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날 샘이 왜 방송작가의 숙명인가요?
작가로서 삶이 괴롭다는 것은 작가로 사는 일에 두려움을 갖게 했다.
'과연, 밥은 먹고살 수 있을까?'
문학을 전공한 수많은 친구들은 아마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순수문학의 길과 자본주의 경제생활이 동시에 가능하느냐는 것!
그래서 문학을 전공한 동기들 대부분은 전업작가 대신 출판사나 광고기획사, 홍보대행사 등 글과 연관이 있는 어딘가로 취직을 했었다.
나는 그중 방송을 선택했다. 순수문학과는 조금 다르지만 울림이 있는 글이 있는 곳.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쓰기'가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기고,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방송이라는 불꽃에 뛰어들기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물론 직접 가본 방송계라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개인적의 삶보다는 '방송'이라는 매체 위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저 방송을 위한 하나의 구성원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내가 없다 해서 방송이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을 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다.
겉은 우아한 백조처럼 방송작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속으로 백조의 발처럼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중 하나의 일이 프리뷰였다. (다큐 구성 막내 시절)
다큐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프리뷰'는 필수 요소였다.
PD가 하루에 촬영해오는 필름은 6~7개 적어도 3~4개 정도였다. 적게는 50분에서 1시간이 훌쩍 넘는 영상을 종이에 문자로 옮겨 적는 일이 프리뷰였다.
테이프를 다 볼 수 없었던 메인작가는 내가 밤새 해놓은 프리뷰 원고를 보고 편집 구성안을 짰고, 피디님과 작가님이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회차 방송을 위한 인물을 찾아야 했다.
블로그와 잡지와 인터넷 기사를 밤새 뒤졌다.
"적당히 하고 들어가서 쉬어."
라고 말은 하셨지만, 내게는 집에 가지 못할 만큼의 일이 쌓여있었다. 기다리는 가족이 없을 때는 아무도 없는 회사 사무실이 어쩔 때는 더 편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제일 불쌍한 애'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해댔다. 어찌 됐든 빨리 끝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빨리 끝내는 만큼 줄어야 할 일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 똑같은 만큼의 일 혹은 새로운 일이 할당되었다.
나의 야근은 늘 당연했고, 매일 야근을 하는 스물다섯의 어린 막내작가를 회사 사람들은 살뜻이 챙겨주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내겐 그들이 오히려 내 가족 같았다. 촬영이나 미팅 나갔다 오면 그들은 꼭 내게 간식을 사들고 와 선물해줬다. 막내에겐 간식을 사러 갈 시간도, 간식을 충분히 살 돈도 없었다.
주 6일을 출근했으며, 그중 3일 정도는 날 샘 작업을 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날 샘을 하고, 두통에 시달리고,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발병할 정도로 일에 무리가 올 때쯤 프리뷰 아르바이트가 동원되었다. 내가 직접 하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의 도움으로 그래도 집에는 갈 수 있었고, 날새는 일도 줄었었다.
새벽엔 잠이 왔고, 잠을 자지 않기 위해 과거의 기억에서 헤맸다.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면 머리는 멍해지고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하려던 일도 못했다. 그렇게 불필요하게 시간만 까먹었다.
25살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울며, 날을 새며 프리뷰 하며, 메인작가에게 혼나는 일이 반복됐다.
'왜 이러고 살까? 그냥 평범한 직장에 취직이나 할 걸....'
꼴랑 받는 돈이라고 한 달에 70만 원이었다.
주 6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의 노동력의 대가가 고작 70만 원이었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35만 원인데, 공과금과 차비를 빼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있기는 할까?
그렇게 지옥 같은 1년을 지냈다.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세상의 불합리함에 울분을 토할 때가 더 많았다.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몸에서 이상 반응이 일어났다.
몸을 망가뜨려서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교통사고가 났고, 내가 원하는 대로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
작가 시절, 옆 팀 언니들과 날밤을 새며 프리뷰를 하던 시기에 썼던 시.
새벽 2시가 넘었을 때쯤, 날밤을 새던 언니들과 우스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를 지었다.
슬픔을 버리다 - 마경덕
나는 중독자였다.
끊을 수 있으면 끊어봐라, 사랑이 큰소리쳤다
네 이름에 걸려 번번이 넘어졌다
공인된 마약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문 앞을 서성이다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나오면
목덜미로 빗물이 흘렀다
전봇대를 껴안고 소리쳤지만
빗소리가 나를 지워버렸다
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 너를 만지다가
아득한 슬픔에 털썩 무릎을 꿇기도 했다
밤새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 데도 닿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너에게 감염된 그때, 스무 살이었고
한 묶음의 편지를 찢었고
버릴 데 없는 슬픔을
내 몸에 버리기도 하였다.
지나 보니, 청춘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들....
37살에 쓰는(1년 전 작성) 25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