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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 나도 누군가의 가슴에...

명문장가가 되고 싶었던 어느 날.

by 연두씨앗 김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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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하고도 글로 옮기지 못하는 데..
수많은 작가들은 '나의 생각과도 같은 그것' 들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내고 있었다.
놀라운 일...
그리고 또한 부끄러운 일..
난 그들의 말처럼..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꽁꽁 동여맨 나도 풀어헤쳐보면 별 볼일 없는
그런 어리광쟁이 일 뿐..

부러웠다..
절절한 문장, 말 한마디가
내 가슴을 휘적거릴 때마다..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이렇게 시원스럽게 후벼 파고 싶었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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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란 것은 8살부터 시작했다.

편지란 것은 14살부터 시작했다.

문학이란 것은 18살부터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 20살부터 4년간은 글 쓰는 기술을 배웠다.

졸업과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날마다 자판을 두들기며 원고를 쓰며 살았다.

첫 작품이라는 것이 29살에 나왔다.

그리고 30살부터는 육아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34살쯤 시작했다.

브런치의 시작은 간단했다. 그저 좀 쓰고 싶었다.

날마다 적어 내려가던 것들을 허공에 날리지 않고 한 두 개는 누군가의 가슴에 콕콕 심어 두고 싶었다.


20대 초반의 나의 꿈은 누군가의 마음을 후벼 팔 수 있는 명문장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20대 중반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후벼 팔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후벼 팔 수 있을 만큼 내 마음도 후벼파일 줄은 몰랐던 시절이 있다.

상처 받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글 쓰는 나에게 늘 방해 요소였다.


"행복해지려고 글을 썼으니... 글을 쓰며 불행해지지 말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가슴을 후벼 팔 수 있는 대작가들에겐 그만큼의 아픈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명문장가도 사실 부럽지 않다.

글 좀 못쓰고 차라리 행복한 생을 누리리라.


그렇지만 그래도 포기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37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인 작은 생채기들과 상처를 모아서

마흔 쯤엔 누군가의 가슴을 다시 울려보고 싶다.


딱딱해진 딱지를 이제는 희미해진 흉터를 다시 바라본다.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당당하게 상처를 바라보는 날

더 좋은 작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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