름이 너무 많아요. 오히려 어제 일몰이 더 나았을까요?”
“지나 봐야 아는 거죠. 아직 사파리를 시작 안 했잖아요. 오히려 그늘 지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네.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일찍 모인 거예요? 요즘 비수기라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당신처럼 간혹 손님이 와요. 그럴 때만 일하는 거죠. 따뜻한 차 마실래요? 조금 뒤에 뱃사공이 올 거예요.”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차를 권했다. 곧 한 남자가 나타나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포투빌 석호에 사는 동물 사진과 정보, 주의 사항 등이 안내되어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뗏목처럼 생긴 작은 배에 올랐다. 카약 두 개 위에 널빤지를 올린 모양이었다.
뱃사공은 긴 대나무로 바닥을 밀며 석호 중앙을 향했다. 수심이 깊진 않은 것 같았다.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던 석호 속으로 들어갈수록 나는 점처럼 작아졌다. 배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움직였다. 어부 두 명이 탄 배가 보였다. 어부가 던진 그물이 공중에서 넓게 펼쳐지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어부들의 분주함 덕분에 이를 지켜보는 나로서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일출 시간이 되었지만 구름이 두껍게 쌓여 해는 보이지 않았다.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있고 배에는 해를 가릴 지붕조차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뱃사공은 어떻게 방향을 아는지 선물 상자에서 선물을 하나씩 꺼내듯 볼거리를 향해 노를 저었다.
멀리서 맹그로브 숲이 보였다. 털뭉치처럼 얽히고설킨 맹그로브 나무는 염분이 섞인 물속에 뿌리를 두고도 잘 자란다. 덕분에 작은 새나 물고기에게는 좋은 은신처가 된다. 큰 동물에게는 훌륭한 사냥터다. 맹그로브 숲이 가까워지자 한 무리의 검은 새가 하늘을 덮었다. 박쥐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박쥐가 맹그로브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박쥐는 출근 시간이라도 된 것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진 빗방울은 석호에 부딪히며 청초한 파열음을 냈다. 스콜이었다. 순식간에 온 몸이 젖었다. 그때 고기를 잡던 어부의 가냘픈 배가 옆을 지났다. 뱃사공은 어부 옆으로 다가갔다.
어부가 손바닥만한 물고기를 들어 보여주었다. 망태기에 든 물고기는 서너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먹으려고 잡는 건지, 팔려고 잡는 건지. 그게 뭐든 이 정도로는 소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어부는 기분이 좋은지 계속 말을 걸었다. B는 어부에게 허락받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염려스러웠다. 미얀마 인레 호수나 베트남 하롱베이, 태국 암파와 수산시장에서 공짜는 없었다. 어부나 상인은 포즈를 취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물건을 팔았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마치 치열한 생업의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떠벌리는 사진가도 있었다.
영어가 서툰 어부는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빈 비닐 봉투는 강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뱃사공이 대신 받아서 B에게 건넸다. 어부는 카메라와 비닐 봉투를 번갈아 가리켰다. 뱃사공이 말했다.
“카메라나 핸드폰을 비닐에 담으라는 거예요. 물이 들어가면 고장 나잖아요. 얼른 잘 숨기세요.”
어부는 멀어지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알진 못하겠지만 몹시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힘껏 손을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배는 바다로 향했다. 바다와 석호 사이의 사구에 잠깐 정박했다. 너비 50m정도의 모래가 바다와 석호의 얕은 경계였다. 이곳에서 가끔 코기리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뱃사공은 다시 맹그로브 숲으로 노를 저었다. 숲 너머에는 논이 보였다. 그때 물소 떼가 나타났다. 물소는 차례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슬금슬금 걷더니 이내 뛰기 시작했다. 물소 떼가 만든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물소의 강인한 힘이 파장을 일으키며 물결을 타고 전해졌다. 장관이었다. 뱃사공은 넋이 나간 우리 뒤에서 조용히 물소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오늘은 코끼리가 안 보이네요. 가끔 코끼리가 이곳에 오거든요. 코끼리를 보여 주고 싶은데.”
“여기에 코끼리가 온다고요? 코끼리가 이런 곳에 살아요?”
“코끼리는 어디에나 있어요. 코끼리를 좀 더 찾아볼게요.”
우다왈라웨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드라이브로 코끼를 보긴 했지만 석호에서도 볼 수 있을까. 나는 코끼리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듣고도 이 사실이 신기했다. 뱃사공은 맹그로브 숲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저기, 코끼리에요. 맹그로브 나무 사이에 코끼리가 있어요. 다리랑 코가 보이네요.”
정말 코끼리가 있었다. 육중한 다리와 근육질 코가 보였다. 코끼리 몸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코끼리의 위용은 전해졌다. 코끼리는 이 근처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뱃사공에게 물소 떼나 코끼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지나가는 우유 배달부 같은 것이지 않을까.
코끼리는 분명히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야생의 거친 이미지와 달랐다. 코끼리는 포투빌 마을에서 이제 막 눈을 뜬 사람들처럼 운명 같은 자신의 자리에서 제 삶을 산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스리랑카서 만나는 많은 동물에게도 연민과 경의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