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이별 때문에 마음 아프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사십구일의 시간을 버는 거, 그거 쉬운 일 아니다."
- 서호의 말 <구미호 식당>
윌라로 만나는 첫 번째 오디오북은 <구미호 식당>이었다.
예쁜 책 표지와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제목이었다.
'구미호가 하는 식당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일까?'
아님 '구미호가 하는 식당에 온 사람들의 이야기?'
오래전 봤던 일본 드라마의 <심야식당>을 떠올렸다.
사고로 죽은 두 남자, 호텔로 셰프로 일하던 이민석과 15살 왕도영의 이야기이다.
죽은 후 건너는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 불사조를 꿈꾸는 여우 '서호'가 나타나 둘에게 제안을 한다.
'뜨거운 피 한 모금만 주면 다시 49일 동안 살게 해 주겠노라고....'
이생에 별 미련이 없는 도영은 관심이 없고, 이생에 미련이 많은 아저씨(민석)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도영이 또한 얼떨결에 아저씨를 따라 49일을 다시 살게 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건 다시 살아나는 거거든.....(중략) 다른 곳으로 집이 아닌 곳으로 가야 해."
이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얼굴을 한 두 사람은 서호가 마련해 준 <구미호 식당>에서 49일을 보낸다. 아저씨는 이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쪽지에 49일 동안 지켜야 하는 주의사항이 있어. 지키지 않으면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지. 그런 일은 없도록 해줘."
서호가 떠나고 두 사람은 <구미호 식당>에서 아저씨가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아저씨는 '그 사람'을 꼭 만나고 싶어 했고 마침내 그 사람을 만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크림 말랑'이란 메뉴를 SNS를 통해 홍보하면 그 사람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생에 별 뜻 없이 남은 도영은 아저씨를 도와 <구미호 식당>에서 일하며 아저씨의 '그 사람' 만나는 일을 돕는다.
<구미호 식당>에서 일하던 도영은 살아있을 당시, 무척이나 싫어했던 친형 '왕도수'를 다시 만나고 되고, 살아생전 가장 고마웠던 친구 '수찬'이도 만나게 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자신을 탓하는 할머니, 그리고 원수 같은 이복'형'까지...
어린 도영은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그날은 밤새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바람도 무지막지하게 불었고요....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몰려들었어요.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아빠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었거든요. 맞아 죽는 게 나을까? 얼어 죽는 게 나을까? 고민했죠."
10살의 도영이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권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리고 그 선택지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한 도영은 뒷 집의 개집에 숨어들었다.
"저는 개 집으로 기어들어갔어요. 얼어 죽는 것보다 그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사나운 개가 제 집을 침입한 침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예요.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줄 알았는데요. 저는 그 날밤 개집에서 자고, 개는 눈보라를 맞으며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렇게 자신에게 집을 양보한 고마운 개는 며칠 날 누군가에 의해 개장수에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고 도영은 그 소식에 듣고 몹시 슬퍼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접받은 게 '뒷 집 개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기회'였다는 도영의 말에 슬픔이 밀려왔다. 어린 도영이가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 팍팍했다. 도영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처음엔 그냥 침대에 누워서.. 그다음엔 빨래를 개면서...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 목욕을 씻기며... 밀린 설거지를 하며...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저씨가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의 궁금증과 도영이의 가족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다.
새벽을 넘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코가 시큰해졌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머릿속에 장면을 떠올리며 들었다. 드라마 한 편을 보듯 머릿속에 화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도영이는 스쿠터를 타다가 죽었다. 도영이가 죽고 가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스쿠터 주인 '수찬'이가 자신 때문에 혼나거나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살아생전 가장 고마웠던 '수찬'이의 스쿠터를 망가트린 것이 도영이는 가장 미안했었다.
"사실 스쿠터는 많이 부서지지 않았어. 도영이가 스쿠터를 껴안듯 타고 있었대. 스쿠터를 보호하는 것처럼 말이야. 도영이는 사고를 당하면서도 스쿠터가 부서지면 내가 아빠에게 맞을까 봐 걱정을 했었던 것 같아. 분명 그랬을 거야.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그깟 스쿠터는 다시 사도 되는데... 나는 도영이가 스쿠터보다 더 소중했는데..."
도영이가 죽고 나서 들은 수찬이의 고백은 도영이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버리고 얻은 49일의 기회중 가장 따뜻했었다. 수찬이는 도영이가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가장 도영이에게 따뜻했다.
도영이는 살아생전 '수찬'이와 친하게 지내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같이 학교에도 가고, 같이 놀고, 수찬이가 배달 갈 때 따라가기도 하고, 수찬이가 맞을 때 말려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친하게 지내볼 걸..."
서로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던 수찬이와 도영이가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며 나도 몰래 눈물이 났다.
도영이는 아마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지? 하지만 수찬이에 대한 도영이의 기억만으로 도영이는 49일은 충분히 보상이 될 것 같았다.
아저씨와 그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수찬이와 도영이의 온도가 따뜻한 '주황'이라면 강한 '집착'이 담긴 아저씨의 이야기는 서늘한 '블루'에 가까웠다.
구미호 식당의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나는 수찬이와 도영이까지만 리뷰를 하려고 한다.
그저 안타깝게 15살에 이 생을 마감한 어린 소년 '도영'이가 안쓰러웠다.
도영이는 형과 할머니와도 화해를 하고 아저씨도 미련의 '그 사람'을 비로소 놓아준다.
재미로 듣기 위해 시작했지만,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가볍게 듣고, 나중에 무겁게 들렸다. 책으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오디오북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