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1부 - 로망과 노동 사이

by 연두씨앗



이들이 적은 급여와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송계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이 좋아서다. 이들은 밤샘 근무를 하고 생방송을 무사히 내보낸 뒤 엔딩 스크롤에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그 짧은 순간으로 또 다음 회차를 만들 기력을 얻는다. P224


브런치를 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어느 작가의 글에 마음이 동했다. 방송가를 떠나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달리 말하면 방송가를 탈출한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방송은 내게 '보람'이었지만 '지옥'같았다. 탈출하고 싶었다.


책의 시작은 연휴의 호텔에서였다. 서울 시내가 보이는 호텔 창가에 앉아서 멀리 보이는 한강을 바라봤다. 한때 그곳에서 '방송작가'라는 노동자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을 받아 들고 한참을 손을 놓지 못하고 읽었다.

잊은 줄만 알았던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냉정한 듯 보였지만 속이 깊었던 작가님, 엄마처럼 집밥을 해주면서 잘 챙겨 먹으라고 해줬던 작가님, 같이 일했던 피디님, 그리고 도망간 조연출과 함께 입봉을 기다리며 날밤을 새던 다른 팀의 막내 언니들까지...

비록 방송에서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아주 길고 지루했다. 방송작가 중에는 한 프로그램에서 오래 일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방송을 돌아다니는 작가도 있다. 나는 굳이 따지면 '떠도는 작가'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실증을 잘 느끼는 편이었다. 불합리한 것을 강요하는 곳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불의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방송을 만들며 늘 '퇴사'를 꿈꾸었다. 사직서 같은 게 있었으면 매일 가슴속에 품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방송'에서는 사직서를 쓸 필요가 없었다. (사직서를 내기 전에 프로그램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방송이 부서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출판사가 문을 닫고 게임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병들거나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꿈꾸는 일을 한다는 긍지만으로 착취가 정당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상식이 업계의 불문율로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유일한 복지는 바다

내가 '제주'에서 '방송작가'를 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경탄했다. "그 좋은 제주에서 그 좋은 일을 하시다니요. 정말 부럽습니다." 나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웃었다. 웃고 나면 가루약을 삼킨 것처럼 입이 썼다. P.47


내가 KBS에서 방송작가를 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경탄했다. "우와, 연예인들 많이 보겠네. 좋겠다. 누구누구 봤어?" 나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웃었다. 웃고 나면 바로 뒤에 서글픔이 바로 따라붙는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이 연예인을 볼 수 있기는 하나, 실제로 보는 것보다 통화만 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방송이 아닌 이상 대부분 카메라로 찍어온 영상을 통해 본다. 한가하게 연예인을 볼 시간이 작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프로그램에 따라 연예인의 비율은 현저히 다르다. 어떤 작가는 의사와 환자만 보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어떤 작가는 경찰과 범죄자만 보기도 한다.)



초라한 액수에 내가 하는 일까지 초라해 보일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적었다.

"구체적인 액수를 알려드리긴 어려워요. 제가 다른 지역 방송작가 급여를 모르다 보니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솔직하게 급여를 공개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청춘이 꾸는 꿈에 벌써부터 초를 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창피했다. 내 업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한 번도 없지만 급여는 언제나 창피했다. P.61



나의 첫 직장은 교육 콘텐츠 제작팀 작가였다. 첫 직장이기에 나름의 서러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나빴다. 분명 나빴기에 나는 나를 잡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멋지게 '퇴사'를 했다. 내가 퇴사를 위에 보고하고 퇴사 결정이 내려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연애를 하니 얼굴에 꽃이 피었노라고.'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내 얼굴에 웃음꽃을 핀 건 '연애'를 해서가 아니라 '퇴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멋지게 퇴사를 하고 꿈을 찾아 '방송가'로 떠났다. 첫 직장의 월급의 반도 안되고 정말로 열정 페이만 받고 일했다. 나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때의 나의 구질구질함이....

원하던 방송가에 들어가고 나는 연인과 헤어졌다. 연인의 마음이 변해서였기도 하겠지만 '막내'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나는 나의 연인에게 얘기하지 못했다. 내 월급이 얼만지를...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말이 맞다.

과외를 하던 대학생이었던 연인이 모든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다. 나는 월 70만 원을 받았다. 나의 월세방은 보증금 500에 30~35만 원이었다. 공과금 내고, 통신비 내고, 교통비를 빼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그저 방송 끝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엔딩 스크롤에 지나가는 2~3초의 작은 시간이 전부였다. 찰나의 시간이지만 내이름 3자가 지나가는 게 좋았다. 아무도 보지 않을 그 이름을 다른 팀 막내작가들과 함께 공유했었다.


인터뷰지 작성부터 오프닝 원고까지, 대부분의 일들은 섭외 이후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섭외가 늦어지면 방송 직전까지 마음을 졸이며 원고에 매달려야 했다. 시간에 쫓겨 쓰면 원고에 오탈자를 내거나 실수할 확률도 올라갔다. 그렇다 보니 내겐 식사를 거르는 것보다 섭외가 늦어지는 게 더 힘든 일이었다. P.47


나의 막내시절의 경험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내가 적었다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은 방송작가들은 그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10년 전 부당했던 나의 노동력 착취를 고발하고 싶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방송가의 불쌍한 막내들의 이야기.......

선배들은 밥도 안먹고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내게 '밥 먹고 천천히 하라고...'조언했다. 아마 그들은 알고 있었을 거다. 밥을 먹고도 끝나지 않을 노동을... 그러니 밥이라도 먹고 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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