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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Apr 14. 2017

11년의 기다림. 콜드플레이를 만나러 가는 길.

콜드플레이 첫 내한을 앞두고, 'Yellow'를 기다리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년 전, 우연히 아무개의 싸이월드에서 'The Scientist' 라는 노래가 BGM에 깔려 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당시에만 해도 외국 노래에 큰 취미가 없었던 나는 뮤지션의 이름과 제목을 보고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차가운 놀이의 과학자? 아주 그냥 외국 놈들 네이밍 센스 하고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그들이 얼마나 좋은 노래를 부르든 그런 네이밍 센스를 가진 밴드의 노래는 품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다짐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


다들 한 번쯤은 싸이 BGM으로 똥폼을 잡았던 기억쯤은 잊지 않던가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그들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외국 문물에 눈이 밝았던 친구 놈은 종종 내게 소위 '브릿팝'이라고 하는 것들을 내게 들려주곤 했었는데, 콜드플레이는 그 플레이리스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이름이었다. 그린데이, 오프스프링 같은 빡센 펑크 밴드들을 좋아하던 내게 브릿팝은 '꽤나 괜찮은 노래들' 정도로 인식되곤 했었는데, 그 꽤나 괜찮은 노래들 중 나를 브릿팝의 세계로 인도한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그 이름도 위대한 'Yellow'였다.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당시 사춘기 감성 충만하던 그 시절, '알아듣기 쉬운데 멋져 보이는 영어 가사'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보자마자 '해석'을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적당히 아는 척하면서도 듣기 좋은 노래란 얼마나 근사한가. 가사집을 보지 않고도 귀로 가사를 적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그 노래의 앞 소절을 싸이월드의 대문부터 네이트온의 상태 메시지까지 도배를 하곤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있었다.


인생에 한 번쯤은 있다는. 사춘기 시절 한 명쯤은 꼭 만나게 되는. 나의 모든 생각과 사고방식, 취향과 감성을 지배하는. 각자의 인생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 '영웅', '아이돌'. 나에게는 콜드플레이가 그러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고 노래 듣고 외우고 흥얼거렸다.


'Yellow'는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노래이기도 했다. 그 노래는 내가 밴드에서 공연을 할 때 처음으로 나를 주인공으로 세워줬던 노래이기도 했다. 왜 다들 소싯적에 밴드니 합주니 같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나 역시도 그 순간을 보냈지만, 나는 그 시절을 통기타로 맞이했던 조금은 독특하면서도 고리타분한 녀석이었다.


사춘기 시절,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에서의 '통기타'는 모든 합주에서 소위 '올드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인식되곤 했다. 적어도 내가 속했던 곳에서는 대부분 그러했다. 튜닝도 자주 나가고, 사운드 체크도 까다로운 '그놈의 통기타'. 그런 통기타를 고수했던 내게 'Yellow'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크리스 마틴은 곧 죽어도 Yellow에서는 통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곤 했다.


'Yellow'에서 나오는 그 영롱하고도 꽉 찬, 그리고 특유의 감성은 오직 통기타를 통해서만 가능한 연출이었다. 그 어떤 비싼 일렉 기타가 와도, 그 느낌만은 절대로 낼 수 없었다. 그 노래 덕에 나는 통기타를 들고 밴드 공연에 서서, 그것도 무대의 중심에서,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열연하고 열창하며 내 청춘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중한 추억을 선사해 준 그들을, 언젠가는 기필코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것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물론, 11년이 걸릴 줄은 조금도 몰랐지만.


한 때는 콜드플레이를 보러 가겠다고, 기필코 영국 여행을 가겠노라고 노래를 불렀던 적도 있었다. 매번 일본은 자주 찾아가면서 한국은 오지 않는 그들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미워했던 순간도 있었다. 글래스톤베리에서 연주하는 그들을 보며, 그리고 예전과 달리 조금 힘들어 보이는 크리스 마틴을 보며, 이제 그들의 전성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 울적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너무나 길었기에, 그리고 절대로 오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나는 그대로 그들을 잊기로 했었다. 아니 정확히는 한국에서 보기를 '포기하기로' 했었다.


설령 보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봐야 할. 그렇지만 낯선 외국에서, 낯선 문화에서 그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던 그들을 그렇게 나는 잊어가고 있었다. 아마 내가 한 쉰 쯤 먹어서, 마치 우리 아부지가 쉰 살이 되어서야 당신의 영웅인 Eagles를 만났듯, 나도 그들이 요단강의 한 뼘쯤 앞으로 다가가 백발의 노인이 된 이후에나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콜드플레이가 온다는 루머를 들었을 때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언급이 있기 전까지 절대로 그 어떤 설레발도 치지 않겠노라고 주변 친구들 100명한테 말하면서 설레발을 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잊고 살았던 그들이었기에, 진짜로 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적이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더더욱 믿지 않으려 했다. 물론 30분에 한 번씩 정태영 아저씨의 페북에 들어가 뉴스피드를 새로고침 했던 것, 그리고 결국 오피셜이 떴을 때 소리를 질렀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2009년에 내한했던 Eagles는, 데뷔 후 한국에 오는데에만 30년이 넘게(...) 걸렸다. 콜플도 이럴 줄 알았지.


그 시절의 영웅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작년 Red Hot Chili Peppers를 만났을 때에는, 행복하면서도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고음을 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예전처럼 방방 뛰지 못하는 '어르신'으로 나의 아이돌을 만나는 경험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Eagles가 Deperado를 부를 때, 그러니까 돈 헨리 아저씨가 그 노래를 부르며 쇳소리를 내시며 힘들어할 때, 썩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아 보였던 부모님의 표정을, 나는 비로소 지난해가 되어서야 아주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듯한) 영웅을, 아직 사춘기의 감성을 채 잊기 전에 만난 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비록 그들도 나도 그 시절에 비해 조금씩은(...) 늙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방방 뛰며' 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앞으로 두고두고 몇십 년 동안이나 회자하며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 아닌 '행운'이다.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간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필코 한국에서 그들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들을 만나는 장소가 '서울'이라는 사실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을 먼저 외국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그 기다림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같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같지만 다른 기억'을 떠올리며 떼창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만남은 너무나 특별하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나보다 먼저 해외에서 콜드플레이를 봤던 한국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나는 그들도 해보지 못한 '친구들과 떼창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zpi-iSGFaY

내 인생에는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콜드플레이를 만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Yellow를 만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많이 돌려봤던 콜드플레이의 일본 공연을 올려 본다. 내가 가장 흠모했던 공연이자, 꿈꾸던 순간. 그리고 항상 홍대의 지하 공연장에서 따라 하려 했던 그 순간을, 이제 눈 앞에서 다시 만나려 한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와 Yellow라는 노래 제목.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눈 앞에서 버무려지는 그 순간이 내게 어떤 감정을 선사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벌써부터 백만 가지 감정이 겹쳐진다면 거짓말일까. 누군가 이 기분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은 벌써부터 긴 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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