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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Feb 17. 2019

검정치마, 달콤한 목소리로 그릇된 사랑을 노래하다.

논란의 신보, <THIRSTY>의 숨겨진 서사를 찾아서


검정치마는 사랑입니다. 검정치마가 2015년에 냈던 노래, 'Hollywood'를 678번 들었습니다. 음악 앱 '지니'에서 이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애플 뮤직을 썼고, 지금은 VIBE로 옮겨왔으니, 아마 못해도 천 번은 들었을 겁니다. 노래의 러닝타임이 330초니까, 약 92시간, 이 노래만 3박 4일을 들은 꼴입니다. 다른 노래들을 들은 시간까지 합하면, 인생의 어느 일주일은 검정치마로 가득했겠네요. 아마 보컬 조휴일은 제 인생을 통틀어 제 귓가에 가장 오랜 시간 목소리를 때려 넣은 인간 중 한 명이 아닐까 합니다.


뻥 아니라고요.


그런 검정치마가 1년 반 만에 3집 Part.2 <THIRSTY>를 냈습니다. 노래는 좋은데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전작인 Part.1 <TEAM BABY>에서는 죽고 못 사는 사랑 노래 투성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어둡고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저열한 사랑 이야기만 가득했습니다. 전작에서는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앨범 커버로 쓰면서까지 '온연한 사랑'을 애타게 불렀던 그가, 이번에는 흉측하게 생긴 가면을 쓴 남성과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여성을 앨범커버로 썼습니다. 일 년 반 사이에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아마 자신의 부모님을 팔아 커버로 쓰는 뮤지션은 조휴일이 유일무이할겁니다 (...)


이 모든 내용은 저의 뇌피셜이지만,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이번 신보를 들으며 가졌던 의아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치 방탈출을 하듯 그가 숨겨놓은 단서들을 찾으며, 검정치마의 가장 위대한 앨범이 될 3부작의 두 번째 파트, <THIRSTY>를 차근차근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번 트랙부터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1.

기본적으로 앨범에 등장하는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놔두고 다른 여성과 잘못된 사랑을 나눈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노래 이곳저곳에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가사들이 있지만, 조휴일은 이 앨범의 화자가 누구인지 대놓고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2번 트랙의 제목인 'Lester Burnham'입니다. 


레스터 번햄은 1999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남자 주인공 이름입니다. 영화 속에서 레스터는 딸의 친구인 안젤라와 잘못된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요, 1번 트랙인 '틀린 질문'부터 2번 트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든 가사는 (심지어 음악도 끊김 없이 바로 이어집니다.) 마치 레스터가 안젤라에게 수작을 걸기 위해 속삭이고, 안젤라를 품게 되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한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비웃듯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뭐든 물어봐, 틀린 질문도 괜찮아. 난 항상 똑같아, 대답은 바르게 해 줄게."
"내 검게 물든 심장이 입 밖으로 막 나와요. 그대 알잖아요, 나는 저들과는 달라요."
"내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 거래요."
- 1번 트랙 <틀린 질문> 중
"난 이제 말해주고 싶어, 그날 이후로 난 맨날 니 꿈만 꿔."
"그날 이후 내 세상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어, 니가 흔든 거야 나는 그냥 굴러가는 거야."
"니가 그런 거야 나는 항상 목이 마를 뿐이야."
- 2번 트랙 <Lester Burnham> 중


<틀린 질문>이 마치 불륜녀와의 잠자리에서 속삭이듯 조용하게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면, 2번 트랙은 요 근래 검정치마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격한 펑크 사운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잠자리가 끝나고 아침이 밝아 현실로 돌아온 뒤, 자신이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혼란스러운 정신을 표현한 듯 말이죠. 


그 와중에도 화자는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불륜녀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는 듯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실수'였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 실수로 인해 점차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2.

3번 트랙 <섬>은 주인공이 불륜녀와의 사건 이후 아내와 달라진 관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망치게 되는 과정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가사를 한 번 보겠습니다.

"티비가 시끄럽게 울려도, 니 말이 짧아지면 비좁은 마음속엔 걱정만 커져."
"너 사는 섬엔 아직 썰물이 없어. 결국 떠내려온 것들은 모두 니 짐이야."
"이어질 땅이 보이지 않네, 힘만 빼려나, 난 그냥 나가는 게 좋겠네."
-3번 트랙 <섬> 중


당신이 사는 섬에는 아직 썰물이 없다니. 정말 미친 표현 아닌가요. 물이 빠져야 땅이 보이고, 그래야 내가 당신이 사는 섬으로 갈 텐데, 나의 잘못을 알아차린 당신의 그 섬에는 내가 갈 길이 없이 물만 가득하고 어쩔 도리가 없다. 주인공은 자포자기한 듯, 돌이킬 수 없는 아내와의 관계를 포기한 듯 읊조립니다.


3번 트랙의 2분 48초부터 시작되는 구성은 이 앨범의 소름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1번 트랙의 마지막에는 "내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 거래요."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3번 트랙 <섬>의 후반부로 갈수록 잔잔해졌던 노래는 점점 템포가 빨라지는데요, 3분이 넘어서면 귀가 찢어질듯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잔잔했던 노래는 신나는 로큰롤 음악으로 변해버립니다. 말 그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죠. 아마도 여기서 나오는 비명소리는 진실을 알아버린 아내의 비명일 것입니다.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 거라는' 불륜녀의 예언이 실현이 되는 순간, 남자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맙니다.



3.

이번 앨범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4번 트랙 <상수역>과 5번 트랙 <광견일기> 입니다. 화자가 여성을 바라보는 저열한 시선, 그리고 성매매와 불륜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들이 잔뜩 깔려있기 때문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들이 그런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 궁금한 적 있다면, 난 늦은 밤 상수역만 맴돌았죠."
"생각보다 난 괜찮은 남자예요. 엄마 잘 키웠어요."
- 4번 트랙 <상수역> 중
"우리 정분 났다고는 생각지도 마, 내가 원하는 건 오분 길게는 십오 분"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내밀어봐, 다른 데서 퇴짜 맞고 와도 넌 오케이."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지껄여봐, 내 여자는 멀리 있고 넌 그냥 그렇고"
- 5번 트랙 <광견일기> 중


화자는 집에서 나온 뒤 정처 없이 상수역을 맴돌며 낯선 여자들을 품고 자신의 삶을 내던진 듯 방탕한 삶을 계속 이어갑니다. 특히 5번 트랙 <광견일기>는 캉캉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리듬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상스럽고 저열한 말투와 시선을 서슴지 않습니다. 


여기에 묘사되는 상황들이 불륜녀와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사창가를 헤매며 읊조리는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상스러운 가사들을 가장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 속에서 내뱉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만큼 가벼운 관계인 여성들과의 상황을 묘사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이 두 트랙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래 속에 등장하는 화자를 가상의 인물이 아닌 조휴일 본인이라 인식하기 때문일 텐데요. 앨범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이 두 노래는 조휴일 본인의 경험담이 아닌, 앨범의 후반부에서 이어지는 가상 속 주인공의 완전한 파멸, 그리고 괴물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서사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이자 장치라 볼 수 있습니다. 



4. 

이번 앨범의 백미를 장식한 중간 트랙들입니다.


<Bollywood>, <빨간 나를>, <Put Me On Drugs>로 이어지며 남성은 단순히 다른 여자를 탐하면서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술과 약에 찌들어 제정신을 놓은 남성의 흐트러진 모습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6번 트랙인 <Bollywood>를 주목해야 하는데요. 3집의 수록곡이라며 선공개된 저의 최애곡 <Hollywood>와도 모종의 연결점이 있습니다. 우선 <Bollywood>의 가사를 먼저 보겠습니다.

"뭘 기대 하는지 알아, 어디서 들어봤겠지 먼 별들의 고향."
"넌 근데 잘 못 온 거야. 여긴 춤과 눈물에 순서가 없는 걸, 감당이 안되네."
- 6번 트랙 <Bollywood> 중


영화 <라라 랜드>를 보셨다면, 할리우드가 주인공 미아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잘 아실 겁니다. 미아는 할리우드의 스타가 되기 위해서 모진 오디션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전혀 스타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칠흝같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탭댄스를 추며(?) LA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만큼 할리우드는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말 그대로 꿈의 공간인 것이죠.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할리우드의 빛나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미아


아마 주인공에게도 그런 '꿈의 공간'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레스터 번햄은 영화 속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나오지만, 레스터는 자신의 직업을 경멸합니다. 언젠가 자신도 멋지게 성공해 '할리우드' 같은 곳에 있길 기대했지만, 결국에는 얄팍한 상술로 중개를 하고 있는 본인의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히려, 불륜과 약물에 쩌들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본인이 닿은 곳은 할리우드가 아닌 '발리우드'에 더 가까웠던 것이죠.


인도 영화 씬을 뜻하는 발리우드는 모든 영화에 춤과 노래가 들어갑니다. 신이 나도 춤을 추고, 슬퍼도 춤을 추고, 사랑해도 노래 부르며, 증오해도 노래를 부르죠. 모든 감정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발리우드의 영화들은 그래서인지 때론 우스꽝스럽게도 보입니다. 남성도 그걸 아는 듯 '여긴 춤과 눈물에 순서가 없다'며 감당이 안 되는 발리우드 같은 본인의 현실을 조소합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마지막 장면, 발리우드 영화의 가장 전형적인 장면입니다. 


'이게 다 내가 지어낸 얘기라면은 좋겠네' 라며 읊조리는 7번 트랙 <빨간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 내 때 탄 인연아', '설움만 알던 여자야, 내 흉한 과거야', '사랑이 틀렸을 때엔 다 틀린 거야' 라며 울부짖는 8번 트랙 <Put Me On Drugs>로 이어지는 '멘붕'은 남자가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암시하며 마무리됩니다.


여담이지만, <Put Me On Drugs> 속 조휴일의 목소리가 일부러 먼 곳에서 들리는 듯 리버브가 가득 먹여져 있는 것,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기타 소리를 오묘하게 넣은 것 모두, 약에 쩌들어 정신을 놓아버린 남성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저는 이번 앨범에서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합니다. 제일 신나거든요(?)



5.

3번 트랙 <섬>에서, 자신의 아내가 있는 곳을 '섬'이라고 표현했던 구절을 기억하시나요? 9번 트랙 <하와이 검은 모래>에서 주인공은 더 멀어져 버린 '섬' 같은 아내에게 더는 돌아갈 수 없음을 선언해 버립니다. 이 트랙, 멜로디만 들으면 되게 로맨틱해 보이지만, 속으시면 안 됩니다. 아주 뻔뻔하고 더러운 노래거든요.

"그대가 가고 싶은 섬, 나는 못 가요. 알다시피 내 지은 죄가 오늘도 무겁네요."
"우리가 알던 그 장소는 무덤이 되었겠죠. 추억을 고이 덮은 채 무궁화가 한가득."
"보다시피 내 발은 아직 여기 묶여 있어요."
- 9번 트랙 <하와이 검은 모래>


죄를 지었다는 것은 알지만, 이제는 돌아갈 길도 방법도 없다는 주인공. 그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은 결국 본인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뿐이었던 걸까요. 아내와 알고 있던 추억의 장소가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마치 '무덤'처럼 변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일말의 뻔뻔함은, 아직도 그가 지금의 사랑에 미련을 못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노래 <맑고 묽게>의 가사에서 여전히 주인공은 정신을 못 차리고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의 남자를 사랑하네' 같은 개소리를 일삼습니다.


또, <맑고 묽게>의 가사와 멜로디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명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내 눈썹 위론 빗방울이, 내 무릎 위론 처녀들이, 내 이불속엔 가느다란 숨이 흘러와'라는 가사는 마치 안젤라를 떠올리며 이불속에 누워 장미 속에 파묻힌 자신과 안젤라를 바라보는 레스터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이 가사가 흘러나오는 후반부의 멜로디는 이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찰떡같은 궁합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만 유튜브에서 따로 보고 <맑고 묽게>를 들었는데, OST인 줄 알았어요. 


"꽃이 되면 좋을텐데, 잎이 되어 지는 구나. 이제 우린 어떡하나 잎이 노란데. 이미 노란데." <맑고 묽게> 중



6.

주인공이 '괴물'로 변해, 상처의 화신(King Of Hurts)이 되는 앨범의 마지막입니다. 남자는 11번 트랙 <그늘은 그림자로>에서 광광 울어버립니다. 

"나를 따라다니던 그늘이 짙던 날, 잠든 너를 보며 나는 밤새 울었어."
"이제 우리 다시 나란히 걸을 순 없겠지. 혼자인 걸 알면 됐어.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해."
- 11번 트랙 <그늘은 그림자로> 중


마지막 트랙 <피와 갈증(King Of Hurts)>에서 주인공은 한없이 나약하고 작아지다 못해 다시 본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사랑을 향한 갈증'이라는 키워드가 이 트랙에서 폭발하고 마는 것이죠. 결국 그 대상이 자신이 원래 사랑하던 여자라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요.


<피와 갈증>에도 유의 깊게 봐야 할 구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가사입니다.

"줄은 처음부터 없었네,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이제 난 혼자 남았네. 술이 가득한 눈으로 날 미워한다 말했었지. 슬프도록 차가운 네 모습만 내 기억에 남기고."


검정치마의 광팬이라면, 이 구간의 멜로디와 가사가 많이 낯익으실 텐데요. 이 가사는 3집 Part.1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던 노래 <Love Is All>의 첫 구절 가사를 비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Love Is All>의 가사입니다. 

"줄이 그새 줄어들었네, 나를 기다린 줄 알았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 술이 가득한 눈으로 날 사랑한다 말했었지 슬프도록 과장된 네 모습도 뭐, 나쁘지 않은 걸."


'사랑이 전부인 거야, Love is all'이라고 열다섯 번 복창하는 낭만적인 노래를 이토록 슬프고 처참하게 만들어버리는 조휴일의 잔인함. 사랑이 전부라고 믿었던 만큼, 남자는 본인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자신의 우주를 미치도록 다시 원하고 원합니다. 


여자, 술, 약에 쩌들어 자신의 삶을 망친 남성이 다시 돌아온다면, 여자에게 그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요. 네, 아마도 괴물 같을 겁니다. 게다가 잘못은 본인이 해놓고, 마음엔 상처로 가득해 오히려 자신을 거둬달라고 말하는 모습은 더 감당하기 힘들겠죠. 남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본인 스스로도 상처 투성이가 되어버린 그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 'King Of Hurts'일 것입니다. 


결국 주인공은 이 기나긴 서사의 끝을, '이건 내가 아니에요'라는 무책임하고도 뻔뻔한 가사 한 마디로 끝내버립니다. 조휴일이 앨범을 소개하며 남긴 말, '뻔뻔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과, 앨범 커버 속 괴물 속 남성의 모습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곤 3집 Part.2도 함께 끝이 나게 됩니다.



7.

검정치마의 이번 앨범은 다소 난해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평단에서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듯하지만, 오랜 시간 조휴일의 앨범을 기다렸던 대중들의 평가는 더욱 혹독 한듯합니다. Part.1처럼 꽂히는 멜로디를 지닌 노래도 없고, 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한 곡씩 단면만 보면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성감수성을 지닌듯한 가사들로 가득하니까요. 아마 <좋아해줘>나 <Everything> 같은 노래들로 검정치마를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번 앨범에 더 큰 배신감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 해석이 모두 틀렸을 수도 있지만, 예술은 해석하기 나름이라 했던가요. 제 생각에 검정치마는 이번 앨범을 통해 '그릇된 남성들의 사랑관'을 비판하며, '한 번의 실수라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나름의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앨범에 다양한 장치들을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Part.1에서 한 없이 순진무구하게 사랑만을 외쳐댔던 것도, 어쩌면 극적 효과를 위한 밑밥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조휴일이 어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3집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Part.1부터 Part.3까지 이야기를 다루며 서로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요. 특히 Part.2는 1과는 다른 분위기일 것이며, Part.3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조금은 기다려 달라는 말도요. 어쩌면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3집의 종지부를 찍을 Part.3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앨범을 근 3년을 걸쳐가며 발매할 검정치마의 기이함과 잔인함(일해라 조휴일)이 때론 이해가 가지 않지만, 분명 그가 3집 앨범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사랑'이라는 주제의 대서사시는 국내 인디 록 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명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비록 이번 앨범이 전작에 비해 많은 사랑은 받지 못할 듯하지만, Part.2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Part.3을 통해 완성되며 뒤늦게 빛을 발하리라 예상도 해봅니다. 


두서없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Part.3가 나오면 다시 또 한 번 궁예질 가득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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