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지 않는 문과생은 무(無)과생이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읽고 쓰는게 무섭다는 문과생들이 있다. 얼핏 들으면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의 고민처럼 보이지만, 대개 이런 경우는 아무것도 '읽지 않고', '쓰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읽고 쓰긴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페북 찌라시를 마주치고, 메신저를 통해 수백 개의 말을 옮기고 적는다. 그러나 보통 이런 문자들은 힘이 없다. 스쳐지나가는 '읽고 쓰기'는 그저 망막에만 맺히고, 손끝에만 닿기 때문에, 읽어도 도움이 되지 않고, 쓰더라도 깊이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는 무기력한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문과생에게 '잘 읽고 쓰는' 능력을 바란다. 당신이 이과생의 길을 걷지 않은 댓가로, 숫자가 아닌 다른 것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잘 '읽고 쓰길' 바란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고, 다양한 글을 섭렵하는 사람이길. 평균 이상의 글쓰기와 말하기,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갖길 말이다.
오해하면 안된다. 잘 쓰고, 잘 표현하라는 말이 작품을 쓰라거나 소설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문과생다운 순간들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학교에서 발표할 때, 레포트를 쓸 때, 회사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상대방을 설득할 때, 상사에게 보고할 때. 탁월한 표현력으로 위기를 극복해야하는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본다. 마치 복잡한 계산 앞에서 주변의 이과생을 찾는 우리처럼.
'잘 쓰는, 잘 말하는 문과생'은 그럼 어떻게 만들어질까? 말과 글은 사실 기교가 아니다. 말과 글은 생각이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불과하다. 때문에 잘 쓰고 말하려면, 먼저 잘 읽어야 한다. 그리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읽는 것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과외로도 안되고, 족집게 문제풀이로도 안되고, 속성으로도 안된다. 오직 읽은만큼만 쓸 수 있고, 생각한 만큼만 표현할 수 있다. 문과생으로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어떤것도 잘 쓰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수학이 싫어 이과로 가지 않고, 문과에 있음에도 읽고 쓰지도 않는 사람들을 문과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그들을 문과생이 아닌 무(無)과생이라 부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과생들은 당연히 살아남을 수 없다. 투정부릴 자격조차 없다. '문송합니다' 라는 말은 문과생의 것이다. 본인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는 문과생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무송합니다'라는 인사로 본인의 처지를 소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